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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 Aug 06. 2024

완성되지 못한 회고록, <애프터썬>

기억의 영상화, 미완의 미학.

영화 <애프터썬>은 실패의 서사다. 영화 내내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아버지 '캘럼'(폴 매스칼)과의 마지막 추억이었던 튀르키예 여행을 회상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을 또렷하게 보지 못하고 떠나간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히는데 실패한다. 여행의 마지막 날 소피는 관광버스를 같이 타고 이동한 사람들에게 캘럼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줄 것을 요청한다. 설렘이 가득한 발걸음으로 사람들 틈 사이를 다니는 소피와 달리, 캘럼은 홀로 돌계단을 오르며 파란 하늘에 가까워진다. 소피가 셋을 세고 사람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때 캘럼은 노래를 부르는 이들보다 한참 위에 서 있으며, 생일을 축하하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화면 속에서 소피와 캘럼은 멀리 떨어져 있다. 여행을 회상하며 아버지의 마음과 가까워지고 싶었으나 끝내 좁혀지지 않은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한눈에 나타나는 순간이다. 소피를 바라보는 캘럼은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마저도 그늘져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생일을 축하하는, 즉,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현재를 축하하는 노래에 기뻐하지 못하고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 캘럼의 모습 위로, 홀로 방 안에서 오열하는 캘럼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우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뒷모습만이 프레임을 채우고 있으며, 이는 소피가 직접 보고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상상에 가깝다.

'기억의 영상화'. 기억의 한계를 다루는 방식

기억은 대개 짧은 장면들로 남아있다. <애프터썬>은 머릿속엔 남아있으나 물리적으로 꺼내볼 수 없는 '기억'이라는 존재를 영상화한다. 기억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모호하다. 영화는 바닷가에서 놀던 기억, 맛있는 식사를 했던 기억, 침대에서 아버지와 대화하던 기억 등 여행 기간 동안의 기억들을 이어 붙인다. 하지만, 그 기억들의 전후 관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정확도 역시 보장할 수 없다. 아버지와 즐겁게 수영하고 맛있는 것을 먹었던 기억들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기억 속 웃고 있던 아버지는 실제로 웃지 않았을 수도 있다. 웃었던 것이 맞는 기억일지라도 아버지를 떠나보낸 현재의 시점에서 아버지가 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해 기억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소피 혼자 노래를 부르러 나갔을 때 아버지가 탐탁지 않아 하던 모습은 당시의 아버지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해보고자 흐릿한 기억들을 모아 영상화한 <애프터썬>은 '파랗게' 채색되었다. 'Blue'는 실제로 '우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우울과 슬픔의 정서를 표현할 때 파란색은 상징적으로 자주 쓰인다. 캘럼의 과거 상처를 떠안고 소피가 회상하는 기억 속 캘럼은 주로 파란 배경 속에 있다. 함께 갔던 바닷가, 수영장의 물은 모두 파란색이다. 방을 온통 노란색으로 꾸미고 싶어 할 정도로 노란색을 좋아했던 어린 소피가 즐거움을 느꼈던 그 중요한 순간만은 노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새롭게 칠해진 장면들은 캘럼과 소피의 감정적 대비를 보여준다. 호텔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때 무대에서 마카레나 춤을 추던 호텔 직원들의 옷은 노란색이고, 같은 호텔에 있던 언니가 준 호텔 자유이용권 색 역시 노란색이다. 캘럼과 함께 잠수했던 파란색 수영장 물속에서 캘럼을 찍는 소피의 필름 카메라는 노란색이지만, 피사체인 아버지의 얼굴엔 파란색만이 감돈다. 소피의 스킨스쿠퍼 슈트의 테두리 부분은 노란색이지만, 캘럼이 입은 슈트의 테두리는 파란색이다. 노란 자유이용권 손목 띠를 두르고 소피가 늦은 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동안 캘럼은 파란 바닷가에 몸을 던지는 시도를 한다. 캘럼이 바다에서 자살 시도를 하는 장면은 소피가 실제로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며 허상이나 다름없다. 소피 자신은 분명히 즐거웠으나 아버지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재구성된 기억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색들을 입고, 중간중간 공백은 소피의 상상으로 채워졌다. 캘럼이 파란 화장실을 배경으로 하고 앉아 붕대를 풀 때 괴로워하던 장면 역시, 소피가 노란 조명이 따뜻하게 내려앉는 방 안에 앉아 책을 읽으며 화장실에 있던 캘럼과 대화하던 기억을 되짚어봤을 때 아버지가 사실은 파란빛에 둘러싸여 소리 없는 절규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내용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억이기에 그 감정선은 모호하다. 캘럼이 여행을 하는 동안 정말 행복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사실 여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알 수 없다. 뭐든 말해도 된다고 따뜻하게 얘기하던 아버지는 끝까지 본인의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았고, 떨어져 있어도 위를 올려다봤을 때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이제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 못하게 되었다. 흐릿한 기억들이 채색되고 구멍은 상상으로 메워져도 영상화된 기억은 애석하게도 선명해지지 않는다.


미완의 미학

<애프터썬>은 그야말로 미괄식 구성이다. 결말에 다다랐을 때 캠코더 영상을 돌려보고 있는 현재의 '소피'의 숏을 통해 이 영화가 캠코더 영상들을 토대로 지난 여행을 회상하는 이야기였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주인공도 이 회상을 통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괄식도 아닌 '미완식' 구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가 미완의 결말을 향해 가는 진행 방식을 택한 이유는 '기억을 영상화'하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애프터썬>은 과거 튀르키예 여행 당시를 찍은 캠코더 영상들과 소피의 파편화된 기억 조각들을 모아 여행의 순간들을 재구성한 영화다. 여행 이후 끝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 '캘럼'의 뒷모습에 닿기 위한 노력이 담긴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캘럼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 문을 닫아버린다. 이렇게 미완성된 영화는 홀로 남겨진 소피가 힘겹게 복기하는 기억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하며, 소피의 상실감과 처절함을 극대화한다.


(영화 <애프터썬>은 오는 8월 28일 극장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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