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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Jan 30. 2023

자 이제 누가 광인이지?

다시 오지 않을 <해피니스> 속에서.

코로나19를 극복한 행복도 잠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광인병 : 감염 시 심한 갈증을 느끼며, 물을 보거나 정상인 사람의 피 냄새를 맡으면 흥분을 멈추지 못하고 '발병'한다. 발병 시 눈동자가 작아지고, 초인적인 힘이 생겨 다른 사람의 목을 무는 병. 감염자로부터 물리거나 긁혔을 때, 또는 실패한 폐렴 치료제였던 '넥스트'를 복용했을 때 부작용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눈동자가 이상하게 변하고, 초인적인 힘이 생겨 사람을 물고 긁는 모습이 여타 다른 좀비 아포칼립스물에서 볼 수 있었던 '좀비'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발병 시간이 지나면 '이성을 되찾는다'. 이성을 되찾은 감염자들은 사람을 물었다는 사실에 자책하기도 하며, 다시 '광인'으로 발병하기까지의 속도도 제각각인데다가, 발병 정도에 따라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도 가능하다. 심지어 광인의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 본인 스스로가 참아낼 수도 있다. '의지만 있다면'. 갈증도, 사람을 무는 것도 참을 수 있다. 즉, 좀비라고 그들을 칭하고 괴물로 바라보기엔 지극히 '사람'답다. 단순히 '병'에 걸렸을 뿐.

"여기 코로나 걸리셨던 분 계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뭐 잘못해서 코로나 걸리셨던 거예요? 병은.. 사람 가려가면서 걸리는 거 아니잖아요. 치료도 못 받고 내쫓길 일은 아니잖아요."
                                                                         - 해피니스 6화 속 윤새봄(한효주)의 대사

이 광인병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드라마 초반부터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드라마 속에서 광인병 사태를 책임지고 있는 '한태석(조우진)'은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현 상황에서 중증 환자들을 냉동 트럭에 가두고, 위험한 상황이라면 총으로 발병 상태인 사람을 가차 없이 쏘기도 한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적이긴 하지만).


반면에, '윤새봄(한효주)'과 '정이현(박형식)'은 광인병에 걸리더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어쨌든 "살아 있는" 사람을 비윤리적으로 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한태석과 대립한다. 광인병의 모습이 기타 다른 콘텐츠들 속 좀비와 비슷하다 보니, 초반에는 이 두 인물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며 캐릭터 설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나도 그랬다.

(왼쪽부터) 드라마 <해피니스> 속 주인공 한태석(조우진), 윤새봄(한효주), 정이현(박형식)

하지만, 드라마 중반부, 한태석이 광인병 사태를 막기 위해 '봉쇄'한 아파트 속에서 가지각색의 아파트 주민들의 갈등 상황들을 보며 시청자들의 반응은 달라졌다. 나 또한 아파트 안에서 사람을 어떻게든 물지 않기 위해, '광인'이 되지 않기 위해 참을 대로 참아온 감염자가 다른 사람을 물지 않고 그 어떤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본 순간, 이 드라마가 단순히 '좀비 아포칼립스물'만의 장르적 쾌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https://youtu.be/6p8fKqYFfws


"누군 총 없어서 안 쏴요?"


피 맛을 본 사람들 vs. 사람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광인병 환자들은 정말,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존재'일까.
"이 사람들도 버티고 있네요. 악착같이"
                                                                             - 해피니스 3화 속 정이현(박형식)의 대사

광인병 사태 총책임자 한태석은 광인병 사태를 최대한 막고, 치료제를 개발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광인병 환자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닌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존재"임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광인병에 감염돈 사람들은 정상인 사람들의 피를 갈망하고, 그 피를 먹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물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으로 보기 쉽다. 병에 걸린 환자들을 두려워하고 피해야 더 많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광인병 환자를 괴물로 바라볼지, 사람으로 바라볼지가 갈리듯 광인병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서도 광인병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자세 역시 제각각이다. 드라마 속에서 같은 병에 걸리고도 다른 모습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을 정말 무서워서 피하고 싶은 존재로 대하며 내쫓고, 강압적으로 격리하고 진압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드라마 <해피니스> 속 피 맛을 즐기는 사람들

광인병에 감염되어, 이미 피 맛을 보고 인간의 모습을 포기한 뒤 광인이 된 상태로 계속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무섭긴 하다. (그나저나 이 피 맛이 대체 어떻길래..) 이성을 완전히 잃는 병이 아니다 보니, 교묘하게 정상인 사람들을 유인하여 어떻게든 '피 맛'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광인' 그 자체다. 과연 치료가 된다고 그들은 정말 사람을 더 이상 물지 않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광인병에 걸리고 어떻게든 또 다른 사람을 물지 않기 위해 갈증을 최대한 참아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떠올리며 무사히 버텨낸 뒤 치료를 받는 것을 기다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고, 발병을 했더라도 이성을 되찾았을 때 자책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병에 걸렸지만, 사람다움은 끝까지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광인병은 '의지만 있다면' 참아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정말 어제까지의 행복을 빼앗은 것은 감염병인 '광인병'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드라마 <해피니스> 속 어떻게든 발병을 참으려는 사람들


