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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Dec 04. 2023

인어공주와 에릭 사티

나에게 영감을 주는 추천 음악 하나

에릭 사티는 프랑스 근대의 독특한 작곡가이다. 해운업자의 아들로 옹 프루르에서 태어나, 오르가니스트 비노로부터 피아노와 그레고리오 성가와 신비 사상에 관한 기초를 공부했다. 색다른 성격의 숙부로부터 성격적인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1878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으나 아카데믹한 교풍을 싫어하여 중퇴한 다음 안데르센 동화를 탐독하였다. 1888년에 피아노곡 《3개의 짐노페디》를 발표하였고, 1890년에는 조표(調記號)와 마딧줄(小節線)을 폐지한 《3개의 그노시엔느》를 작곡했다. 이것은 드뷔시나 라벨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피아노를 쳐서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 장미 십자단이라는 종교단체에 들어가 《별의 아들》(1891)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미사》(1895)를 작곡했다. 1898년에 파리 교외의 빈민가 아르퀴유-카샹으로 거주를 옮겨 동회 일이며 아동 복지를 위해 힘쓰는 한편, 밤에는 몽마르트르의 흥행장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샹송을 작곡했다.  출처 : 음악의 역사(음악의 대도감)

저자 : 김원구

그의 독특하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음악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그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런 과정이 검색을 통한 것일 뿐이지만.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였다가 중퇴라는 이력에 주목하였다. '음악에 재능이 없다.' '게으르다' ' 쓸모없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파리음악원은 어떤 곳인가?

재능과 부를 가진 이들이 모인 곳 아닌가?

그에게 그런 평가를 내린 선생님들은 과연 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까?


그는 음악이 아닌 안데르센 동화에 심취한다. 당시 동화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만이 아닌 현실과 이상의 괴리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였다. 그림형제의 잔혹 동화는 그 대표적 예이다.

그에게 안데르센 동화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인어공주'에 주목했다.

인어공주는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였고 물거품이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게 된다.

에릭 사티는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였지만 그 역시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다.


군대 생활마저 적응하지 못해 의가사 제대한 후 몽마르트르 카페거리에서 피아노를 치며 겨우 생게를 

이어 가던 중에 모델이자 화가였던 수잔 발라동과의 짧은 인연이 그에게 전부였다. (출처:MBC 서프라이즈)


인어공주의 왕자에게 인어공주는 실제 공주도 아니었고, 대화가 되는 상대도 아니었기에 왕자는 다른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인어공주를 떠났듯이 수잔 발라동에게 에릭 사티는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도 아니었고 미래가 보장된 예술가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초라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가로 보이는 에릭 사티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이었을까?


짐 노페디 1번


지독한 아웃사이더이며 고독한 예술가에게 음악이란 스스로를 달래주는 위대한 탈출구였다.

짐 노페디 1번은 '느리고 비장하게'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작곡가 스스로가 내린 결론일 것이다. 

장 7도 화음은 어긋난 듯 비껴가는 화음에서 많은 상상력과 애통함, 그리고 고독을 안겨준다. 

왼손의 G, 오른손의 F#은 쓰디쓴 인어공주의 마지막 심정과도 같았으리라. 


* 철저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평이기에 사실과 다룰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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