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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Sep 04. 2023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b와 d도 구분하지 못했던 내가 캐나다 대학에 가기까지


"그래서, 이 문제의 답이 왜 2번이야?"


고등학교 시절, 영어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은 내 자리로 우르르 몰려와 나와 답을 맞혀보며 이건 왜 답이 이거냐, 저건 왜 안 되냐, 묻곤 했다. 답을 알려주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왜? 라는 질문이 따라올 때면 곤혹스러웠다.


"나도 몰라. 그냥, 읽어보니까 2번이 가장 자연스러운데?"


솔직히, 정말, 나도 왜 그게 답이어야 하는지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문법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있었고, 그냥 끌리대로, 가장 자연스러운 답을 택하면 99.9%는 맞았다.


"칫. 가르쳐주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해."


친구는 토라져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영어 교육에는 문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우세하던 그 시절. 나는 그야말로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로 영어를 '거꾸로' 배웠다. 문법은 뿔도 모르면서 해외 펜팔을 통해 단어만 앞세워 영어 말하기부터 익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처음부터 영어를 '공부'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벌써 22년 전이다. 자막 있는 외국 영화 한 편 제대로 본 적 없었던 나에게 우연히 TV에서 본 파란 눈의 외국 가수는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 이 세계의 지구 반대편에 우리와 다른 얼굴을 가지고, 다른 머리와 눈동자 색을 가지고, 다른 언어로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당시 나에게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었다. 그들과 말해보고 싶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는 아직 인터넷이 가정마다 보급되지도 않았을 때였고, 외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는 것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외 펜팔 사이트를 통해 외국인들과 대화하고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평범했던 내 중학교 시절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렇게 기초도 없이 (심지어 b와 d도 잘 구분하지 못했다) 무작정 부딪히며 회화를 익혔고 (컴퓨터 옆에 한영, 영한사전을 두고 이메일과 편지를 쓸 때마다 찾아보았다), 그렇게 터득한 회화 내용이 학교 영어 교과서에 나오자 영어 시간에 자신감이 붙고 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펜팔친구 나눴던 대화라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나는 교과서 지문을 통째로 외우곤 했다.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들이 구사하는 화려한 문장을 스스로 구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멋있는 문장을 통째로 외우면 나중에 단어만 바꿔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교과서 외에도, 좋아하는 외국 영화가 생기면 대본을 찾아서 외우며 마치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혼자 거울 앞에서 연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대사를 외우면서 영어의 억양도 익히고, 조금 더 그들처럼 말하는 법을 스스로 공부해 나갔다.


영어 회화를 터득하자, 문법에 대한 '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화와 문법은 아주 별개인 것은 아니다. 문법을 알아야 전하고자 하는 바를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회화 속에 문법이 녹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끝낼 때 자주 쓰는 표현인 "I have to go."를 예로 들면, 이 회화 문장 속에는 ~ 해야 한다 have to 라는 문법 표현이 녹아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가 듣는 팝송, 보는 외국 영화, 읽는 영어 책에서 알게 모르게 문법을 습득하고 있었다. 나는 문법을 '공부' 했다기보다 '습득'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to 부정사, 부사, 조동사, 이런 문법을 지칭하는 어려운 말들은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다음 중 수동태인 문장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는 안 나온다. 다음 중 형태가 다른 문장은 무엇인가? 라고 나오지.




내 영어 공부에 정점을 찍어준 것은 바로 'total immersion'의 환경을 제공하는 캐나다 유학이었다.


당시 나는 이모네 식구를 따라 미국 테네시를 갈 것이냐, 캐나다 밴쿠버를 갈 것이냐를 두고 밤낮으로 고민했다. 그 고민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됐다. 미국과 캐나다 대학에 각각 원서를 넣었는데, 둘 중 캐나다 대학에서 먼저 합격 통보가 왔고, 특정 일자 내입학금을 송금하지 않으면 입학이 취소되고 다음 대기자에게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통보가 늦어지는 미국 결과를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렇게 캐나다로 대학을 입학했다.


