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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May 06. 2024

oo 쓰레기는 줍지 말자.

어른들이 잘못했어. 

월요일 아침 교실문을 열자 지독한 냄새에 "욱" 하며 코를 틀어막았다.

환기를 위해 모든 창면을 열고 앞문과 뒷문을 활짝 열어도 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평소 쓸고 닦고를 부지런하게 하는 탓에 전교 어느 교실보다도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지난 2주간 우리 교실을 속수무책으로 냄새 테러를 당했다. 


냄새의 원인은 아이들의 손에 들린 봉지 안에 있었다. 


"선생님, 오늘도 이만큼 주워왔어요." 

"어디서 그렇게 많이 주워왔어." 

"학교 걸어오는 길에 엄청 많아요."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우리 반은 8시부터 10분간 소등행사에 참여했고, 2주 동안 학교 오는 길에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이름하여 등굣길 줍깅. 

13년을 살면서 학교에 오는 길에 쓰레기를 줍는 경험이 얼마나 있을까? 

별로 없다. 

어른인 나도 내 쓰레기를 내가 치우는 경우는 있어도 남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경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지구의 날에 참여하기 위해 쓰레기 줍기를 계획하고 실천하기로 했다. 


물론, 작년 우리 반의 예시를 들어주며 얼마나 쓰레기를 많이 주워왔는지 자랑으로 부채질을 좀 하긴 했지만 그때는 11살 더 순수한 아이들이었고, 지금은 사춘기 초입에 들어가는 13살 아이들이기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걱정이 부질없게도 아이들은 쓰레기를 주워왔다. 

팀을 짜서 놀이터를 돌기도 하며 실천에 관한 스스로의 약속을 잘 지켰다. 

 

가장 많은 쓰레기는 페트병이었다. 

아침마다 한가득씩 쌓이는 페트병의 라벨을 제거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아침풍경이 되었다. 


그런데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페트병과 달리 아주 작은 그 녀석이 골칫거리였다. 


담배꽁초. 

아이들은 거침없이 담배꽁초를 주워왔다. 

처음에는 속으로 놀랬다. 담배꽁초를 줍는다기에 아이들 손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싶어 얼른 흰 장갑을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담배꽁초는 단 몇 개만 모여있어도 역한 냄새가 났다. 비닐에 넣어 꽁꽁 묶어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선언했다. 


"얘들아, 쓰레기를 주워오는 너희들이 정말 너무너무 기특해. 그런데 앞으로 담배꽁초는 줍지 말자."

"왜요? 담배꽁초가 엄청 많아요." 

"그래, 그건 어른들의 잘못이지. 그런데 선생님은 너희들의 건강이 걱정돼!" 


쓰레기를 줍는데 쓰레기를 가려서 주워야 하는 이 행위에 쓴웃음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 교실을 냄새로부터 지켜야 했고, 

혹시 모를 아이들의 건강도 지켜야 했다. 


지구의 날. 

플라스틱 쓰레기가 얼마나 넘쳐나는지에 대해 배웠고, 

10분의 소등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아낄 수 있으며, 

쓰레기를 주워오는 경험과 고체치약을 쓰는 동안 

환경을 생각하며 배움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경험했다. 


얼마 전 딸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나중에 커서 결혼하고 아기도 낳을 거니? "

"결혼을 하고 싶은데 아이는 잘 모르겠어요."

"결혼을 하면 아이도 낳아야지. 왜 안 낳으려는 거야?"

"오염된 지구 환경에 아이를 낳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어렵고 힘들어서가 아니라 

오염된 환경에서 아이를 키워도 되는지 우려스럽다는 마음이, 

그리고 그런 마음이 이해된다는 것이 

불편하고 속상했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훗날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칭찬하며 어린이날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내 마음을 듬뿍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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