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우리 아이들은 분당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즉,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있고 공원과 도로가 깔끔하게 정비된 오래된 신도시에서 살다 이 곳에 왔다. 나 역시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산 신도시가 첫 입주를 시작한 그 때 이사를 가서 결혼하기 직전까지 그 곳에서 쭈욱 살았으니 신도시 키즈인 셈이다.
외할머니네도, 친할아버지네도 모두 (구)신도시이다 보니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동네의 기준은 그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아이들이 유치원 다니던 그 때, 서울의 어느 동네에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아이들이 전봇대와 그 사이에 걸린 전선을 보며 신기해했다. 신도시 특성 상 전봇대가 없다보니 그게 놀라웠나보다. 그러면서 이 동네는 왜 이렇게 낡았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반응에 깜짝 놀랐었다. 아이를 특별히 유난스럽게 깨끗하고 좋은 곳만 데려가며 키우지도 않았는데, 전봇대를 보고 신기해하고 구시가지를 낯설어하는 아이를 보며 내가 더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가 보고 자란 세상은 역시 작구나 싶었다. 아이의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로만 한정되어서는 안 되겠구나..싶었다. 세상의 다름과 다양성, 매력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이 곳 말레이시아에 왔다. 한국에 비하면 도시 환경이 좋다고 말할 수 없으나 여기에 오고 나니 또 예상치 못한 것들을 마주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에는 외국인도 많지만 말레이시아 부유층 자녀들도 많이 다닌다.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대부분의 말레이시아 부모들은 아이들을 말레이어(바하사)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공립 학교가 아닌 국제학교에 보낸다. 그렇다 보니 우리에게는 생소한 광경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아이들을 학교에 데리러 오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운전기사와 보모이고, 친구 생일파티에는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나타난다든지, 간혹 엄마가 직접 오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슈퍼카를 몰고 온다든지 등이다.
한 번은 우리 아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한 아이가 아빠와 보모와 함께 왔는데 그 아이의 아빠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비즈니스를 한다는 그 아빠의 말에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 그룹과 같은 말레이시아 재벌 그룹의 오너일가였다.
나중에 그 친구 집에 초대받아 다녀온 우리 아이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궁전같이 크고 근사한 집과 집에서 일하는 사람만 10명이 넘는다는 사실에 놀라움 가득한 채 내게 설명해주었었다.
어느 날은 집에 엘레베이터와 영화관, 수영장, 연못이 따로 있을 정도로 크고 멋진 또 다른 집에 초대받아 다녀왔는데 거기에는 람보르기니를 포함한 자동차만 7대가 있었다.
그 집에 갔다가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 큰 아이가 내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 그 삼촌은 대체 무슨 일을 해서 돈을 그렇게 많이 번거야? 어떻게 부자가 된거야?
우리 집은 부자야? 아니야?"
삼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며 너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돈을 벌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우리 집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에 크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고 설명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외국인 엄마들에게 말했더니 대부분의 엄마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국제학교에 다니는 외국 아이들은 아빠 회사 때문에 온 주재원 가족이 대부분인데 그 집의 아이들도 역시나 집에 가서 부잣집 말레이시아 친구들을 보고 본인 집안의 경제력에 의문을 품는다고 했다. 의문을 품고 아이다운 순수한 부러움에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비교하고 상실감을 느낀다면 이건 또다른 문제이다.
람보르기니가 있는 집에 다녀온 날, 우리 아이는 내게 "엄마,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그렇게 크고 멋진 집을 갖고 싶어"라고 말했다. 본인 집에는 축구장과 농구장도 지을거라고 했다. 그래, 너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꿈꾸는 집을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했다. 그런 집을 갖게되는 날 엄마도 초대해달라고 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을 보며 상실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집을 보면 연민이나 우월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돈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돈의 가치를 바르게 알고,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건 중요하다.
나 역시 한국에 있을 때는 가까이서 본 적 없던 부유층의 삶을 이 곳에 와서 보니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였다. 그런데, 놀라움. 거기서 끝이다.
세상은 진짜 넓고 정말 다양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한국에서 6시간 떨어진 말레이시아로 옮겨왔을 뿐인데도 새로움의 연속이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우리 아이들이 이를 알고 자라났으면 좋겠다.
본인이 보고 경험한 것만으로, 아는 것만으로 함부로 잣대를 들이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