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용서에서 시작되는 회복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때론 무언가를 망치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를 실망시키기도 한다.
중요한 순간에 침묵했거나,
너무 성급했던 말 한마디를 후회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진 않는다.
실수 자체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실수 이후에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느냐다.
나는 자주 나를 책망했다.
더 잘할 수 있었던 상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왜 그때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밤마다 되새겼다.
무심코 지나간 하루의 장면들이,
내 안에서는 자꾸만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돌이킬 수 없는 장면들이
슬로모션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나는 왜 늘 이런 식일까."
그 감정의 이름은 자책감이었다.
나는 자책을 성찰이라 믿었다.
그렇게 내 지난 선택들을 반추하고,
다음엔 더 나은 내가 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그 감정 속에 너무 오래 머물면,
사람은 작아진다는 것을.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 어느 순간부터는
성장이 아닌 위축이 되고,
반성이 아닌 낙인이 되어버린다.
사실은 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내게는 단 한 번도 허락하지 못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
나는 왜 그토록 나에게만은 인색했을까.
왜 나의 허점을 들여다보며 따뜻하게 감싸기보단
늘 ‘부족함’이라는 단어로 결론지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상황은 나름의 복잡함을 안고 있었고,
그 순간의 나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내가 돌아봐도
그때의 나는 아직 미숙했고,
상처받아 있었고,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던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그 선택은 그 당시의 너로선 어쩔 수 없는 거였어."
"그걸로 지금의 널 부정하지 않아도 돼."
"그때의 너도, 지금의 너도, 다 괜찮아."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유독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
그 장면엔 어김없이 ‘자책’이 배어 있다.
더 잘했어야 한다는 후회,
조금만 달랐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하지만 이젠 조금씩 안다.
자책으로 삶을 끌고 가는 대신,
용서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내게 조금 더 따뜻했더라면
내 삶도 조금은 더 부드러웠을지도 모른다.
자책을 멈춘다는 건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그건 이제는 나를 다시 품어주는 일이다.
내 실수마저도 껴안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일이다.
이제 나는 나에게 말해주려 한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