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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Apr 14. 2024

시인이 되고 싶어요.

시 쓰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가끔 시를 씁니다. 

어느 날 문득 정말 갑자기 시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음악가에게 악상이 떠오르듯, 

시 속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그러면 시가 술술 써집니다. 

그렇게 시를 쓸 수 있는 날에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읽어주는 이 하나 없어도 

마음이 충만해지곤 합니다. 

정말로 언젠가는 시인이 되어 시집을 내고 싶다는 꿈도 꾸어봅니다. 


하지만 요새는 통 마음에 시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음에 힘을 빼고 불현듯 툭 던져져야 하는데, 

지난겨울을 보내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진 듯합니다. 


그러다 최근 딸아이의 시를 만났습니다. 



               

            봄비 


차갑게 얼어붙던 가지에 

따뜻한 봄 내음 한 방울 떨어뜨려

그 결실을 볼 수만 있다면 

나 견딜 수 없는 것 하나 없네


이렇게 향기 나는 봄비라니. 

게다가 그 봄비 덕에 금방이라도 꽃망울이 톡톡 터질 것 같은 상상이 듭니다. 

어쩌다 이런 시를 썼을까? 

계속 시를 썼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욕심이 슬그머니 올라옵니다. 


아들에게도 말합니다. 

"너도 시를 써볼래?" 

"그래! 바로 쓰지 뭐." 

아들이 카톡으로 시를 보냈습니다. 


<1편>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를 보니 사랑으로 취한다. 


<2편>

병원의 시계태엽이 천천히 감긴다. 

나의 눈도 천천히 감긴다. 


아뿔싸. 시를 쓰면 용돈을 주겠다는 말에 아들이 즉흥으로 시를 보내옵니다. 

내 꾀에 내가 넘어지다니. 엄마는 금방 말을 고칩니다. 


"이런 직설적인 도파민 가득한 청춘시는 뭐지? "

"순수시를 써야지~ 왜 제목은 없어. " 딸아이도 거듭니다. 


그러더니 마지막 시가 도착합니다. 


<극복> 

차가운 겨울이 생명을 죽인다. 

그 사이에 피어난 새로운 새싹 하나 

차가운 겨울 이겨낸 어린 새싹 하나 

언젠가 나도 이겨낼 수 있기를 

그 새싹 하나가 내가 될 수 있기를 


"그래, 이 시에는 적어도 네가 들어있네"라고 대답을 해주었고 

남편이 천 원을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아이들의 마음은 시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마른 어른의 가슴보다 

무언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감정의 보따리가 있는 게 아닐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악할 수 없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는 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를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시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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