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신촌극장에서 진행된 공연 ‘신촌문예’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쓰는 사람 소민입니다.
오늘 저는 약 30분 동안 혼자 제가 쓴 에세이를 낭독합니다. 목이 아파서 잠깐 멈춰 있을 수도 있고 더듬거릴 수도 있고 숨을 몰아쉴 수도 있습니다. 모쪼록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애써보겠습니다.
저는 채식을 합니다. 저에게 몇 단계 채식을 하냐고 물어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채식을 많이 과격하게 하니까요. 아마 감당하지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과격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과격하게 하느라 탈이 날 때도 분명 있고요. 저는 어떤 일을 과하게 하기에는 많이 가난하고 쇠약하고 피곤하거든요.
그럼에도 과격한 채식을 완전히 놓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를 오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글의 제목은 ‘엄마와 두부’입니다.
칼날을 세워 두부를 으깬다. 두부는 쉽게 으스러진다. 올리브유 두른 팬에 으깬 두부를 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소금은 약간만. 아니, 조금만 더. 아니다, 몇 꼬집만 더. 그렇게 볶아낸 두부를 밥 위에 올린다. 먹는다. 소금은 조금만 넣었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점심 식사를 끝낸다.
하루 두 끼 중 한 끼를 그렇게 먹으면 일주일 뒤에 1kg 가까이 몸무게가 줄어있다. 저녁은 이것보다 더 가볍게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종종 기름지고 짜고 단 걸 참지 못한다. 그러면 다음 날은 점심만 먹고 저녁을 굶는다. 1kg 이상의 숫자가 줄어들려면 이 루틴을 몇 개월 이상 지속해야할 것이다.
비건을 시작하고 살이 많이 빠졌었다. 엄마는 채식을 해서 살이 빠진 것 같다며 다이어트도 채식도 그만두라고 했다. 그런데 난 당시에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배달 시켜먹을 게 없어서 배달 음식을 끊었고 같이 사는 친구들이 해주는 요리로 끼니를 채웠을 뿐이었다.
요새는 다시 비건을 시작하기 전 몸무게가 되었다. 배달로 시켜먹을 수 있는 비건 옵션 메뉴가 동네 곳곳에 생겼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프리랜서라는 핑계로 집 밖엘 나가지 않는데 음식도 자극적인 걸로만 찾아먹으니 무게가 느는 건 당연했다. 근데 몸무게가 그리 된 것 보다는, 아무리 살이 쪄도 생전 접히지 않았던 뱃살이 올록볼록하게 접힌 모습이 더 충격이었다.
미관상으로도 보기 안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식으로 윗배가 접히기 시작했다는 건 내장비만의 신호라는 인터넷의 설명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혔다. 내장비만이란 말은 뚱뚱하다는 어쭙잖은 모욕보다 더 나를 두렵게 했다. 그래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점심 식단이라도 바로잡기로 했다.
두부가 비건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비건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내 모습이 엄마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고민된다. 엄마는 내가 과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싫어하고 과하게 살이 찐 것도 싫어하고 과하게 채식을 하는 것도 싫어한다. 근데 지금 나는 과하게 살이 찐 채로 과한 채식 식단을 활용해서 과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엄마한테는 그렇게 보일 테다.
사실 먹는 행위로 엄마를 만족시키기란 성적이나 커리어로 그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채식을 시작한 후부터는 더 그렇다. 엄마는 계란을 부칠 때마다 내가 계란을 먹지 않는 걸 걱정하고 고기를 먹으러 갈 때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걸 우려한다. 종종 요리를 한 사진을 보내면 일단 첫마디는 잘 했다 칭찬을 해주지만 꼭 한두 가지 씩은 이건 저렇게 손질하는 게 아니네 저건 이 요리에 넣는 재료가 아니네 하며 지적을 한다. 아무래도 엄마 입장에선 당신이 먹이던 대로 먹지 않는 딸이 많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나는 포항에서 나고 자라 네 살 때부터 회를 먹었다. 과메기도 자주 먹었다. 엄마는 멸치를, 고등어를, 명태를 죽여가며 나를 살렸다. 나는 평생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합리화할 수도 없다. 그래서 괴로웠다. 나는 나대로 나고 자란 환경을 통째로 부정해야 해서 괴로웠고, 엄마는 당신의 방식이 부정당해야 해서 괴로웠을 것이다.
