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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Stellar Apr 26. 2024

구두를 팔았다

- 비움으로써 새로운 시작

요즘 인기 있는 중고 거래 플랫폼을 가끔 이용한다. 필요 없는 물건을 내놓기도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중고를 먼저 알아보려고 한다. 얼마 전 시작한 테니스도 새 라켓을 바로 사는 것보다 중고를 먼저 알아봤다. 처음부터 비싼 새 라켓을 사기보다 중고로 시작한 후 어느 정도 구력이 붙으면 본인에게 맞는 제대로 된 새 라켓을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품을 들여 사이트를 뒤지고 비교하고 기다린 끝에 마음에 드는 라켓을 살 수 있었다. 


앱에서 그동안 했던 거래 목록을 살펴보았다. 가장 비싸게 거래한 것은 음파 진동 운동기였다. 음파로 진동을 발생시켜 전신 운동을 하는 기구인데, 러닝 머신 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운동기구이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고가였다. 내 평생 이런 기구를 들여놓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집도 넓지도 않아 마땅히 둘 곳도 없고, 오래된 아파트라 층간 소음도 조심스럽다. 뿐만 아니라, 운동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힘든 것인데, 힘들지 않고 편하게 진동으로 살을 빼고 근력을 키우는 운동효과를 얻으려는 생각이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나에게는 못마땅했다.


진동 기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안게 되었다. 한 날 나이 든 기사가 무거운 박스를 들고 오더니 조립하여 거실 한편에 설치했다. 좁은 거실이 더 좁아졌다. 거실에 우뚝 선 기구를 보고 못 마땅하지만 이왕 들어온 것 정을 붙여 가면서 잘 사용해 보자 생각했다. 만만치 않은 가격에 맞는 값어치를 뽑아낼 수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열심히 매뉴얼을 보고 틈만 나면 올라가 온몸을 덜덜덜 떨었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아이들도 열심히 사용하도록 독려했다. 처음 신기해하던 모두의 관심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결국 여느 집 거실 자전거처럼 우리 집 진동 기구도 옷걸이 신세로 전락했다.


자리만 덩그러니 차지하는 진동 기구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부터 밉상이더니, 옷이 주렁주렁 걸린 모습을 보니 더 밉상으로 느껴졌다. 팔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반에 반 값도 안 되는 가격에 팔겠다고 하니 아내는 ‘그래도 그건 너무하다’고 말했다. 그 가격에는 팔 수 없다고 했다. 한번 생각이 머릿속에 박이자 눈에 가시처럼 된 진동 기구를 하루라도 빨리 처분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중고 거래에 나온 가격보다 조금 낮은 가격으로 내놓았다. 가격 손해가 크지만 나에게는 필요 없는, 누군가는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사는 사람이나 진동 기구에게도 좋을 거라 스스로 위로했다. 쉽게 팔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구는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모르지만 단박에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물건은 쓰기 위해서 존재한다. 물건의 가치는 ‘쓰는 데 있다’라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아무리 근사한 물건이라도 사용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아무리 근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석이나 귀금속은 몰라도 일상의 물건은 사용해야만 본래 세상에 태어난 가치를 다하는 것이다. 비싼 옷일지라도 사놓고 입지 않으면 소용없다. 옷을 소유하는데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옷의 가치는 입어야 빛나는 것이고, 옷장의 옷은 그저 짐일 뿐이다. 가전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 보는 TV나 24시간 돌아가는 냉장고는 제 몫을 하는 물건이다. 반면, 거실 한쪽에 비닐로 씌운 에어컨은 가용성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두 달 돌리고, 그것도 전기세가 너무 나올까 봐 켜는 것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는, 이 놈이야 말로 쓰기 위해 산 건지, 아끼기 위해 산 건지 혼란스럽다. 제 할 일보다 안 할 때가 더 많고, 가능한 할 일을 안 하게 하려는 아주 엽기적인 물건이다. 최대한 안 쓰려고 하는 물건을 돈 주고 사다니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한 여름 무더위를 넘기기 위해 에어컨이 필요하지만, 짧은 가동률을 생각해 보면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건에 대한 이런 내 마음 때문에 남아돌거나 쓰지 않는 물건을 그냥 두지 못한다. 아이들이 세명이다 보니 학용품 같은 것이 여유 있기도 하고, 커가면서 자연히 쓰지 않는 것들이 생겼다. 초등학생을 넘기면서 뜯지도 않은 색연필, 줄넘기가, 대학생이 되면서 새로 산 물감이라든지 칼라포스트가 그대로 남았다. 가지고 있어도 앞으로 쓸 일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았다. 아내는 그래도 나중에 혹시 쓸 수 있다고 만류했지만 물건이 제 할 일 하지 않고 노는 것이 보기 싫었다. 싸더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물건이 가진 효용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 세상의 순리이고, 올바른 배분의 원리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것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우리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겸손한 자세이다. 누군가 이 물건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했고, 그 이전에 원료를 채굴하기 위해 내가 상상하지 못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한 제 삼국의 어떤 노동자가 있었을 것이다. 길고 긴 과정을 거쳐 잘 포장된 완성품으로 내게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물감이 그냥 그대로 서랍 속에 언제 사용될지 모른 채 그대로 있는 것은 모두에게 크나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중고로 물건을 처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자랄 때처럼 물건이 귀하지도 않고 웬만한 학용품은 학교에서 지급하다 보니 요즘 세대는 물자가 귀한 줄 모른다. 한 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은 어린이 자전거가 있어, 고만한 아이가 있는 지인에게 필요한지를 물어보기가 너무 어려웠다. 중고 물품을 주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감사한 일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자전거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오랜 망설임 끝에 ‘자전거가 있는데 혹시 필요하면 가져가도 돼’라고 말을 건넸다. 지인은 할아버지가 사준 자전거가 있다고 말했다. 거절한 것도 아닌데도 그 말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쑥스러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할 수 없어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가게에 가서 중고로 팔고 싶다고 했더니, 가게 주인은 대뜸 그냥 폐기 처분하라고 했다. 이렇게 멀쩡한 자전거를, 그것도 나름 메이커가 있는 상품인데 폐기 처분하라고. 언제 우리가 이렇게 넉넉한 세상에 살게 되었는지, 세상이 브레이커 없이 마냥 과속으로 달리는 것 같았다. 낙담하여 자전거를 끌고 왔다. 자전거는 아파트에 주인 없는 자전거를 모아 놓은 곳에 갖다 놓았다. 일정기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자전거는 폐기 처분될 것이다. 공터에 가득 찬 자전거를 보면서 생각했다. 쓰임이 없으면 폐기되는 건 괜찮은데, 아직 쓰임이 남았는데도 쓰지 않고 버리는, 그러면서 또 새로운 물건을 계속 사는, 어리석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굴러 내린 돌덩이를 끝없이 언덕으로 밀어 올리면, 돌덩이는 다시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오고, 또 돌을 밀어 올리는 끝이 없는 시시포스의 운명과 같은 우리네의 부조리한 일상의 모습이 일렁이는 듯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옷장을 정리해야 될 것 같았다. 옷장을 열어보니 겨울 코트와 양복, 세탁소 비닐에 싸인 셔츠로 가득하다. 회사 재직 시절 입었던 사철 양복 일부는 커버에, 일부는 세탁 비닐 안에 있었다. 얇은 셔츠는 세탁소 비닐에 쌓여 언제든지 옷장을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굵직한 옷걸이에 걸린 정장을 보면서 앞으로 입을 일이 있을까 생각하니 지나간 시절이 떠 올랐다. 매일 아침 갓 세탁한 깨끗한 셔츠와 잘 다린 말쑥한 정장 차림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자동차로 출근하는 모습이 예전 모습이 그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생활을 지겹게도 했는데 뭐가 그리워하는 생각도 든다. 칼라가 있는 셔츠와 꽉 조인 넥타이에서 벗어나 라운드 티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가 편하다. 획일화된 차림에서 벗어나 잘 입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지금의 차림도 좋다.