광인병에 의해 죽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극한의 상황에서 광인병이 '필요'했을 뿐
드라마 <해피니스> 속 앤드류 (이주승)

극한의 재난 상황을 다루는 드라마이다 보니, 광인병 사태로 인해 봉쇄된 아파트 안에서 광인병으로 인한 갈등을 넘어서서 사람들이 죽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최악으로 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 믿음, 존경은 없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비유적으로) 서로 물고 뜯는 상황들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해피니스>엔 이 모든 것이 없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봉쇄된 상황에서 광인병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격리하고,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란다. 광인병 환자들은 위험한 존재고 우리라도 살기 위해서 그들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광인병 환자들을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으려는 윤새봄, 정이현과 끊임없이 갈등한다. 입장이 다르고, 원하는 바를 자꾸 방해하는 '선'의 위치에 있는 두 주인공들을 제거하고 싶지만, 막상 또 주인공들과 맞설 용기는 없는 비겁한 주민들은 그들 대신 칼을 쥘 사람을 앞에 내세우기 시작한다. 봉쇄 기간 동안 함께 지낸 앤드류가 아파트 안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에게 손에 피 묻힐 일을 맡기기 시작한 아파트 주민들은 이 모든 혼란이 '광인병 환자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살인교사와 방관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주장했던 '정상인들을 위협하는 광인병 환자들'에 의해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광인병'이라는 요소가 필요했을 뿐, 사람을 위협하고 죽이는 건 광인병 감염 및 발병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자, 이제 누가 광인이지?
"우리가 코로나로 알게 된 게 뭔지 압니까? 사람들 몇몇이 서로 물고뜯고 죽이는 것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 해피니스 3화 속 한태석(조우진)의 대사
살인자를 내세워 주인공들을 협박한 뒤, '식량'을 얻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의 모습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광인병의 비주얼도, 살인자의 등장도 아닌 '먹을 것을 얻겠다고' 정말 괴물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이 나열되었을 때였다. 극한의 어려운 상황에서 다 같이 힘을 모아 이겨낼 생각보다는 당장 오늘을 버티기 위해, 오늘의 '내가' 살기 위해 선을 저버리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의지를 저버린 채 광인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인류 최대 재앙을 가져오는 그 어떤 바이러스와 재난보다도 이기심에 굴복하여 인간다움을 포기한 '광인'이 더 무섭다. 그리고 우린 이미 그것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보다, 함께 힘을 모아 이 재난 상황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당장 오늘의 내 삶과 편의가 중요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들, 이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나 하나 살자고 선을 버리고, '사람답게 살' 의지를 버리고, 오히려 그 어려움을 역이용하며 (넓은 의미의) 정치를 하느라 바쁜 사람들... 대의를 위해,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만을 행복을 위해서 편을 가르고, 갈등을 위한 갈등을 유발하며 물고 뜯는 사람들이 정말 사람의 목을 물어 뜯는 광인병보다 더 무섭다.

드라마 <해피니스> 9화 오프닝. 드라마를 한 번에 요약해주는 명장면이다. (하나도 안 해피니스..)

결국 이 드라마는 '광인병'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정말 '괴물', '광인'은 누구인지,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이 드라마 <해피니스> 작가는 전작인 <왓쳐>에서 드라마 중간 중간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요?'라는 대사를 넣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의 진정한 '인간다운'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면, <해피니스>에서는 인간다운 역할의 주체를 일상에서 만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다 확장하여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 속에서 '내 것'을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기괴하다가도,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진 나와 우리의 모습들이 결국 드라마와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은 떨치기 힘들었다. 이전부터 개인주의가 점점 확대되고 있었고, 이 변화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라는 한 재난 상황이 기폭제가 되어, 개인주의를 넘어서서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즉, <해피니스>의 부재처럼 '어제까지의 세상이 무너지고', 당연한 것들이라고 믿었던, 함께 살아가며 느낄 수 있었던 소소한 '해피니스는 다시 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극한의 재난 속 '광인'이 판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본인들의 의지대로,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타인의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들만이 무사히 살아남아 행복을 되찾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끝이 없을 수도 있는 이 재난을 겪고 있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행복'을 되찾기 위해 잃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답은 생각보다 명확해진다. 의지만 있다면...


위 글은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7446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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