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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Nov 16. 2023

신의 후회

5. 설렘

이곳에서의 생활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음악시간이다.

음악실은 우리가 수업받는 교실에서 나와 중앙 출입구 오른쪽으로 돌면 조그마한 교회당

안에서 이루어졌다. 교회당 입구에는 작은 화분들이 양쪽으로 도열되어 있어 변화하는 계절에 따라

다른 모양, 다른 향기를 자랑질하듯 서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으로 긴 의자들이 나란하게 펼쳐져 있는데

가운데 길 한가운데 끝에 두어 계단 위로 올라가는 제단이 있고

제단 뒤로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십자가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크기가 어른 키보다도 길고 색은 짙은 박달나무처럼 보였다.

오른쪽 벽을 타고 작은 창이 나 있었는데 오후가 되면 햇볕이 들어와 그 십자가를 비추었다.


가끔 아무도 몰래 혼자 이곳에 들어와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돌아가곤 했는데,

언제나 나의 최고 관심은 피아노에 몰려있다.

피아노에 앉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면 환청처럼 소리가 들리곤 했다.

혹시나 들킬까, 조심스럽게 천천히 건반에 손을 갖다 대어 본다.

손가락 끝에 차가운 건반이 닿을 즈음 내 심장의 떨림이 피아노에 전달되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감고 난 멋진 연주자가 되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 홍석이구나. "

도둑이 주인에게 범행의 순간을 들킨 듯이 눈을 뜨고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나 집중한 탓에 누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혼자 세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 네... 선생님. 안녕. 하세요. "

음악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이곳에 오신다. 처음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을 때 나는 체육 선생님이라 생각했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과 너무나 편안한 옷차림 등으로 나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음악 선생님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이곳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 때문이다.

말도 느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할 줄 모르는 분이었는데,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강하게, 때로는 아주 약하게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다들 노래를 부를 때 나는 그 소리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노랫소리는 사라지고 피아노 소리만 남아서 나와 친구가 된 듯했다.


" 피아노 칠 줄 아니? "

" 아니요. "

" 음.. 그래. 내가 조금 가르쳐 줄까? "

" 어... 어.... 어..... 그래도 돼요? "

" 그럼. 안 되는 게 어딨어? "

" 어... 어... 그래도. 전 돈도 없고, 또..... " 사실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온통 없는 것뿐이었다.

" 자.. 손을 펴 볼래. " 선생님은 내 양손을 잡고 손가락 하나하나씩 곧게 펴 주셨다.

" 그리고 계란을 잡듯이 오므려 볼래. 그래.. 잘하네. "

내 오른 손가락이 하얀 건반의 딱딱한 한 부분을 누르듯이 튕겼다.

'띵...... '그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듣는 소리였다.

지금껏 들키지 않으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눌러왔던 피아노라면 이번엔 달랐다.

또다시 그 옆의 건반에서 또 다른 건반으로 옮겨지며 누르고 있었다.

'따 당 쏭... '  


오늘이 끝이어도 좋다.
내일이 오지 않아도 좋다. 아니 어제 같은 내일이라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 그래.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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