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훈 Apr 21. 2023

파도가 부서진다

Go Now

바다가 보고 싶었다.

꼭 바다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다 같은 것은 바다 밖에 없기에.


해질 무렵 보랏빛 하늘에 비친 한강이 쾌쾌한 2호선의 창밖으로 보였다. 그것 또한 넓었다. 그렇지만 내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넓지 않았다. 덜컹대는 지하철의 안에서 섞이는 온갖 회색 소음들은 그것의 의미를 더욱이 옅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매캐한 회색 매연 마냥 창 밖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영롱한 색을 비추는 한강을 보기보다는 눈앞의 무언가에 홀려버린 듯하다. 매일 지나쳐 가는 공간이기에 더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매연이 안개를 만들어 그들이 창 밖의 무언가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만들어서일까.


한강 중간중간에 깊게 박힌 대교의 다리들이 보인다. 누군가의 다리가 돼주는 철근들은 노을에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 그저 여전히 불투명한 고정된 색일 뿐이다. 매일 똑같은 노선을 반복하는 2호선의 삶처럼, 그것을 타고 매일 같은 시간을 반복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여전히, 아니 너무나 무심하게 있을 뿐이다.


바다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수평선 저 너머까지 내 눈에 담을 수 없는 망망대해를 보고 싶다. 바다의 냄새가 맡고 싶고 진득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파도가 가끔 일어날 뿐 바다 또한 여전히 그 모습일 테지만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없기에 특별해서일까. 아니면 그저 바다여서 일까.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누워 눈을 감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머릿속에 떠올린 바다의 풍경의 한 장면을 기억해 낸다. 파도가 천천히 부서지고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다가온다. 그리고 눈으로 담을 수 없이 저 너머까지 이어진 바다. 잊혀진 줄 알았던 바다의 한 장면이 그래도 아직까지는 남아 있었다.


심장이 뛴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처럼 내 심장이 뛰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수평선 저 너머 또한 바다인 것처럼, 아직 닿지 못한 내 미래의 어딘가에 있을 나와의 조우를 위해서. 


어제와 내일의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오늘의 파도가 밀려온다. 저 파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기에, 혹여나 나를 덮쳐 부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파도가 부서지는 동안에도 내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을 테니.


지지 않을테니,

그러니 다가와 부서지서라. 하염없이.


https://youtu.be/xIY_b10iehY

매거진의 이전글 제로섬 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