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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연 Nov 14. 2023

극복의 문화

한국 녹화사업 반세기가 남긴 교훈

문화학자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은 그의 책 ‘생각의 지리학(Geography of Thought)’에서 동서양의 문화차가 발생한 원인을 지리적 환경에서 찾는다. 서양 문화의 본류인 그리스는 지중해 중심에 위치해 있다. 지중해(地中海)는 말 그대로 대륙 내부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를 항해하는데 대단한 기술이 필요치 않다. 그리스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자연스레 가깝게는 이슬람, 멀게는 아시아의 문명이 유럽으로 유입되는 통로이자 시장으로 발전했다. 이문화 사람들과의 무역은 쉽지 않다. 어제는 이집트인, 오늘은 터키인, 또 내일은 스페인 사람과 흥정을 해야 한다. 매번 대상이 바뀔 때마다 거래 전략을 바꾸기 어려우니, 상대의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먹히는 전술이 필요했고, 이것이 서양에서 분석과 논리가 태동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변화가 상수(常數)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불변의 원칙이나 개념, 일반론에 의존하게 되며, 니스벳은 이 때문에 서양에서 과학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상대성 이론, 할리우드 영화, 맥도널드, 포드 자동차 모두 이러한 서양문화의 산물이다.


동양문화의 중심인 중국의 지리적 환경은 이와 매우 다르다. 동쪽은 태평양, 남서쪽은 히말라야, 북쪽은 고비사막이 가로막고 있어 지형상 섬에 가깝다.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특히 대양을 극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따라서 이문화의 유입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리와 기후 요건에 맞춰 농업기반 경제가 구축되었는데, 이것만큼 따분한 것이 없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그때그때 닥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나 장치(gadget)가 있을 뿐 추상적 개념은 필요치 않다. 동양사상을 대표하는 유교와 손자병법 역시 상황에 따른 행동요령을 제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점가에는 늘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인기다.


한국은 어떤가.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중국의 영향을 받아 문화적 유사성이 강하다. 특히 과거 농업기반의 경제 체제에서 비롯된 집단주의와 유교사상은 제조와 금융, 서비스업이 한창인 지금도 우리 곁을 맴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가 대양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우리는 사람과 교육에 투자했고, 고급두뇌가 만들어낸 다양한 신기술들을 전 세계와 나누고 있다. 대양이 더 이상 항해의 벽이 아닌 오늘날, 한반도는 과거 서양문화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와 더 닮아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자원이 없다는 말은 예전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듯 보인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 의미 없던 것들이 자원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2-3km 지하 깊은 암석층에 숨어있는 셰일가스는 이에 상응하는 굴착기술, 그리고 고강도의 수압으로 암반에 균열을 일으킨 뒤 그 틈새로 빠져나오는 가스를 파이프로 흡입해 지상으로 올리는 프랙킹(fracking)이라는 놀라운 신기술이 없었다면 인류에게 자원으로서 그 가치가 희미한 것이었다. 수소 역시 이를 연료로 변환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자원은 아니었다. 지금 한국의 자원은 무엇인가.


올해로 대한민국 국토녹화 50주년이다. 일제강점기 36년과 6·25 한국전쟁 3년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한반도의 산야는 마치 사막이나 만주벌판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황량했다. 물론 일제의 수탈과 전쟁의 포화 탓도 있지만, 산과 숲을 폐허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너도나도 주위 야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썼다. 벌목장 주위에 있던 낙엽도 야무지게 긁어갔기 때문에 나무가 다시 자랄 영양분은 남지 않았고, 이렇듯 가난한 자들의 무차별적 자원 고갈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산은 숲을 잃어갔다.


