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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 Jan 30. 2023

추앙을 통한 해방

살아서 천국을 보는 방법, 천국을 만드는 방법 - <나의 해방일지>

"날 추앙해요"


도통 일상 대화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 드라마에서 들리는 순간, 아마 대부분 시청자들의 반응은 '구 씨'(손석구)와 같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추앙'이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 검색했었다.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는' 관계로 표현한 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다소 생경한 단어 사용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시청자들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자칫하면 지루할 법도 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일상에선 접하기 쉽지 않은 문학적인 표현을 만나 제대로 날개를 달았다.

이 드라마는 극적인 사건 하나 없이 정말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주요 스토리는 남녀가 사랑하며 서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클리셰를 정석적으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추앙'으로 표현된 이들의 사랑은 그동안 수많은 미디어에서 다뤄졌던 사랑과 차별화된 결정적인 요소 몇 가지가 있다. 일단, 여자 주인공인 '염미정'(김지원)은 남자 주인공 '구 씨'의 이름도, 어디서 왔는지도,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추앙부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 '추앙'의 정의는 '응원'이다. 있는 그대로,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는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설정을 넣은 듯하다.


즉, 이들은 사랑을 하지만 서로에게 파고들려고 하지 않고, 서로에게 바라는 게 없고, 위로와 조언도 건네지 않는다. 이는 염미정이 사람에게 지쳐 해방되고 싶어 만든 사내 동호회 '해방 클럽'의 강령과도 연결된다. 염미정은 구 씨를 추앙하기로 결심하고, 해방 클럽을 만들고 나서 자신의 친언니인 '염기정'(이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전적으로 준 적도 없고,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고. 다신 그런 짓 안 해. 잘 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야.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부모한테도 그런 응원 못 받고 컸어, 우리.

흔히 부모의 사랑은 '조건 없이 모든 걸 다 내다 주는 사랑'으로 정의되곤 하지만, 염미정의 말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한테서 마저도 그런 사랑을 받아봤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당연히, 부모의 사랑을 비하하는 뜻이 전혀 아니다.) 드라마에서 두 남녀의 추앙은 단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었던 사람들이 '채워지기 위해', 그래서 봄이 오면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시작한 만큼, 그 누구로부터, 하다못해 부모나 나 자신으로부터도 받아본 적 없어 비어 있는 사랑을 시도해 본다.

일반적인 사랑과 추앙의 차이는 구 씨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염미정이, 사람에게 지쳐 그 어떤 마음도 내주지 않는 것 같은 염미정이, 친오빠 '염창희'(이민기)가 위험하게 농수로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리는 모습에서 한 번 더 나타난다. 우리가 해왔던 사랑은 염미정이 염창희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랑하기에, 상대의 안녕을 위해서 이것저것 바라는 것이다. 추앙 역시 상대가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바라지만, 그러기 위해 상대가 무언가를 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상대의 추앙을 받은 두 남녀는 좋은 일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 '해방'되기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 그렇게 구 씨는 매일 밤을 술에 취해 보내느라 술병이 가득 찼던 방을 깨끗하게 치웠고, 염미정은 모든 관계가 노동이라며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어두운 삶에서 해방 '되기' 위해 술을 마시고, 회피했던 지난날들과 달리, 추앙을 하며 정면 돌파하고 주체적으로 해방 '해보는' 용기를 얻은 셈이다.

특별하고도 이상적인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드라마의 기승전결이 그렇듯, 그들 역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는데, 추앙을 베이스로 둔 이별 방식 역시 독특하다. 구체적인 사유 설명 없이 그냥 떠나려고 하는 구 씨에게 염미정은 화는 나지만 서운하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쏟아 내는 '화'가 아닌, 나의 감정으로만 남겨두는 '서운함'을 표한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을 떠난 남자들을 저주했던 과거와 달리, 구 씨가 감기 한 번 들지 않기를 바라며 추앙을 멈추지 않는다.


