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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츠코 Sep 05. 2023

파리지엔느가 되다

독일을 탈출하고 10일째

파리에 도착한지 딱 10일이 되는 날이다.

독일에 13년을 살면서 바로 옆나라인 프랑스는 딱 한번 방문을 했는데, 그건 Lyon 리옹 이었다. 그것도 오직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었다.

파리에 대해서는 개똥과 악취, 그리고 영어를 못하는 불친절한 파리지앙밖에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겨우 4시간 기차를 타면 올 수 있는 이 곳에, 나는 13년 만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세느강이 보이는 발코니에 앉아 마치 섹스 앤더 시티의 캐리 처럼 브런치에 칼럼을 쓰고 있다.

내 나이 또래 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청소년들에게 성교육 용으로 널리 유명한 섹스 앤더 시티. 언젠가는 그들처럼 성공한 직업을 갖고 멋진 아파트에 살며 전 세계를 여행하며 연애를 하고 싶었다.

20년이 지난 나는 그 꿈을 이뤘을까? 오히려 그들보다 더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혹은 마치 에밀리 인 파리 드라마의 한 장면인 것 처럼 에펠탑을 등 뒤로 하고 파리 시내를 거닌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었고 지금, 파리에 와있다.


파리지앵들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다. 내가 독일에 오래 살았기 때문일까, 그들이 부끄러워하며 말하는 영어는 생각보다도 수준급이고 외국인들에게도 따뜻하다.

어제는 동네에서 왁싱 샵을 예약하고 남은 시간에 카페에 앉아 있다가, 옆 자리에 앉은 노신사가 내 커피를 계산해 주기도 했다. 물론 그 댓가로 그는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았지만.


파리는 생각보다 더럽지도 않다. 독일 여행을 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은 독일의 어느 도시를 가도 중앙역 만큼은 더럽고 위험하다. 나는 파리에 기차로 도착하였는데 역사 주변이 깨끗하고 마약 중독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에 감탄했다. 담배를 많이 피우기로 유명한 파리지앵이지만 길바닥엔 개 똥밖에 없다. 길가에 즐비한 쓰레기통에 담배 꽁초가 쌓여있을 뿐이다.


물론 냄새는 난다. 파리 지하철의 냄새가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하지만 그만큼 향수를 사랑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도시이다. 향수로 목욕을 하고 나가더라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독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물론 그곳에서 파는 향수도 메이드인 프랑스 였지만.



파리에 도착한 첫날 무작정 찾아간 몽마르뜨에서 먹은 저녁식사. 37도의 더위에서 에어컨이 없는 실내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던 magret de canard(오리 고기 요리) 는 내 최초의 오리지날 프렌치 음식이었다. 그리고 인생 최고의 오리고기였다.


나는 이렇게 한국인으로 독일에 살다가 프랑스에 와 또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어느 나라에 살든 몇년을 살든 국적이 다르면 이방인이라고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불어가 정겹고 프랑스 치즈가 좋고 파리의 하늘이 포근하다. 길가에 보이는 수많은 꽃들과 가로수마저 나를 반기는 것 같다. 벌써부터 집에 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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