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Sep 19. 2024

10. 숲 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자

이백李白, <여름날 산속에서 夏日山中> 감상

추석이 지났는데 폭염 특보가 뜨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피서를 했을까요? 

그때는 이렇게 안 더웠을까요?


문득 생각나는 시 한 수!

이백李白의 <여름날 산속에서 夏日山中>.




백우선白羽扇을 부치기도 귀찮다

숲 속에 들어가 벌거숭이 되어보자.


모자는 벗어서 석벽 위에 걸어놓자

머리엔 솔솔솔 솔바람을 쏘여주자.


嬾搖白羽扇, 裸袒靑林中。

脫巾掛石壁, 露頂灑松風。


* 이원섭 시인의 번역을 저본으로 소오생이 몇 글자 바꿔보았다. 이원섭 역 《당시 唐詩》, 현암사. 1965. 




소오생은 예전에 서안西安, Xi'an 씨(→)안(→)에 자주 갔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 중국 고대역사의 핵심이 되는 도시죠. 진시황의 병마용兵馬俑과 양귀비가 놀던 화청궁華淸宮 등 수많은 문화재로 매년 수백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국제적인 관광 도시이니, 당연히 학생들도 자주 인솔하고 갔습니다. 


2005년 여름의 서안은 정말 지독하게 더웠죠. 머무는 보름 동안 내내 40도를 웃돌았답니다. 펑펑 쏟아지는 호텔 방 에어컨의 찬바람이 유일한 버팀목. 더위에 지친 한 학생이 지나가는 말로 묻더군요. 


"쌤, 옛날 사람들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살았대요?"


이틀 후, 답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말로 하지 않고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요. 

요동窯洞이라고 부르는 전통 가옥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요동窯洞이 무엇이냐? 어떻게 생긴 것이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상식 하나 알아두고 넘어가면 어떨까요? ^^


서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 중원 지역의 지형地形은 황토고원입니다. 아래와 같이 생겼죠. 중국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별명도 있답니다. 이런 형태의 토양이 무려 78만 ㎢나 된다네요. 한반도의 거의 네 배 넓이죠. 

황토고원이 어디에 있느냐? 아래의 지도를 보시면 금방 아실 거예요. 

황토고원은 그 한가운데로 황하黃河가 지나면서 심각한 토양 유실을 겪습니다. 황하는 황토고원의 흙을 품고 흐르면서 아래와 같이 시뻘겋게 변합니다. (아래는 폭우가 지난 뒤의 호구폭포) 그리고 서해 바다에 그 황토를 토해내죠. 그래서 서해의 국제 공식 명칭은 황해黃海, Yellow Sea라는 것, 다 아시죠? 우리나라 서해바다의 갯벌도 모두 황토고원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가 우리네 황인종의 근거지인 셈이죠. 


황토고원의 주민들은 흙 절벽에 구멍을 파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아래 사진이 제일 대표적인 모습이랍니다. 이게 바로 요동窯洞이라고 부르는 전통 가옥이에요.  

위의 사진은 2005년에 소오생이 학생들을 인솔하고 찾아간 요동이랍니다. 그날 서안은 40도가 넘었죠. 그런데 창문 하나 없는 이 동굴 속에 들어가서 자야 한다니, 학생들은 모두 눈이 똥글똥글, 깜짝 놀라 저를 쳐다보며 어이가 없어했죠. 


우리가 자야 하는 공간은 아주 커다란 황토방이었습니다. 40명이 충분히 드러누울 수 있는 넓이였죠. 그런데 구석에 두꺼운 솜이불이 쌓여있네요? 이 더위에 웬 솜이불?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땀이 뻘뻘 났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어떻게 잤을까요? 하하, 모두 그 두꺼운 그 솜이불을 덮고 잤답니다. 그뿐이 아니었어요. 황토 바닥에 뜨끈뜨끈 장작불까지 땠답니다. 그날 낮에만 해도 40도가 넘었는데, 믿어지십니까?


요동은, 

여름엔 아주 시원하고 (천연 냉장고) 

겨울엔 무척 따뜻하답니다. (온돌 효과)

무엇보다 아주 튼튼합니다. (100년 이상 간대요)


황토의 과학적 효능

황토 입자 사이의 빈 공간은 불순물, 오염 물질을 흡착 분해하며, 산소가 풍부하고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황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은 파장이 8~14μm으로 인체의 에너지 영역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인체의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경상대 화학과 백우현 교수)


옛날 사람은 이렇게 살았답니다. 답이 되었을까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더울 때는...

이백처럼 숲 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었지요. 

나담'裸袒'은 사실 '웃통을 벗는 것'을 말한다.
'벌거숭이'란 말은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의역을 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겐 벌거벗고 지낼 수 있는 숲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남아있다 해도 벌거벗는다면 풍기문란죄로 잡혀가겠죠? 인터넷에서도 난리를 칠 거구요. 


에어컨에 하루 종일 갇혀 지낸 날,

'문명文明'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내년 여름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대문 그림 ]

◎ 명明, 주첨기朱瞻基, <무후고와도 武侯高卧圖>.

매거진의 이전글 09. 천만 리 떨어져도 아름다운 이 달빛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