'추앙커플'을 포함하여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해방되고 싶어 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경기도민으로서 지긋지긋한 출퇴근길부터 시작해서 가부장적인 가정, 열등감, 비정규직, 마음에 들지 않는 선배와 직장 동료 등이 '염 씨 남매'를 가둬 놓고 있다. 이들을 가둬 놓는 것은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특별한 드라마적 장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현아'(전혜진)가 '드라마는 주인공이 무지 애쓰는데 안 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삶이랑 똑같은데 뭐 하러 쓰냐'라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그렇게 우리 삶이랑 똑같으면 드라마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드라마는 무지 애쓰는데 되지 않는 여러 환경적인 문제들을 꼬집는 전개를 펼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인 염미정이 무시당하는 모습들이 여타 다른 드라마였다면 염미정이 뒤엎든, 구 씨가 뒤엎든, 아니면 제3의 요인으로 인해 염미정을 무시했던 직원들이 인과응보를 받는 모습들로 전개되어 주인공이 해방되는 결말을 맺었을 것이다. 열등감을 '아무나 사랑하며' 채워보겠다는 염기정이 다른 드라마였다면 오로지 염기정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나는 사실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해방된 뒤, '여러분도 소중해요'라는 흔한 메시지를 던지며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냥 흘러간다. 무지 애쓰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라고 무시하는 상사 앞에서 염미정은 그냥 참는다. 염기정은 사랑하고픈 상대가 나타났지만 아이가 있는 싱글대디고, 그에게 거절당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생이 그러하듯, 화가 나지만 생각보다 각 잡고 싸우고 끝을 보는 일은 없으며, 동화 속 운명적인 상대는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드라마에는 무지 애쓰지만 되는 일은 없어서 무기력해져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물들만 가득하다.


물론 여기서 끝났다면 지현아 말대로 뭐 하러 드라마를 쓰냐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은 '추앙'이다. 즉, 이 드라마는 결국 각각 택한 추앙의 루트를 통해 그럭저럭 살아갔던 인생을 그래도 좀 살만한 인생으로 만들어 본다. 염미정은 앞서 설명했던 구 씨와의 추앙을 통해, 염기정은 머리 아프게 계산하고 애태우던 흔한 연애 방식에서 벗어나 본인 마음껏 표현하고 또 상대를 쉬게 하는 염기정만의 추앙을 통해서 말이다.


방식이 어떠하든 추앙은 '나'를 채워준다. 그리고 온전하게 채워진 나는 옥죄어 오던 것들을 뚫고 나아가 비로소 해방을 맞을 수 있게 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결론적으로 '나'를 추앙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궁극적인 메시지는 염창희가 하는 추앙으로 드러난다. 이는 드라마의 메인 커플이 염미정과 구 씨이지만, 사실상 드라마의 진주인공은 염창희라고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염창희는 자신이 '다말증'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염창희가 뱉는 숱한 대사들은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염창희가 '자신을 추앙'하며 '묵직한' 어른이 되어가는 서사를 촘촘히 쌓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친 듯이 힘들고 짜증이 났던 날, 버스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던 뒷사람에게 ATM기 사용 차례를 양보해 준 자신을 뿌듯해하는 장면이 있다. 비록 그 사람은 잔액 부족으로 돈을 인출하지 못했지만, 버스는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의 하루를 응원한다. 남의 불행으로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잘 풀리지 않은 남의 사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괜찮을 테니' 하며 작은 응원을 보내고, 아무것도 되지 않던 하루를 산 자신에게 그래도 잘했다고 소소한 추앙을 한다.


이렇듯 추앙은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과는 달리,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소소한 말 한마디로 그럭저럭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아주 화려하거나 아주 못난 인생은 아니지만, 염창희 말대로 크게 물줄기가 있진 않지만, 가랑비 같은 우리 인생에서 그래도 살 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이 '추앙'인 것이다. 나를 조건 없이 추앙하는 것이다.


염창희가 자동차에 집착하는 이유도 결국 자신을 추앙하여 해방하고자 하는 노력에 해당한다. 염창희는 자신이 차를 운전하면 이상하게 다정해진다고 하는데, 차 안이 온전한 개인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계획이 어디 있냐, 수능 점수에 맞춰 사는 거다'라고 말했던 염창희의 삶은 우리와 가장 비슷하다. 학교를 다니고 나서부터 우리는 온전한 우리인 적이 없다. 매겨진 점수에 갇혀서 계속 살아가는 거다. 가족과 함께하는 집에서도 이 점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만족스럽지 못한 점수를 가진 내가 밉고, 타인과 다른 내가 밉고, 미운 사람에게 그냥 당하고 마는 내가 또 미워서, 바라는 것 없이 응원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를 추앙하지 못했기에 타인을 응원할 수 없는 '찌질한' 사람이 되고, 모든 관계는 계속 흔들린다. 대신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되고 나만 있을 수 있는 자동차는 다르다. 염창희는 '구 씨'의 자동차 안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것의 시초였던 수능 점수와 그 모든 연쇄적인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차를 소유하지 못한 염창희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택했고 이는 온전한 해방을 주진 못했지만, 염창희의 본격적인 추앙이 시작되었음은 분명했다.

