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은 죽음 Apr 28. 2024

나만의 속도를 갖는 일

소란한 글방 - 느림에 관하여 (사진-ebs 숲이 그린 집 호빗집 편)

느림에 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소란한 글방에서 '느림'에 관한 글쓰기 소재를 받았다. 열흘 정도 고민했는데 이제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나는 느림의 기쁨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세상의 좋은 것들은 모두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      


 가끔 [숲이 그린 집]이라는 EBS 프로그램을 보는데 건축가인 한 사내가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숲에 있는 집을 찾아가 며칠을 묵으면서 집과 집주인을 관찰하거나 인터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내가 찾아가는 집은 대게 숲, 초원, 바닷가 근처 등 자연을 벗 삼고 있는 집인데 집주인이 직접 지은 집이다. 그렇기에 단 한 집도 똑같은 집은 없고 집을 만든 재료와 모양 그리고 집안과 집 밖의 모든 물건들이 다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날 본 집은 영국의 한 시골 초원에 있는 집이었는데 집주인은 10년이 넘게 여전히 집을 짓는 중이었다. 

그가 말하길 


“집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어요. 제가 완성시키지 못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완성시키게 될 거예요. 우리는 그 과정을 즐길 뿐입니다.”      


 그의 가족은 함께 집을 지어간다. 천천히 그 만의 속도로. 빠른 속도는 그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나무를 직접 베고 양을 지킬 울타리를 겨우 하루에 두 개씩 만들면서도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하루 만에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다. 

 아침햇살에 부부가 손을 꼭 잡고 산책할 수 있는 시간, 식구들이 먹을 우유를 내어주는 산양의 젖 짜는 시간, 손수 양을 길러 1년에 한 번 양털을 미는 시간,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거나 잡초를 뽑는 부부의 시간은 꼼꼼하고 정직하게 흘러간다.       

 아마도 부부에게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거나 느리게 흐른다는 행위에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들일 시간을 꼭 맞게 알고 있을 테니.

      

 반면 내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으로 무얼 먹을까를 생각하다가 오전 일정을 미리 살펴보고, 오후에는 내일 수업준비를 하다가 저녁이 되어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식탁에 앉아서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다가 잠자리에 든다. 

 정성을 들여 생각을 쏟기보다는 닥치는 일을 처리하다가 하루가 가니 밤이 되면 내 시간을 모두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 날은 흘러가는데 무엇이 남았는지를 헤아려보면 마음이 궁색해진다. 그나마 요즘 삶을 꼭꼭 천천히 누릴 수 있는 느림의 기쁨을 조금 알게 된 건 한 권의 책 덕분이다.       


 3월 한 달 동안 [하루 5분의 초록]이라는 한수정 작가님의 책을 읽었는데 작가는 자신이 관찰한 나무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나무가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관찰하고 글을 썼다. 

나도 책 제목처럼 하루 5분씩 나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죽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언제 잎눈이 피어나는지 잎눈이 언제 싹을 피우는지 매일 조금씩 관찰했다. 가까이 있지만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되고, 꽃을 살피게 되었는데 그 색과 모양이 얼마나 신기한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나무야. 너는 너만의 속도로 생명을 피워내고 있구나.’     


 봄은 지천으로 생명을 피워낸다. 그리고 가장 느리게 잎을 틔우고 있는 나무를 발견하고는 언제 잎이 쏙 나올까 기다리게 되었다. 재촉하지 않고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나무를 볼 때 한결 여유가 생겼다.      

집을 짓는 일, 생명을 피워내는 일은 느리지만 모두 기쁜 일이다. 

 요즘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잘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탓했는데 나에게도 느림의 시간을 줘야겠다. 

세상의 좋은 것들은 천천히 완성되어 가니까 작가를 꿈꾸는 내게도 꼭 맞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겠지. 

정성을 들여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내려간다. 시간을 빚어내는 마음으로.      

작가의 이전글 시인이 되고 싶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