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난번 이야기의 주제는...
<'공부'와 '인생 공부'의 차이>였다.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최고의 지성이 모였다는 대학이 나서야 한다. 대학에서 새로운 삶의 패턴을 제시해줘야 한다. 단순 '지식 공부'에서 탈피하여 삶의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느리게 가는 것,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내재된 삶의 정신적 즐거움으로 우리의 내면을 싱그럽게 채워줘야 한다. 이른바 '인생 공부'다.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학문'이라고 불렀다.
여기까지가 지난번 글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각박한 삶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지혜'와 '인생 공부'는 혹시 너무 한가한 이야기가 아닐까? 이런 공부를 가르친다는 건 너무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닐까?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서 자칫 굶어 죽지는 않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 반대다. 오늘은 K-문화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지혜의 공부'가 가져다주는 긍정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아저씨는 어디서 왔어요?"
길에서 만난 꼬마 스님이 물어본다. 중국 사천성四川省 바이위白玉에 갔을 때였다. 사천성의 수도인 성도成都 Chéngdū에서 여기를 자동차로 가자면, 꼬박 사흘 동안 해발 고도 4~5천 미터의 험산준령과 깊은 협곡을 몇 번이나 넘어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한국이 어디냐고 묻는다. 뭐라고 설명하지? 그때 꼬마 스님의 손에 쥐어진 과자 봉지가 보인다. 근데... 봉지에... 어라,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 있네?
"아하~ 따창진!!! 무지 잼있어여. 나 따창진 좋아여."
"왜 좋아여?"
"타(→) 하오(↓) 총(→)밍(↗), 她好聪明! 똑똑하잖아요."
(좌) 사색과 명상의 호법신이 머무는 Temple city 바이위. (중) 꼬마 승려 츠청빠쫑 (우) 츠청빠쫑이 먹던 과자, 그 브랜드 이름은... 따(↘)창(↗)진(→), 대장금이었다.
우리 민족이 만든 최고의 문화콘텐츠는 무엇일까? 세종대왕의 한글을 꼽아야 한다. 그다음엔? 말이 필요 없다. 단연코 <대장금>이다. 꼬마 스님 츠청빠쫑 뿐이 아니었다. 티베트 어떤 오지에 가도 대장금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모두 대장금의 고향인 한국에서 온 소오생을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장금>은 전 세계 100개 국가에서 30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지 않는가. 홍콩의 시청률은 47%, 중동 사막의 패권주의 국가 이란에서의 시청률은 무려 90%나 된단다. 그 경제적 효과가 20년 전에 이미 한화 3조 원을 넘었단다. 관련 산업에 미친 파급 효과까지 '돈'으로 환산하자면 대체 얼마로 계산해야 할지 상상을 불허한다.
세계인들은 대체 왜 이렇게 <대장금>에 매료된 것일까? 티베트 오지의 꼬마 스님 츠청빠쫑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그 핵심을 찔렀다.
"타(→) 하오(↓) 총(→)밍(↗), 她好聪明! 똑똑하잖아요."
똑똑하다고? 뭐가? 계속 물어보니까 그다음부터는 머리만 긁적긁적... 아무튼 똑똑하지 않느냐, 그래도 자신의 소신을 일관되게 지킨다. 하하 너무 귀엽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똑똑함, 총명함'은 '지식'을 말한 것일까, '지혜'를 말한 것일까? 소오생은 후자, '지혜'라고 생각한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신가?
소오생은 왕년에 중국 대륙 여기저기 참 많이도 싸돌아다녔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그 수많은 중국인 중에서 한(↗)쥐(↘), [ 韩剧 hánjù ]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정말로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좋아할까? 너무나 궁금해서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물어보았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모두가 일치했다. 주인공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슬기롭다는 것이었다.