명절엔 우린 더욱 서로를 괴롭게 한다. 내가 먹지 않아서, 엄마가 먹이고 싶어 해서, 나 때문에 별도로 뭔갈 만들어야 해서, 엄마에게 더한 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부채감이 들어서.
그래도 다행인 건 두부라는 식재료가 명절 음식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설날에 계란 없이 부친 두부를 열심히 먹는 걸 보고 엄마는 그해 추석 때 평소보다 많은 두부부침과 나물 반찬을 준비했다. 버섯 말린 것을 볶아 비건멸치볶음을 만들고 밀단백도 직접 만들어 날 위한 반찬을 따로 내어준다. 여전히 내가 산적이나 닭조림을 먹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어쨌든 엄마는 내 채식이 수월하도록 돕는 의외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러고보니, 내 내장비만은 엄마가 만든 것처럼 질 좋은 비건식을 배반한 결과가 아닐까? 엄마가 나를 돌봤던 것만큼만 내가 나를 돌봐 주면 좋겠다.
네. 엄마가 나를 돌봤던 만큼만 내가 나를 돌봐 주면 좋겠다……. 근데 저는 그렇게 못했어요. 이 글에서는 프리랜서라고 언급해놨는데, 지금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하루종일 비거니즘과는 상관 없는 일터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놓게 되어요.
지금부터 읽어드릴 ‘외로움’이란 글에, 제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담아보았습니다.
요즘에는 머리에 구멍이라도 하나 뻥 뚫려 있는 것 같다. 골똘하게 생각을 하다가도 다 흘러나가버리고 어제 했던 결심도 다음 날이면 잊어버린다. 작년엔 내게 너무나 중요했던 기후활동도 모조리 잊었고, 작품을 함께 만들기로 한 동료와의 약속도 잊었다. 일상이 신념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이었고, 그런 내 모습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일상을 지나치게 쉽고 간편하게 흘려보낸다. 간편해서 죄책감이 든다.
일하는 곳에 채식을 한다고 밝히지 않은 건 그중에서도 가장 죄스럽다. 선생님들은 내가 비건을 지향하는지 모르니까 쉽게 유제품과 동물이 들어간 간식을 준다. 나는 그걸 먹는다. 먹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렵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다.
그래서 요즘은 부쩍 외롭다. 작년까지 나에게 먹는다는 행위란, 정성과 애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일이었다. 식탁 위에 차려진, 친구가 나눠준, 엄마가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위해 피가 낭자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죽지 않았을 동물들을 떠올리면 혼자 먹는 식사여도 묘하게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깨어있는 시간을 모두 일을 하며 보낸지 한달이 지나자 지난 몇 년 간 일상을 풍성하게 메꾸었던 사랑이 갈 곳을 잃었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변명과 무기력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어떻게 하면 ‘진짜’ 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게 가장 최근에 쓴 글인데요. 어떻게 하면 진짜 제 일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실의에 빠져 있던 도중에도 해야할 일은 해야했어요. 신촌문예를 준비해야했거든요. 다행히 신촌문예는 작품의 재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프로덕션이어서, 신작을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에 써두었던 글을 살펴보다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의 답변 비슷한 것을, 과거의 제가 쓴 글에서 발견했습니다.
