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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May 08. 2023

서양미술사의 고찰(이슬람, 중국, 암흑시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chapter 7-9)를 읽고

 르네상스는 ‘재생’, ’ 부활’이라는 뜻에서 고대 그리스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이다.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와 르네상스 사이에 이전 과는 다른 흐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차에는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이 어떤 방향을 취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중동 지역 국가와 중국은 종교적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 중 하나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 문화가 우세하여 이 근방 미술을 살펴보면 이슬람의 우상숭배 금지로 인해 인간의 형상보다는 문양과 형태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였다. 후기에 들어서는 형상 금지가 완화되어 인체를 묘사한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단축법이나 명암 등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묘사보다는 내용 전달에 더욱 충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은 기독교 미술이 성경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 인체의 사실적 표현을 피한 것과 유사한 흐름 선상에서 볼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은 매장 풍습 등 이집트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인체를 경직되게 표현한 이집트와 달리 중국은 부드러운 곡선을 선호하였다. 고개지의 <여사잠도>를 보면 몸동작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그렸으나 부드럽게 물결치는 듯한 선으로 화면을 구성하였다. 나는 이것이 한지나 비단이 부드럽고 반투명하다는 재료의 특성 때문에 곡선이 용이하고 가벼운 필치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중국 풍경화를 살펴보면 곡선과 운동감을 선호하며 대칭구도를 일부러 피한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물고기를 표현한 것에서는 균형을 중시하여 그렸다. ‘자연’이라는 단어가 ‘스스로 자’, ‘그러할 연’이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처럼 인위적인 것 없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풍경을, 대칭구도를 피함으로써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반해 물고기를 균형 잡히게 그린 것은 생명체 개개의 내부에는 고요하며 균형 잡힌 모습을 이루기 바라는 선조의 마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여사잠도>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에는 통일된 양식 없이 혼돈의 상태의 연속인 암흑시대가 이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원시 미술의 내용과 유사한 점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용의 머리>라는 작품은 장식의 목적뿐만 아니라 악귀를 내쫓는다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다. ‘대지의 정령’ 들이 놀라지 않도록 형상을 제거하였지만 문양과 구성에서 당시 미술가들의 디테일과 솜씨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나는 이 시기에서 인상 깊게 본 점 중 하나는 작품 속에 작가의 생각과 해석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개의 <성 마태오>(도판 105,106)를 살펴보면 내용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맞춘 첫 번째와는 다르게 두 번째 <성 마태오>에는 작품 속 사람의 경외심과 감동을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저자는 이집트에서 ‘알던 것’, 그리스에서 ‘본 것’을 각각 표현했다면 중세는 ‘느낀 것’을 표현하는 쪽으로 심화되고 발전하였다고 해석하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미술가들이 작품 속에 ‘아우라‘ 를 담는 것에 의식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훗날 인상파의 밑거름이 되는 사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성 마태오>-좌:도판 105, 우: 도판 106


 과거부터 ‘장소’는 집단이나 개인의 사상을 담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에게 교회는 신념을 담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용도로써 쓰일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투르네 대성당>은 육중한 각주, 아치, 탑 등의 요소에서 암흑 세력과 싸우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는 ‘전투적인 교회’의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부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이 건물에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장식들은 아름답고 경쾌하기보다는 각자의 목적에 맞게 엄숙함을 유지하였다. 더불어 교회 내부 촛대와 같은 소품들도 교회의 뜻을 담아 제작되었다. <글로스터 대성당의 촛대>를 살펴보면 촛대 전반에 괴수들의 형상이 뒤엉켜 있고 그 위에 교리를 적은 띠를 놓아 교회가 암흑의 세력을 누르는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회화에서는 성경의 내용을 생생한 장면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성스러운 장면 배치에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색채에 있어서도 실제를 연구하고 모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선호하는 색을 사용하는 등 작품에 주관성이 함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색에 있어 주관성이 들어갔다는 대목에서 다시 한번 인상파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로스터 대성당의 촛대>


 중세 이전에는 기존의 상식이나 보이는 대로 그렸다면 중세에 와서 작가의 주관성이 보이는 작업이 눈에 띄게 생겨났다. 이러한 점은 작가가 자의식을 가지게 하고 후일의 미술과 연결 짓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중세미술은 천년의 암흑시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시기가 없더라면 미술이 작가 고유의 산물보다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는 정도로 남았을 수도 있기에 중요한 사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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