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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Mar 17. 2024

김농부의 봄이 시작되었다

봄의 땅은 그의 꿈

김농부는 귀농한 지 몇 년 되는 60대의 농부입니다. 

퇴직 후 도시의 갑갑함을 벗어나고자 산중턱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머릿속이 꽉 찼을 때. 마음이 답답할 때 그를 찾는 저는 김농부의 딸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 잠시동안 그 바람을 마주하면 귀가 얼얼해진다. 


언덕배기에 그래도 푸릇푸릇 새싹들이 올라와 있지 않을까

남쪽에서는 꽃망울들이 터지고 있던데 우리 동네에서 아직 못 본 꽃들이 이곳에는 보이지 않을까 

초록으로 가득 찬 싱그러움을 기대하며 먼 걸음을 왔건만 

반기는 것은 바람뿐이었다. 

나무는 여전히 헐벗은 상태였고, 땅은 아직 아무것도 내어놓지 못했다. 

때가 되어야 내어놓겠지. 

아직 봄의 여물지 않았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커다란 바람에 조금의 온기가 담겨있다는 것쯤이다. 


그래도 김농부는 누구보다 먼저 봄을 시작한다. 

겨울 내내 얼었던 땅이 녹아 꾸덕꾸덕해지면 

그의 포클레인은 용을 쓰며 하루 종일 일을 한다. 


부지런히 돌멩이를 고르고,

땅을 평평하게 만들고 

일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길을 낸다. 

재작년도, 작년도, 매년 그렇게 그의 봄이 시작된다. 


김농부는 본다. 

황토가 펼쳐진 너른 땅에서 

아직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서

김농부는 본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감자를 보고

한 여름의 우거진 고구마 줄기를 보고

꼿꼿하게 자라 오르는 옥수숫대를 본다. 

작은 꽃마다 빼곡히 달린 들깨의 고소함을 보고 

빨갛게 익은 고추의 매움을 눈에 담는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빈 땅에서 

오로지 그만이 벌써

여름의 그와, 가을의 그와, 겨울의 그를 본다. 

포클레인 너머로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본다. 

김농부에게 봄의 땅은 그의 꿈이다.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그의 꿈. 


김농부의 딸은 그렇게 꿈을 꾸고 있는 그를 본다. 

그리고 그의 꿈을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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