매일글쓰기 47일차
(유치원식) 놀이형 영어학원 1년을 끝내고 본격 학업으로서의 영어학원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주 2회이던 수업은 주 5일로 늘어났고, 똑같이 파닉스를 다루더라도 접근 방향이 전혀 달랐다. 처음 한 주 동안 아이는 "와, 그 전 학원은 유치원이었고 여기가 초등학교 같아."라고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압도적인 공부량에 놀랐다기보다는 교육 구조와 스타일의 차이에 놀란듯했다.
아이가 학원을 옮기고 이 주일 만에 학원 자체에서 치르는 시험을 쳐야만 했다. 전체 일정상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고 아이는 400점 만점에 315점을 기록했다. 백분위 95%에 달하는 점수. 점수로 표현되는 결과를 받은 건 이게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기분이 묘했다. 혹 아이가 실망했을까 봐 전혀 배운 것 없는 상태에서 이만하면 잘 했다, 거듭 치를 시험의 형태를 맛보았다고 생각해라, 그래도 기특하다는 말들을 전했으나 나의 당황스러움과는 별개로 아이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햇살처럼 맑았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시험 결과가 나왔다고 말한다. (얼마 전 시험을 치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결과는 400점 만점에 398점. 백분위 10%로 훌쩍 상승했다. 기껏해야 10점, 20점 정도 올랐을까 기대했던 나의 마음이 보잘것없어질 만큼 315점과 398점이라는 간극은 실제로 컸다. (4개 영역 중 3개가 만점, 하나가 98점이었더라고요.)
점수는 눈으로 확인 가능한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어떤 수치일 뿐. 내가 칭찬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꾸준한 노력이었다. 첫 주가 지나면서 아이는 영어학원에서의 좋은 점, 재미있는 점, 흥미로운 점을 찾으며 나름대로 정을 붙이고 공부의 재미를 찾으려는 모습들을 보였다. 영어학원에서의 학습과 별개로 집에서는 탭으로 접속해서 학습 내용을 복습하는 것도 거의 매일, 꾸준히 했다. 새로운 영어 단어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자신이 좋아하는 어벤저스 영상으로 만들어진 유튜브 영상에 삽입된 팝송을 (소리만으로) 달달 외우며 뜻을 살피는 모습도 자주 봤다. 아이는 단순히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로 그 속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높은 점수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 점수 너머에 숨어있는 아이의 오랜 노력과 호기심이 더 빛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누군가와 점수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점수 그 자체에 맹목적으로 매달릴 필요도 없다는 말을 거듭 반복하며 부러 아이가 쏟아부었을 정성들을 한껏 칭송하는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높은 점수에 대한 자랑글이 아니라, 무언가에 임하는 내 아이의 노고와 마음가짐에 대한 자랑글이다. 마음껏 자랑하고 싶다, 내 아이의 이 찬란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