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종교,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나라
이 곳에 오기 전, 내가 말레이시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싱가포르 옆에 있는, 싱가포르와 비슷하지만 경제규모는 작은, 한국인에게 유명한 휴양지 코타키나발루가 있는 나라!라는게 전부였다. 말레이시아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그다지 없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10개월 동안 이 나라에 살아보니, 말레이시아는 정말 알수록 새로운, 다양성의 나라이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많은 인도인과 중국인이 이주하게 된다.
그 결과 현재의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에 쭉 살았던 말레이, 말레이시안 인디안, 말레이시안 차이니즈 이렇게 다른 뿌리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국가가 되었다.
그들의 뿌리가 다른만큼 사용하는 언어도, 종교도, 문화도 다르다.
대다수의 말레이시안은 무슬림으로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다니고 말레이시아 언어인 바하사를 사용한다.
인디안은 힌두교를 믿으며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차이니즈는 광둥어와 영어를 사용한다.
언어
말레이시아의 도로, 건물 등의 표지판에는 영어와 바하사가 동시에 적혀있다. 어디를 가나 영어가 기본 언어로 크게 적혀있다보니 바하사를 모르는 외국인이 살아가기에 크게 불편함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근교로 갈수록, 말레이시아인이 주로 사는 지역에 갈수록 간판에 슬그머니 바하사만 남기는 한다. 거리에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영업하는 로컬 식당에 가면 종업원 대다수가 영어를 하지 못해 주문은 손짓으로만 해야하지만, 내가 주로 가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주문을 받을 정도의 간단한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말레이시안 차이니즈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 친구들은 내게 몇 개의 언어를 할 수 있는지 묻고는 했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한국어와 부족한 영어 뿐인 나로서는 대답하기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20대 초반 미국 교환학생 시절에 영어 못한다고 무시하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너희는 영어 밖에 못하잖아!! 난 한국어랑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속으로 외쳐대고는 했는데 말이다.
내게 질문한 친구는 바하사, 만다린, 광둥어, 영어 그리고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자란 대다수의 차이니즈들은 교육수준이 높은 편인데 그들 대부분은 바하사와 만다린, 광둥어, 영어를 사용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들인가!
얼마전 이 곳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를 보러가니, 바하사와 한자 (사실 뭔지 잘 모르겠다..), 영어 이렇게 세 가지 언어로 자막이 나왔다. 3개 국어의 자막이라니..영화를 보면서 말레이시아가 진정한 멀티컬쳐 국가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종교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교이고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말레이 대다수가 무슬림이다. 그만큼, 말레이시아에서는 크고 작은 모스크(이슬람 사원)을 쉽게 볼 수 있다. 정해진 기도 시간마다 어디선가 기도 소리가 들려오고, 쇼핑몰, 고속도로 휴게소, 병원 등 대부분의 장소에는 이슬람교도를 위한 기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반면 인도인들이 많이 몰려사는 주거지역에 가면 힌두사원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히잡을 쓰고 다니는 무슬림 여성만큼이나 미간에 붉은 점(빈디) 장식을 위한 인도 여성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페낭에는 동남아시아 최대 불교사원이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내가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슬람은 중동국가의 극우 성향 이슬람 뿐이었는데..이 곳에서의 이슬람교와 무슬림은 그냥 기독교 신자, 불교신자와 같은 종교인일 뿐이다.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여러 종교가 함께 이념 갈등 없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문화
말레이시아는 인종, 종교가 다양한 만큼 멀티 컬쳐국가이다. 종교에 따른 문화의 차이가 극명하며 이런 것들이 또 조화롭게 어우러지기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말레이시아가 각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다 보니 휴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라마단 기간이 끝나고 펼쳐지는 최대 명절인 하리라야와 힌두교의 최대 축제인 디파발리, 중국의 음력 새해 설날이 큰 명절이고 이 외에도 석가탄신일,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 각 종교별 모든 기념일이 휴일이다.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 동안에는 해가 진 후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무슬림을 위해 레스토랑와 그랩(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배달 서비스)에서 연일 관련 프로모션과 홍보가 이어진다.
힌두교의 디파발리 때에는 관련 데코레이션과 홍보가 아래와 같이 꾸며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구정인 새해는 차이니즈 뉴이어 데이라고 해서 중국의 전통 춤인 라이언댄스 공연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물론 이슬람이 국교인 만큼 공연, 전시문화에서 이슬람의 보수적인 기준으로 사전 검열이 되기도 하고, 정부의 많은 정책이 말레이외 무슬림을 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가 어우러져 사는데 큰 잡음 없는, 꽤나 조화로운 모습의 나라이다.
이번 여름에 아이들과 영국 여행을 갔었다. 런던 거리에도 히잡을 쓴 무슬림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들은 “여기는 말레이시아보다 히잡 쓴 사람이 많이 없네!” 라며 쿨하게 한마디 내놓았다.
한민족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아온 나로서는 이민자로 형상된 다인종 미국과는 또 다르게, 아시아 국가이지만 다문화/종교인 말레이시아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