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적 모습이 대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은 학위증명서나 발행하는 기관, 취업을 위해 졸업장이나 받으려고 다니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학일까? 어떻게 해야 '대학'이 '대학'다워질 수 있을까?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자.
'공부'와 '인생 공부'
쌤은 교수님이 아니라 인생 선배 같아요.
쌤 수업은 '공부'가 아니라 '인생 공부' 같거든요.
그래서 어떤 땐 교수가 아니라 교주 같기도 해요. ㅋㅋㅋ
학생들에게 종종 듣는 소리다. 아니, '공부'는 뭐고 '인생 공부'는 또 뭐람? 왜 그걸 나눠야 하는 거지?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문화'란 무엇인가
K- Culture, 한류 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 본질은 무엇일까. 잠시 '문화'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자.
2007년, 재직하고 있던 대학에서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부응하고자 필자 소속 학과의 명칭을 바꾸었다. '문학'이라는 단어 대신에 '문화'를 넣은 것이다. 수험생들이 보기에 좀 더 쉽고 친근해 보인다나 어쩐다나. 그만큼 '문학'의 이미지가 어렵고 안 좋다는 뜻이겠다.
뭐 그럴 수 있다. 인재를 양성하는 건 인생의 3대 즐거움 중의 하나라니, '좋은' 학생을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고민에 빠졌다. '문학'이 무엇인지, 왜 학생들이 이걸 공부해야 하는지 이제야 좀 알게 된 것 같은데, 그 단어를 버리고 '문화'를 넣으라니. 헐...
문제는 나 자신부터 '문화'가 무엇인지 왜 이걸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 학생들에게 그 당위성을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안면 몰수하고 '모르는 것'을 가르치기엔 그 알량한 소오생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 하는 수 없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니 혼자 공부해서 배울 수밖에.
도서관에 가서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문화' 관련 책을 20권 정도 빌려왔다. '문화'란 무엇인가. 왜 이걸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낑낑대며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쓴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모두 '문화가 무엇인지 당연히 다 아는 것'을 전제로 하고 쓴 책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책을 쓰신 분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얼굴이 벌게져서 괜히 시비 걸지 말라며 도리어 화를 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문화'란 이런 거란다.
문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 온 물질적 · 정신적 과정의 산물.(네이버 지식사전)
엥? 이게 뭔 소리? 말한 사람도 미안했는지 그 뒤에 한 마디 덧붙였다. "문화라는 용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이게 뭐야. 그럼 하나마나 한 소리잖아... ㅋㅋㅋㅋ
동아시아의 일원론 패러다임에 입각한 '학문'의 공부 방법은, 그 어떤 연구 대상에 대해 좀처럼 먼저 개념 정의를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특징을 주욱 살펴보게 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느끼게 도와준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답답했다. 언능언능 갈켜주지 않고 왜 자꾸 뜸을 들이는 거야, 아우 땁땁해.
서구 이원론 패러다임은 반대로 먼저 개념 정의부터 내린다. 예컨대, literature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사랑이란 무엇이다... 등등, 상당히 추상적인 것도 수학 공식 알려주듯 먼저 개념 정의부터 내려준다. 근데 웃기는 게 대부분 정의를 안 했을 때보다 더 헷갈린다. 아니 대체 이게 뭐지? 공부할수록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아무튼 그때 인연으로 만난 책이 미국의 인류학자 하빌랜드 William A. Haviland(1934~ )의 《문화인류학 Culture Anthropology》이었다. (중국 상해고적출판사, 중국어 번역본, 2002) 서구 이원론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매우 훌륭한 책이었다. '문화'를 공부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문화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기원이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방원인) 때부터 지금까지 약 250~350 만년 동안 인류의 모든 행위, 삶의 패턴을 종합 분석한 거였다. 과거 소오생이 여러 방면에 걸쳐 이것저것 동냥 받듯 공부했을 때 배우고 느꼈던 조각조각들이 비로소 하나의 완전체로 맞추어지는 듯한 쾌감! 이야. 내 공부 방향이 틀리지 않았어! 마침내 퍼즐이 완성된 그런 느낌이었다.
'문화인류학'의 목적은 더욱 인상 깊었다.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닥쳐올 '미래 예측'이 목적이었다. 바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250만 년 동안 벌어졌던 삶의 패턴과,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변화한 인간 삶의 패턴으로 볼 때, 인류는 조만간 멸종할 것이 틀림없다는 이야기다.
'문화인류학'은 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만 그나마 희망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하빌랜드의 결론을 소오생 버전으로 옮겨보겠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담긴 가치를 찾아내자!
그것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삼아야 한다. 그 키워드는 동아시아의 전통문화에 있다.
놀랍지 않은가!
동아시아의 전통문화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일까?