그런가?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오생은 <대장금>도 중국에서 3579로 띄엄띄엄 봤다. 중국엔 수백 개의 TV채널이 있는데, 채널을 돌리다 보면 24시간 내내 어디선가에서는 반드시 <대장금>을 방영하고 있었다. 그걸 통해 본 탓이다. 소오생이야 그렇건 말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이 얘긴 이 정도로 통과!
좌우지간에... 그럼 미드, 미국 드라마나 중드, 일드의 남주 여주는 슬기롭지 않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들은 아닌데, 한드의 주인공은 슬기로워서 그 매력에 빠진다는 얘기 아닌가? 한드에서만 엿보이는 그 '슬기로움'이란 대체 무슨 뜻일까? 오랫동안 곰곰 생각해 보았다. 소오생 버전의 '똑똑함' 또는 '슬기로움'이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잘 보전되어 내려오는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이었다.
'문화'란 무엇인가? 이미 지난 시간에 소오생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즉 '가치관'이다. '전통문화'란 또 무엇일까? 과거에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주류主流를 형성했던 가치관을 말한다. 그렇다면 '동방 세계의 전통문화'란? 동방 세계의 리더 그룹에서 오랜 시간 동안 주류를 형성했던 가치관이다.
그런데 '동방 세계의 전통문화' 중에도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다.
이걸 간과하면 안 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주류는 '유교, 도교, 불교'이고,
비주류는 '유가, 도가, 불가 사상'이다.
'유가儒家'와 '유교儒敎'? 그게 그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한 글자 차이지만 호리지차毫釐之差가 천리지차千里之差다. 그렇다면...
'~가家'와 '~교敎'는 어떻게 다른가?
‘교敎’는 ‘가家’가 집단화된 것이다. 집단화가 되고 주류문화가 되면 본질이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유가'는 '공자의 사상'을 주축으로 한 소규모의 모임이다. 비주류다. '유교'는 공자의 이름을 팔아먹은 자들의 대규모 집단 문화다. 역대의 모든 정권과 결탁하여 주류문화가 되었다. 그 과정을 <10. 중국음식문화의 고향, 곡부>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으니 꼭 읽어보시고, 앞으로는 절대 '~가家'와 '~교敎'를 혼동하지 마시라.
소오생이 말하는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이란 '동방 세계의 전통문화' 중에서도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가치관, 즉 공자와 노자/장자, 그리고 석가모니의 인생관과 세계관, 우주관을 말한다. 하빌랜드 W. A. Haviland의 《문화인류학》이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버리고 채택해야 한다는 바로 그 패러다임이다. '진짜'는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에 숨어 있는 것이다.
한드, 나아가 한류문화에는 바로 이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이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이 녹아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유가/도가/불가 사상이 가장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 그 이유와 과정은 부차적인 문제이니 나중에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하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결과로써 펼쳐져 있는 '지금'이다.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나라는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보다도,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을 훨씬 더 많이 보전하고 있다. 그 긍정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알게 모르게 한드 속에 녹아들어 간 것이다.
요새 '문화콘텐츠'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많은 대학의 어문학과들이 과거의 명칭을 버리고 이 단어를 학과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문화콘텐츠학과로. 그렇게 바꾸면 '좋은' 수험생들을 '많이' 모집할 수 있단다. 정말일까? 아니, 대체 '문화콘텐츠'가 무슨 뜻이길래?
여기서 심심풀이 삼아 네모 놀이를 해보자. 다음 네모 안에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보시라. 너무 길면 곤란하다.
사실 '문화콘텐츠'라는 전공 분야는 최근에 시류의 흐름을 타고 생긴 것이다. 소오생이 재직했던 학교에는 이 흐름을 가장 먼저 올라탄, 눈치 빠른 S대학 출신의 S교수가 있었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네모 안을 채워보라고 한 것이다. 그의 답은 이랬다.