산림파괴 현상은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당시 세계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같은 문제로 골치를 앓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의 원조를 받아 녹지사업에 착수한 바 있다. 하지만 1982년 유엔 식량녹업기구(UN FAO)에서 공식 발표한 대로, 성공한 유일한 사례는 한국뿐이다. 물론 비가 올 때마다 토사나 산사태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 국민들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지만, 성공의 키는 ‘자원의 개인화’를 촉진했던 정부의 영민한 정책이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국제기구에서 받은 원조금 일부를 탄광개발에 썼고, 산림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거기서 나오는 열탄을 보급하여 무단 벌목의 동기 자체를 차단했다. 또한 공공녹지화 사업의 결과를 공무원 개인의 이득과 결부시켰다. 심었던 묘목 중 몇 퍼센트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 나무로 성장할 것인지를 확인하는 검목(撿木) 절차에서 그 성과에 따라 책임관료는 특진 등의 인센티브를 누릴 수 있었다. 해당 지역의 검목은 다른 지자체 관료가 와서 실시하도록 하여 지역이기주의에서 비롯될 수 있는 봐주기식 검사나 뇌물수수를 막았다. 자신이 봉사하고 있는 지자체의 검목 결과가 상대적으로 우월해야 스스로에게 득이 되었던 관리들이 뇌물을 먹었다 하여 타 지역의 검목을 결코 후하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림훼손의 주범인 화전민 역시 큰 골칫덩어리였다. 처음에는 이들을 강제로 산에서 내려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삶의 터전인 산으로 다시 올라갔고, 대책으로 정부는 그 삶의 터전을 산 아래로 옮겨주었다.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지었고, 그들에게 환경미화원이 되어 공무를 통해 생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한국의 녹지사업 승리는 산과 숲을 되살려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을 사익화(私益化)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휴양림 예약버튼 하나로 120억 그루의 짙푸른 산림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맑고 푸른 숲에서 재배한 다양한 산나물과 약재 역시 ‘건강식’, ‘비건식’, ‘자연식’ 등의 이름표를 달고 한국과 세계무대에서 인기 있는 식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출처: 산림청


산은 대체로 얕은 토양과 낮은 일조량, 잦은 침식, 극단적 기후 변동 등으로 대표되는,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 그나마 기후와 기술이 허락한다면 비탈면에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을 수 있으나, 이 역시 연간 몇 달 정도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채집과 사냥, 목축업에 의지한다. 평지와 연결된 도로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산사태 등으로 끊기기 쉽고, 기복이 심한 지형 탓에 산 사람의 문화는 주로 고립과 외로움, 또 힘든 자연적 여건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모험심 정도로 요약된다. 그래서 그런지 산은 주로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이유로 고립을 택한 소수민족의 터전이 되어왔다.


산에 사는 사람과 산을 개척하는 사람의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50년간 꾸준히 녹지화 사업을 수행하며, 우리는 인간의 본성과 동기에 대해 철저히 분석했고 이를 정책과 행정에 잘 녹여내었다. 물론 서양의 형이상학적 혹은 관념론적 접근법은 아니더라도, 설득을 위한 일반 필요조건에 대해서는 충분한 학습을 거친 듯하다. 한국의 녹화 기술이 현재 메마른 몽골을 포함, 지구촌 39개 국가에 세계적인 산림녹화 성공사례로 전파 중이라는 사살이 이를 증명한다. 리처드 니스벳을 비롯한 다수의 유물론적 인류학자들이 주장한, 지리적 요건에 의한 문화 형성론으로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주어진 생태학적 조건에 수긍하며 살기보다는 이를 극복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녹지화사업을 통해 자원화된 산과 숲이 반석이라면 이 위에 지을 집은 임업이다. 우리처럼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나라들 중에서 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옆나라 일본 등이 정부 주도로 임업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국가들로 꼽힌다. 산림이 가진 지속 가능성과 생물 다양성이 인간의 기술과 결합되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은 노르웨이숲, 이케아, 사우나, 히노끼 등 몇 개의 고유명사만 들어도 잘 알 수 있다. 스위스 역시 과거 알프스에서 발견한 약초를 알약으로 만들어 주변 유럽국가로 수출하면서 제약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세계 신약발매 1위 기업인 노바티스(Novartis)와 항암치료제 발매 1위인 로슈(Roche)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키위 하면 생각나는 뉴질랜드의 제스프리(Zespri)는 맛도 맛이지만, 농림업 관련 혁신기술 개발과 해외 마케팅에 대한 정부지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도 민관이 함께 임산물의 고급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착실히 진행 중이다. 산림청과 임업진흥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K-FOREST FOOD’는 ‘식탁 위의 작은 숲(Little Forest on Your Table)’을 슬로건으로 청정 임산물 대중화를 기하고 있다. 맑은 숲에서 농약 없이 생산한 임산물을 대상으로 품질검사와 업체의 경영역량 평가를 거쳐 정부의 승인을 받는 구조이다. 제스프리, 선키스트 라벨이 신뢰를 대표하듯 국가가 보증하는 임산물 브랜드인 것. 이러한 접근법은 처벌이나 구속이 아닌 사익 추구를 모티베이션으로 개인의 정부정책 참여를 이끌어냈던 1973년 녹화사업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한다. 지금부터 더 중요한 것은 산림청에서 찍어주는 인증마크가 참여 임업인들에게 실질적 추가소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과 데이터 구축, 또 이를 기반으로 한 해외 마케팅 전략 수립일 게다. 녹지화 성공사례와 함께 이제 우리의 임산물이 세계로 더 뻗어나가길 바란다. 늦었지만 한국의 국토녹화 50주년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데이터로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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