소오생 버전으로 풀이한 '문화'란... 한 마디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그 어떤 인간의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나 신념'이다. 또는 '그 가치와 신념이 모종의 행위로 표출된 모든 것'이다. 풀어서 말하니까 더 어렵죠? ^^;; 그래서 개념 정의보다는 그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
<특징 1> 자문화중심주의 Ethnocentrism
우리 모두는 그 어떤 문화집단에 겹치기로 소속되어 있다. 예컨대 동아시아에 태어나서 살고 있으므로 동아시아 문화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동시에 21세기 대한민국 문화집단 소속이며, 각 지역 각 지방의 문화집단에 속해 있다. 기독교를 믿으면 기독교 문화집단, 불교를 믿으면 불교문화집단, 그중에서도 각 종파의 서로 다른 교회나 사찰 소속이다.
뿐만 아니다. 대학별로 전공별로 취미별로 엄청나게 많은 문화집단에 겹치기로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끼리의 가치나 신념을 쌓아간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관, 즉 '자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우월감을 가진다. 타인이 속한 집단의 문화나 그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아니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편견과 선입견으로 타인 집단의 세계를 함부로 평가한다. 힘과 패권을 장악한 문화집단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문화의 갈등과 충돌이다. 모든 인류 역사의 전쟁은 여기에서 비롯된 '문화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자문화중심주의의 오류다.
<특징 2>주류主流 문화의 패권주의
지금 현재 전 세계 문화의 주류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을까? 두 말하면 잔소리. 미국이다. 물질문명이다. 자본주의, 돈의 문화다. 과거에는 달러와 코카콜라! 이제는 스타벅스와 A.I. 가 글로벌 주류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주류 문화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을까? 중국의 한족漢族이다. 그들 역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는 말로만 내거는 구호일 뿐, 이제는 씨도 안 먹힌다. 할 수 없이 그 대체로 이른바 '대중화주의 大中華主義'를 채택한 결과, 동아시아는 물론 남아시아까지 위협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거기에 한물 간 일본의 '동양 우월주의'와 '대동아주의 大東亞主義'가 주인인 미국의 힘을 믿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식민지 100년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도 한 몫하고 있다. 수구 세력과 결탁한 정권이 똥개처럼 도둑놈한테는 꼬리를 딸랑딸랑, 진짜 주인인 국민들에겐 사납게 멍멍 짖어댄다.
힘을 장악한 이들 주류主流 세력은 자신들 삶의 패턴을 '표준'으로 내세운다. 그리고는 이런 식으로 살아라! 명령한다. 물질과 욕망 충족! 얼핏 보기에 '크고 많아 보이는 것'으로 유혹하며, 자신들에게 복종하며 살기를 강요한다. 그 결과가 오늘날 대한민국에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화려함 뒤에 숨은 외로움과 허망함...
인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은 표면적으로는 기후 위기 같지만, 그 본질은 이들 주류 문화의 패권주의다. 그들이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이 본질이다. 하빌랜드는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특징 3>비주류문화와 문화상대주의 Cultural relativism
문화인류학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이들 패권주의 문화집단이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자본주의 물질문명에서 느리게 가는 것, 작은 것과 적은 것을 중시하는 삶의 패턴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서 그런 삶의 패턴을 찾을 수 있을까? 소외받고 있는, 사라져 가고 있는, 소수의 '비주류문화'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전통 학문, 사대부/선비들의 진정한 풍류 문화, 남아시아의 밀림에 사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문화, 사막과 초원에 사는 위구르족/투르크족/몽골족의 삶의 방식, 특히 고원에 사는 티베트족의 삶의 방식에 주목하면 거기에 해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속한 주류문화, 그 가치관은 절대 선이 아니다. 소외받고 있는 비주류 문화집단 속에서 비로소 '참 나(眞我)'를 만날 수도 있다. 느리게 가는 것, 작은 것과 적은 것을 중시하는 비주류문화에 주목하는 것, 그것이 문화상대주의다.
공부와 인생 공부, 지식과 지혜
결론을 내자.
오늘날 대한민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주류문화의 패권주의 패러다임이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고 싶으면 기득권 수구 세력이 공고하게 쌓아놓은 스카이캐슬의 제도권 안에 들어와서 자신들에게 충성하라 유혹하고 강요한다.
그들 문화집단에서 말하는 '공부'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돈을 벌고 높은 자리 차지하여 타인 위에 군림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는 것. 그리하여 억지로 단편적인 '지식'을 달달달 머릿속에 주입하는 것, 그것이 '공부'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그 결과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외로움과 허망함 뿐이다...
그렇다면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인가.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 얘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외로움과 허망함 대신에 우리의 내면을 싱그럽게 가득 채워줄 수 있는 그 정신적 즐거움에 대해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이 말하는 '인생 공부'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은 아닐까? 동아시아의 전통문화는 그것을 흔히 '학문'이요, '지혜'라고 부른다.
대학에서는 주류문화 집단의 '지식 패러다임' 대신, 비주류문화 집단의 '지혜의 패러다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인류의 앞날에 일말의 희망이 있다. K- Culture, 한류 문화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 그 속에 비주류문화 집단의 '지혜 패러다임'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식'과 '지혜'란 게 대체 어떻게 다르길래? 다음에는 그 얘기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