옷장에 가득한 정장과 셔츠를 보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계절에 많아 봐야 두 벌 정도 정장으로 견뎠는데, 그때는 부족했지만, 지금은 남아도 한참 남는다. 입을 일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처분할 방법도 없고 해서 그냥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현관 신발장에 있는 구두가 생각났다. 신발장을 열어보니 반짝이는 구두 몇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정장 스타일의 검은색, 갈색 구두, 단화 스타일 구두 등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다. 같은 색상의 구두가 있어도 번갈아 신기보다는 대게 신는 구두만 신게 된다. 갈색 구두 하나는 큰 맘먹고 샀는데 잘 신지 않았다. 오히려 싸게 산 구두를 더 많이 신은 것 같다. 비싼 메이커 구두는 좋기는 한데 왠지 정이 가지 않아 한 번씩 신고 구두약만 열심히 칠하고 보관만 했다. 


신발장 높이 자리한 말끔하게 놓인 갈색 구두를 집어 들었다. 구두는 구두약과 크림으로 관리를 제대로 해서 고급스러운 짙은 갈색이 잘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처분해야 할 것 같다. 정장에만 어울리는 뾰족한 갈색 구두를 신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장을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시기는 지났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근사 하다는 이유로, 아쉽다는 이유로 더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아쉬운 감정도 유효기간이 끝나 이제는 날려 버려야 하는 때가 되었다. 이제는 잘 신어 주는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찾아온 구두에 대한 예의이다.


중고 거래에 올렸다. 신던 구두를 파는 것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팔리면 재수, 아니면 말고. 그래도 처분을 하는 것이 맞다는 당위 차원에서 거래에 올렸다. 가격이 좋았는지, 상태가 좋았는지 모르지만 얼마 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약속시간에 맞춰 구두를 다시 한번 깨끗이 닦고 종이 쇼핑백에 담아 장소로 나갔다. 단 몇 분만에 거래는 끝났다. 종이 가방에 담긴 구두는 구매자에게 넘겨졌고, 구두 값이 내 계좌에 들어왔다. ‘잘 신으세요’, ‘잘 신을게요’, 하고 구두는 내게서 떠나갔다. 30년 나의 직장 생활이라는 삶의 한 페이지가 떠나갔다. 구두를 보냄으로써 내 인생의 한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그냥 구두를 팔았을 뿐인데, 알 수 없는 썰렁함이 찾아왔다. 안 신으로 가지고 있을 걸 하는 미련이 살포시 살아났지만, 그래도 보내기를 잘한 것이리라. 떠나보내는 심정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장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한 시절이 지나가면 새로운 시절이 온다. 이제 나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내 인생의 새로운 시즌.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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