캐나다에서 나는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TOEFL에서 고득점을 받았다고 해도, 한국에서 알던 영어와 캐나다에서 생활하며 실제로 경험하는 날것의 영어는 달랐다. 심리학 시간에는 교수님이 수업 시간 중에 언급하셨던 과제를 깜빡했고, 캐나다 역사 시험 시간에는 "이 답변은 받을 수 없으니 더 생각해 보고 작성하여 다시 가지고 오라"며 답안지를 거부하 일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영어에 대한 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물음표 살인마'가 되는 것. 5년이라는 캐나다 대학 시절 내내 교수님이 사무실에 계시는 'office hour'에 교수님들을 찾아가 그날 강의 내용, 다음 시간에 배울 내용에 대질문을 쏟아냈고, 소규모로 구성된 'tutorial' 시간에는 부끄러운 실력이었지만 최대한 원어민들 앞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노력했다. 머릿속에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기까지 기다렸다 말을 꺼내려고 하면 발표의 기회는 이미 지나가버리곤 했기 때문에, 나는 문장 구조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일단 손부터 들고 봤다. 논문 과제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매끄럽지 못한 문장 구조라고 생각되면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재미있는 과목은 세련된 문장을 달달 외웠다. 동시에, 틈틈이 밴쿠버 downtown에 위치한 대학병원에서 봉사활동도 했고 (봉사활동도 합격하기가 꽤 까다로웠다), 언어학이라는 전공의 특성상 우리 학교에 영어 연수로 방문하신 한국, 일본 초등학교 교사 분들의 Language Tutor 모집 공고를 자주 접했는데, 그럴 때면 늘 지원해서 부족한 영어실력이지만 참여해 활동을 하곤 했다.


영어를 쓰는 것이 너무 즐거웠기에 영어에 푹 빠져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내 영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입학 시 성적 평균 -C 에서 졸업할 무렵에는 전 과목 A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리고 캐네디언들도 받기 힘들다는 'With Distinction' (우수 졸업 학위)를 받고 당당히 캐나다 대학을 졸업했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학점에 야박하기로 소문난 학교였는데, 4.3점 만점에 누적 평균(CGPA; cumulative GPA)이 3.5만 되어도 우수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3.5를 넘기는 사람들이 몇 없었다.)




영어 잘하는 법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영어를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과목이 그렇겠지만, 영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영어를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업 때문에, 혹은 승진 때문에 꼭 영어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좋아하는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거부감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고, 그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 동안에는 내가 공부한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영어 공부에 빠져들 수가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회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회화와 문법을 전혀 별개로 인식하고 문법 공부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언어 습득에 있어서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리고 영어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만 품게 했다. 회화에 집중하다 보면 영어는 오히려 목적이 아닌 도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직접 소리 내어 말해보면서 조금이나마 흥미를 붙이게 될 수 있다. 회화뿐만 아니라, 교과서가 재미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글을 찾아서 읽는다던지, 좋아하는 미드나 영드를 본다던지, 좋아하는 팝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외운다던지 하는 것들은 영어 공부에 있어서 강력 추천하는 방법이다. (미드 'Friends'도 좋지만, 나는 내 최미드 'The Office'를 보며 많은 공부를 했었다.)


물론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단어 같은 경우 무조건 외워야 한다. 회화를 할 수 있으려면 일단 회화의 조각을 구성하는 단어를 익혀야 한다.  '의자'가 왜 '의자'인가? 우리가 '의자'라고 부르기로 사회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chair가 chair인 데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의자'를 영어로는 chair라고 하기 때문이다. 단어는 이해하며 외우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닥치는 대로 외워야 한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기사나 사설을 읽으면서 마주치는 단어들을 외우면 그 내용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단어를 익히기가 더 수월하다. 이런 식으로 꼭 해야만 하는 것들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접목시켜 공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많이 읽고,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교과서 지문을 통째로 외우고, 내가 좋아하는 과목의 문장 구조를 외웠다. 문법 자체가 바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냥 그대로 외웠고, 다른 상황에 적절한 단어만 끼워 맞춰서 사용하면서 문장 구조와 문법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방법이 모두에게 통하는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단기간에 성적을 올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공부한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부해서 나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저 회사에서 영어 조금 사용하며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직장인에 불과하니까.


언어는 계속 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지속적으로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기에 내 아이도 영어유치원에는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5년 동안의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갓 취업했을 시절, 한동안 적절한 한국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 대화를 할 때에도 애를 먹었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다 보니 말하는 데에 한동안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가려하는 영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애쓰며, 기억을 더듬어 내 영어 공부법을 기록해 본다. 철저한 영어 문외한에서 영어를 하며 먹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어떻게 영어 공부 했어?" 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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