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과도 (1)

(feat. 초등학생이었던 나)

by Rachel

맞벌이를 하던 시절,
엄마는 동생의 생활 대부분을 내게 맡겼다.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나는 겨우 4학년이었다.


아침에 함께 학교에 가고,
옷차림을 점검하고,
학습지를 확인하는 일들.


어른이 보기엔 사소해 보였겠지만
그 나이의 나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가져가는 일이었다.


동생의 셔츠에 얼룩이 묻어 있어도,
숙제를 하지 않아도
잘못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누나가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그래.”

엄마는 내가 가스불을 켜는 법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밥 좀 챙겨줘”라고 말했다.

그 말의 무게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수업을 중단한 채 집으로 갔다.

작은 손을 잡고 다시 학교로 데려갔지만
그날 저녁, 돌아온 건 감사의 말이 아니었다.


“동생을 잘 못 챙겼다”며
엄마의 손바닥이 내 뺨을 스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엄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한테 엄하게 해야, 동생이 보고 배운다.”

그 말은 그날의 폭력을 ‘교육’으로 바꾸어 놓았다.


억울함은 방향을 잃었고 어린 나는 결국 동생에게 화를 냈다.

뺨이 부어 있는 나를 본 동생은 그저 사과의 말만 반복했다.

그때의 나는 그 사과를 받아야만 하루가 끝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엄마의 말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이기적이다.”,“멍청하다.”,“못돼 처먹었다.”,“내가 너 같으면 죽겠다.”

그 말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살아가는 척하던 아이에게 천천히 균열을 냈다.

그 시기의 나는

어떤 날은 갑자기 숨이 막히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울고 싶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오후, 엄마가 출근한 뒤
나는 주방 칼서랍에서 검은 손잡이의 과도를 꺼냈다.

그리고 누가 볼세라, 신문지에 둘둘 말아 내 책상 서랍 가장 안쪽에 숨겼다.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나만 아는 안쪽, 손이 잘 닿는 곳에.

그 칼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진정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떤 날의 나는 그 종이뭉치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그 안쪽을 만져봐야만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폭언을 들은 날이면 칼을 손에 쥐어보기도 했고
손목 위에 대보며 어떻게 하면 덜 아플지 계산하던 날도 있었다.

집 앞 다리 위를 걸으며 ‘여기서 떨어지면 아프지 않게 끝날까’
생각하던 날도 분명 있었다.




그 시기의 나는
살고 싶어서 버틴 게 아니라
그저,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었다.

칼을 서랍에 넣은 그날부터 내 어린 시절은
더 이상 어린 시절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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