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고등학생 때 잠시나마 품었던 야심찬 목표 '코넬대'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한국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드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고 3 여름 방학, 학교에 나가 보충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며 다소 졸리면서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담임 선생님의 제자가 찾아왔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 언니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우리에게 대학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줬었는데 언니 얼굴이 어찌나 환해보이던지 반짝반짝 후광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대학에서의 나'를 상상한 나는 행복한 기대감에 부풀어올랐다. 그 날 부터 대학에 가면 꼭 시도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책상 앞에 붙여놓았었다. 생각해보면 그 날이 내게 공부하는데 있어 큰 동기부여가 된 날이었던 것 같다.
버킷 리스트 1. 교환학생
'교환학생'은 대학생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게 아닐까?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교환학생 외에도 방문학생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말 그대로 우리 학교 학생들만 가고, 그 곳 학생들은 오지 않는 방식), 내 전공으로 유명한 미국 대학은 방문학생 프로그램만 가능했다. 버킷리스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영어 공부해서 토플 성적을 기준 점수에 맞추고,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본 끝에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으로 1년간 공부하러 가게 되었다.
1년 간의 외국 대학 생활은 내게 참 여러가지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그 중 대표적인 한 가지만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질문에 당당한 학생들
미국 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바로 '질문'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어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한국 매체에서도 종종 다루는 주제인터라 보고 들은 적이 있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그 체감은 더 크게 다가왔다.
미국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 학생들은 궁금할 때마다 끊임없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심지어 본인이 잠시 딴 짓하느라 교수님이 조금 전 설명한 부분을 놓쳤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다시 설명해달라며 손을 드는 학생을 보며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근데 또 놀라웠던 것은 그런 요구에 교수가 핀잔을 주기보다는 게의치 않고 다시 설명해준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학생들이 계속 질문하니 가끔은 '뭐 저런거까지 질문해서 수업 흐름을 끊지...'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질문 내용과 수준으로 교수가 학생들의 이해도를 가늠할 수 있으니 때로는 까다로운 부분을 보다 자세히 짚어 설명해주니 도움이 될 때가 더 많았다.
사실 수시로 오고가는 질문과 답변은 수업 분위기 자체를 능동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교수님의 설명만 듣는 것이 아니다 보니 수업 몰입도 더 잘 되었고, 다른 학생의 질문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깨닫고 배우게 되어 좋은 점이 정말 많았다.
- 와..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니 참 좋은걸.
- 왜 한국에서는 질문을 많이 하지 않을까. 아쉽다.
-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수업 시간 때 질문을 많이 해야지.
미국에서의 수업을 경험하며 '그래!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그렇게 할거야!'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물론 잦은 질문을 피로하게 여기거나, 뭘 그런 쉬운 걸 묻냐고 핀잔 주는 스타일의 한국 교수님도 계시지만, 내가 느낀 대다수의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질문과 소통에 목말라 계시다는 것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돌아와 한국 수업을 듣게 된 첫 날, 꼭 질문을 하고 싶었다.
도~~무지 손을 들고 질문 할 분위기가 전혀 아닌, 고요와 침묵이 넘쳐나는 수업 시간에 언제 손을 들고 질문할지 눈치를 살피며 가슴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용기 내어 질문을 하였는데 오랜만에 나온 질문에 교수님은 꽤나 반가워하는 기색이었고, 학생들도 답변을 궁금해하는 눈치였기에 다행히 나의 첫 질문은 괜찮게 지나갔다. 이후에도 몇 번의 수업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다보니 자연스레 몇몇 동기들의 추가 질문도 이어졌고, 점차 내가 바라던 수업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는 것 같아 내심 뿌듯했었다.
다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복학생 선배들의 농담 섞인 핀잔 아닌 핀잔을 듣게 되었고, 이후에는 나도 그만 주눅이 들어 예전만큼 질문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소 짠한 결말과 함께 미국에서 느낀 나의 생각과 경험은 온전히 나에게만 남겨진 채 지나갔다.
버킷 리스트 2. 해외 봉사활동
고 3때 선배 언니의 대학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부분은 바로 '해외 봉사활동'이었다.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당장 빨리 대학에 가서 외국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랐었다.
그렇게 대학에서 내가 두 번째로 선택한 글로벌 경험은 바로 해외 봉사활동이었다.
여러 봉사단체를 서칭한 끝에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SJ Vietnam 이라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나의 임무는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하노이에 도착한 날, 봉사자들의 숙소에 가니 다양한 국적, 나이의 사람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줬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온 독일, 덴마크 친구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온 벨기에 친구, 미국에서 온 두 분의 친구 할머니, 외에도 캐나다, 프랑스, 호주, 일본 친구들까지.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고 어떻게 대학에서 할 공부를 결정하니?
3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하노이에 머무르며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활동 시간은 주 5일이었기 때문에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온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며 친해졌다. 그 때 유럽에서 온 대부분의 덴마크, 독일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거였는데, 나는 이게 참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신기했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하거나 재수하거나 또는 취업을 하는데 이 중 어느 것도 아니고 해외 자원봉사라니...대체 본인 나라로 돌아가서 언제 대학가고, 졸업하고, 취직한단 말인가...평범한 한국인의 시선으로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 나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왜 봉사활동을 왔어?
- 덴마크 친구 :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세상을 배워보려고...
- 나 :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바로 가지 않아도 괜찮니?
- 덴마크 친구 :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고 어떻게 대학에서 할 공부를 결정하니?
지금 이 시간을 보내고 내가 무얼 공부하고 싶은지 결정한 후에 대학에 갈거야.
- 나 : 너희 나라에서는 그래도 괜찮니?
- 덴마크 친구 : 응, 덴마크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바로 가는 경우는 드물어.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경험을 쌓은 후에 대학에 가.
이 친구의 대답을 들은 나는 '와....'라는 감탄 외에는 다른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당시 23년 정도를 살아오면서 난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학교생활을 하며 나에게 선택권은 오직 A대학이냐, B대학이냐 이었지 그 외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말 그대로 '한국의 시간'에 맞춰 살아왔었던 것이었다. 한국 밖에서는 저마다의 시간과 속도를 살아가고 있었고, '학교 졸업 > 대학' 이 분명 글로벌 기준이 아닌데 여기서 벗어나면 실패하고 늦는다는 압박에 묶여있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15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한국은 '학교 졸업 > 대학'의 속도에 맞춰져있다. 그리고 이 곳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덴마크 엄마가 말하길, 여전히 덴마크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다수의 아이들의 대학에 가기 전 또다른 경험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그들이 100%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전히 "한국"만의 시간에 얽매여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을 보면 그게 꼭 정답은 아니라고, 최선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우리 ‘글로벌’의 시간도 함께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