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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용 May 13. 2023

본인 맞습니까??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어머니는 이름이 어려워서 아희라 불렀고, 동네 사람들은 언년이라 불렀지만 그의 아버지는 돌림자로 지은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는 데는 다 그만한 자부심이 있었다. 선대는 고려 개국공신인 유근필 장군의 피를 물려받은 가문이며, 과거에는 서너 명의 판사를 배출한 양반집이라며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다. 씨족 중심인 그의 동네는 일가친척들이 윗마을 아랫마을에 모여 살아 돌림자를 사용한 이름이 겹칠 땐 윗마을 동준, 아랫마을 동준이라고 중간마을 동준으로 구분해서 불러야 할 때도 있었다.     


신학기 첫날 선생님은 교탁에 놓인 출석부를 보더니 “유동용이 누구야? 첫 페이지 읽어봐!” 그는 오늘도 특이한 이름 때문에 교과서를 서너 번 읽었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미웠다. 흔한 이름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유동용이 뭐야~’ 그날 밤 일기장엔 멋진 이름을  서너 개 지어놓고 자칭 반장이 되어 그를 <도롱뇽>이라고 놀렸던 아이들을 실컷 혼내주었다.     


체육 시간에는 발달한 그의 승모근이 이름값을 제칠 때가 많아서 3선 츄리닝의 핏은 같은반 아이들의 시선을 강타했다. 배구 시합에서 강스파이크로 서너 골을 넣으면 선생님은 그의 체육복 상의에 붙은 명찰을 응시하며 “유 공용! 대단해~”라는 말에 아이들이 박장대소 했다.     


20대에는 유행하는 지점토를 배우기 위해 재료를 전화로 주문하고 받을 분 이름을 “유자. 동자. 용자요”라고 했더니 상대방이 한참을 웃으며 “요자요? 요자라구여?”라며 반문해 퉁명스레 “네~~”라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회사에 남자가 지점토를 들고 찾아와 “혹시 요동자씨 맞죠?” 라며 그에게 수령 사인을 권했다.  

   

그후로 부서에서 그는 <요동자>로 통했다.     


30대에는 관공서나 은행에서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유동용 선생님 계세요?“라고 불러서 나가면 “본인 맞습니까?”를 재차 확인하는게 싫어 그의 아버지께 개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양반집 가문 돌림자를 두고 어디서 함부로 개명을 하느냐?”라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그의 동생들과 <동자 돌림>에 대한 불만이 전화기를 달구었다.     


40대 만년 과장인 그는 이름값도 못하는 것 같아 서너 번의 승진시험을 봤지만 계속 미끄러졌다. 퇴근 후 지하철 안에서 빅체(지진 난 것같이 쪼개진 글씨체)로 된 작명소 광고가 한 눈에 들어왔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낙방이 돌림자 때문인 것 같아 잡았던 손잡이에 힘이 풀렸다.

    

재충전의 약발이 떨어지는 일요일 오후. 그의 사촌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달에 딸내미가 시집 가는데 청첩장에 신부 엄마 이름이 동맹이가 뭐니?” “나도 아버지 무서워서 개명을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몰래 바꿀 걸 그랬다”라며 사촌 언니도 이름에 대한 불만을 큰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양반은 여자들 이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따르는게 그게 양반이냐?” “우리 집안 여자들 그놈의 돌림 때문에 다 망쳤다” “얼어죽을, 그깟 돌림이 무슨 대수라고?”     


불만이 숙성시킨 앙칼진 목소리에 걸죽한 사투리로 훈수를 두며 그는 승진에 떨어진 이유가 그놈의 돌림자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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