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아. 그래서 밤이 더 제정신 같아. (중략)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내가 뭔지, 여기 왜 있는지)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 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여기서 천국은 해방이다. 결국 이 드라마에 따르면 살아서 천국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추앙', '자신을 추앙하는 것'인데, 각자만의 추앙을 시작한 염남매가 정말 해방을 맞이했는지는 끝까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한 줄 소개가 '견딜 수 없이 촌스런 삼 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소생기'이지만, 행복소생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드라마는 마침표를 찍는다.

자신을 추앙하여, 주체적으로 해방을 맞기 위한 첫걸음으로 직장을 관둔 염창희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고, 염창희를 비롯한 염기정과 염미정은 서울에 올라가게 되었다. 해방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하나둘씩 사라지며 해방에 성큼 다가간 것처럼 보였지만, 염창희의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졌다. 염창희는 앞서 설명했듯, 작가가 설정한 이 드라마의 서술자이자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캐릭터다. 그런데 염창희가 해방에 가까워졌음에도 생기를 잃고, 오히려 산포를 떠나 더 어두운 세계로 간 구 씨와 비슷한 양상으로 암막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눕는 모습은 오로지 추앙만으로는 해방을 맞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여주는 듯하다. '남들처럼' 그저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하며 누구나 그렇듯 평범하게 밥벌이를 하고, 승진을 하고, 연애를 하고 그렇게 그냥 '1원짜리 동전'같은 이 세상의 작은 존재 중 1명의 삶을 살아보고자 했지만,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러한 것들을 계속하고 아무리 가져봐도 염창희는 채워지지가 않았다.

'추앙'을 가장 먼저 시도하고 이별을 하고도 추앙을 멈추지 않았던 염미정이 이 드라마의 말미에 살아서 천국을 보기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이는 바로 '환대'다. 드라마 속에서 '추앙'의 정의가 '응원'이었다면, '환대'의 정의는 '용서'와 '내려놓고 받아들임'이다. 자신을 계속 옥죄던 과거와 해방을 방해하는 과거의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잊기 위해 눈을 뜨는 시간 동안 술에 의존했던 구 씨에게 염미정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러한 인물들을 '환대'하라고 한다. '환대'를 제안한 염미정은 자신을 화나게 했던 지나간 시간 속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내려놓은 뒤 해방클럽을 재개했다. 구 씨 역시 염미정처럼 자신의 지나간 시절들을 환대하고 암막 커튼으로 모든 빛을 차단했던 어두운 방 속에서 나와 빛을 보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염기정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머리카락을 한 번 더 내려놓으며 사랑, 존경, 연민을 다할 것이라 새롭게 다짐하며 추앙을 계속하게 되었다.

평범하게 '1원'같은 삶을 살아보려고 했던 염창희는 1원짜리가 70억 개가 쌓이면 될 수 있는 큰 산을 보고 '1원짜리가 아니고 저 산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 것처럼,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위한 길들을 내려놓고 자신이 '앉은자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산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했던 것처럼, 산을 구성하는 한 존재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 그러한 존재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산 그 자체, '묵직한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스스로에게 반하며 소소한 추앙을 한번 해준다.)


이렇게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해방을, 천국을,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해방'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해방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갖춰가고 있으며, 해방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들은 앞으로도 해방을 한 것 같다가도 또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해방을 갈구하며 추앙과 환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장면에서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던 오백 원짜리 동전이 용케 바닥 끝에 걸쳐져 다시 주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어둠 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해 보이는 상황들도 그냥 어쩌다 보면 그럭저럭 흘러가는 게 인생이고, 우리는 그 흘러가는 시간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물론 그러한 시간들을 환대하는 데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추앙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가 실제로도 정말 별 거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또렷하게 마주하고 토닥이는 것을 하지 못해서, 나의 문제점을 찾는 것이 괴로워서, 대부분은 나 자신이 아닌 그 주위를 돌면서 허술한 껍데기를 스스로에게 씌우고 남을 방패 삼으며 해방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오롯이 혼자서 껍데기를 다 내려놓은 뒤 온전한 나를 마주하고, 추앙하며 환대할 시간과 공간을 계속해서 가져야 한다. 해방되기 위한 명확한 하나의 방법은 없다. 그냥 계속 해방을 갈구하면서 스스로 해방을 하기 위해 나 자신을, 그리고 주변인을 추앙하고 환대하며 "사랑밖에 없어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는", 사랑이 가득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방 자체가 아닌, 해방을 위한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인생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을 보기 위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의 모든 순간들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해방할 수 있다. 해방은 멀리 있지 않다.  


위 글은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0000 글에 드라마의 결말 부분을 추가하여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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