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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Jun 08. 2024

암이 나왔는데요?


그날따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오후에 계약된 업체와의 미팅이 있어서 그랬을까, 왠지 포멀한 자켓이 입고 싶었다. 새로 산 자켓을 입고, 그날따라 잘 정돈된 머리를 버스 유리창에 비쳐보며, “나 오늘 좀 멋있어 보이는데,”라고 중얼거렸다.


햇살도 너무 맑았다.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이,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림 같았다. 럼블피쉬의 ‘예감 좋은 날’의 가사처럼, 이렇게 느낌 좋은 날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지만, 기우이거니 하고 얼른 털어버렸다.


회사에 큰 행사가 얼마 남지 않아 며칠 전부터 무리를 해서 그런지 위가 쑤시고 아파와, 위염약도 탈 겸 지난주에 한 위, 대장 내시경 결과도 들을 겸 병원 방문 후 출근할 생각에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이른 시간이라 병원은 한산했다. 출근해서 회의 전에 정리해야 하는 것들, 행사 전 점검할 사항들을 찬찬히 머릿속으로 되짚어보고 있으니 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결과가 뭔가 안 좋은가?


3년 전 이준이를 낳고 난 이후 내 위는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출산 전 조산의 위험으로 마지막 몇 달은 철저히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했고, 출산 후에도 계속되는 복통에 여러 검사를 받았다. 위염이 위궤양이 되고, 위궤양이 위암 전 단계가 된 상황이었다. 스트레스 및 식단 관리를 하지 않으면 위암으로까지 번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을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들었다. 다행히도 3단계까지 있는데 나는 1단계라고 해서 무리해 봤자 2단계이겠거니, 2단계가 되면 주의하면 되지 뭐, 하며 소홀히 했다. 의사의 표정을 보니 올 것이 왔나, 싶었다.


“왜요..? 좀 안 좋아졌을까요?”


“음.. 결과가 안 좋아요. 암이 나왔는데요?”


헛웃음이 나왔다.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네?”


“암이 나왔어요, 환자분. 조직검사에서요.“


“하.. 아니 이렇게 빨리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나요? 저 내시경 4개월 전에 받았는데요?“


위 때문에 항상 걱정이었던 나는 건강염려증 수준으로 위내시경을 자주 받았고, 지난번 검사는 불과 4개월 전이었다.


“위가 아니라 대장에서 나왔어요. 작은 용종이 하나 있어서 떼면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그게 암으로 나왔어요. 직장암입니다. 상급병원에 가서 진료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 위내시경을 받으면서 별 생각 없이 받았던 대장내시경에서 암이 나왔단다.


멍하니 아무 생각은 나지 않았는데 눈물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의사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내 모습에 당황하여 급히 휴지를 찾아 내 손에 쥐어주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환자분, 진정하시고. 암 걸렸다고 말하면서 운이 좋다고 말씀드리는 게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정말 천운이세요. 이렇게 작은 크기에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리고 위치도 너무 좋아요. 직장암은 항문 근처에서 발견되면 절제술 이후 인공장루 등도 고려해야 하는데, 환자분은 위치가 너무 좋아요. 걱정 안 해도 될 위치예요.“


나를 위로하려는 건지 설명을 해주려는 건지 그림까지 그리며 자꾸 천운이라고 하는 의사를 뒤로하고 대기실로 나갔다. 상급병원에 가야 하니 서류를 받아가야 한단다.


손에 쥔 휴지는 어느새 너덜너덜 쓰레기조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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