기가 막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돈과 물질 그리고 욕망뿐이라는 얘기 아닌가! 그런데 그런 인식은 비단 그 S교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정부 당국자로부터 수험생들까지 모두 모두 '문화콘텐츠'를 '돈 될 거리'로 인식하고 있다. 어디 '문화콘텐츠' 뿐이겠는가. '공부' 자체를 '돈 될 거리'로만 인식한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대장금>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그 속에 한국적인 먹거리와 놀거리, 구경거리가 있었기 때문일까? 불행하게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대장금>을 제작했던 사람들조차. 그래서 그들은 숱한 제2, 제3의 <대장금> 아류 작품을 제작했지만 세계 시장에서 모두 참패를 면치 못했다. 성공 요인을 잘못짚은 것이다.
<대장금>은 성공했으나 그 아류 작품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장금>에는 비주류가 주류의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지혜'가 있었고 아류에는 그것이 없었다. 그래서 <대장금>에는 '감동'이 있었고, 아류에는 '감동'이 없었던 것이다.
'감동'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문화에서 온다.
'감동'의 요인은 '지식'이 아닌 '지혜', 서구의 물질문명이 아닌 동아시아의 정신문화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물질과 '돈 될 거리'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르칠 게 아니라, 비주류문화 속의 '지혜'와 '감동'을 발굴하고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을 재조명하여 가르쳐야 한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물질'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물질'에 집착한다면, 바로 그 순간, '감동'은 사라져 버린다.
BTS가, K문화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며, 동시에 아이돌을 꿈꾸던 숱한 젊은 연예인들이 외로움과 허망함 속에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 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자명한 사실 아닌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 '지식'과 '공부'
▶ 주류문화의 패권주의 패러다임
▶ 자본주의와 돈, 물질문명에 관한 것
▶ 개인의 욕망 충족을 위한 것
▶ 결과: 허망함
◎ '지혜'와 '인생 공부'
▶ 비주류문화
▶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한국문화 속에 많이 보전되어 있다.
▶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것
▶ 결과: 세계인의 환영을 받고 있다. 경제 효과도 엄청나다. 그러나 물질과 경제 효과에 눈이 어두워 그것에 '집착'하는 순간 '감동'은 사라지고 허망과 파멸만 남는다.
지난번 <'공부'와 '인생 공부'의 차이>의 댓글을 통해, 수학 선생님인 @Bono 작가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그 내용을 같이 읽어보자.
지식과 지혜. 둘의 차이를 아는 눈을 갖고 싶습니다. 달달달달 공식을 외우게 만들며 주류문화에 편승하기 위한 티켓을 받으라 강요 중인 저인지라,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한 번씩 다른 이야기들, 읽었던 책들이나 영화, 좋은 글들... 이런 걸 알려주고 싶은데, 그 말하면 또 아이들 눈이 멍해져요. 아주 작은 소수점의 등급칸에 끼여서 생각주머니도 작아져만 가는 것 같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제게 지혜를 주세요. 교수(주)님!
이게 어찌 작가님 만의 고민이겠는가. 소오생의 고민이요,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민과 갈등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신 보노 수학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다음 글에서는 지식과 지혜의 차이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잠시만 같이 생각해 보자. 아래에 제시하는 세 가지 '화두'에 대해 각각 10초 만이라도, 합쳐서 30초 만이라도 시간을 투자하여 모두 함께 곰곰 생각해 보시면 참 좋겠다. 난센스 퀴즈는 절대 아니다. 리얼 fact 차원에서 생각하시면 된다.
[ 문제 1 ]
점 A에서 점 B로 가는 가장 빠른 선은 무엇일까? 직선일까, 곡선일까? 왜 그럴까?
[ 문제 2 ]
수평선은 직선일까 곡선일까?
[ 문제 3 ]
1 더하기 1은 얼마일까?
왜 이런 '뻔한 것들'을 곰곰 생각해 보자는 것인지, 우선 30초를 투자하신 후에 다음 글을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다음 글의 제목은 <수학과 문학은 동전의 양면>이다. 개봉 박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