지금 읽어드릴 글은 메일링 서비스로 연재했던 에세이, <빈곤비건생활>의 첫 번째 회차인 ‘저급한 말들’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가난이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가난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가난해서 일어나는 일들 역시 아름답기 어렵다. 가난함과 아름다움을 연결 지어 가난을 우상화하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추하게 타들어 가는 내 속을 한번만 봐주었으면 한다. 가난은 나에게서 여유를 빼앗는다. 갑작스럽게 취소된 프로젝트 앞에서 듣기 싫은 욕을 내뱉게 만든다. 통장 잔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과 싸우게 만든다. 가난하지 않은 자를 질투하게 만든다. 가난이란, 가난한 사람을 다소 저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저급해졌고, 저급함과 평생을 함께 살았다. 10대 때부터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머리 속에 가득했고 어른이 되어도 이 사실을 극복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자주 휩싸였다. 대학교를 가도 학자금 대출에 시달릴 거야. 취직을 해도 빚이 잔뜩일 거야. 그때 일기장을 열어보면 이런 말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내 미래는 추해. 아름답지 않아. 이런 생각이 들수록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오히려 커졌다. 아름다운 말로 점철된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툭하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너덜너덜한 말들을 쏟아냈다. 많은 이들이 나의 저급한 말들을 싫어했을 것이다.
특히 엄마. 엄마가 내 입에서 튀어나온 ‘존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표정을 여전히 기억한다.
한밤 중의 거실이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남자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었고, 당시의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마음이 아주 옹졸해져 있었다. 그래서 욕을 했다. 저 남자 표정 봐, 존나 꼴 보기 싫네. 엄마는 식겁을 했다. 당장 화장실에서 입을 씻고 오라며 윽박질렀다. 엄마의 화난 목소리에, 뱃속이 꽉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로 곧장 도망쳐 문을 닫고 생각했다. 추한 말을 하면 입을 씻어야 하는구나. 그후로도 나는 종종 화장실로 가서 물로 입술을 닦곤 했다. 추해지기 싫었으니까. 아까 써놓았듯, 난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청소년기가 한참 지난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더 빈곤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저급한 말을 자주 쓴다. 10대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심지어 나쁜 말을 써도 입을 씻고 오라고 혼내는 엄마도 없다. 그냥 저급한 내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갈망한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정갈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고민이 시작되었다. ‘부자가 되지 않는 한 내 마음은 영원히 옹졸하기만 한 걸까?’ ‘돈으로 여유를 사는 것 말고, 아름다움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하여, 나는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다른 비건 친구들이 비건을 지향하기로 결심한 계기를 들어보면 다들 무슨 책을 읽었네, 무슨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네 하는 이야길 자주 하던데, 나는 내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니, 이렇게 깨끗할 수가.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릴 수 있다니, 이토록 숭고할 수가. 무엇보다 비건을 실천한다고 밝힌 사람들의 표정과 발언에서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나도 그런 반짝임을 지니고 싶었다. 약간은 납작하고 조금 많이 시혜적이지만, 시작은 그러했다.
그런데 비건을 본격적으로 지향하자니 다시 가난이라는 이슈가 고개를 들었다. 당시만 해도 몇 없었던 비건 식당들은 거의 다 고급스럽고 비싸 보였고,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매번 동물성 재료를 빼달라고 요청하자니 번거롭고 변수도 많았다.
결국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선택지로 좁혀졌는데, 돈이 정말 없을 때는 야채를 만원 주고 사는 것도 망설여졌다. 예전 같으면 편의점에서 몇 천 원으로 때워버렸을 텐데, 김밥이고 도시락이고 모조리 동물성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세척 과일이나 김과 햇반으로 배를 채울 때도 많았다.
이건, 그다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구나! 내가 반짝인다고 느꼈던 다른 비건 지향인들도 그저 견디고 있었겠구나. 그건 오랫동안 견뎌온 자만이 그렇게 반짝거릴 수 있는 거구나.
세월이 흘렀고 나는 저급한 말을 자주 쓰고 벌이가 적은 비건 지향인이 되었다. 때로는 입을 물로 씻으며 엎지른 말들을 없애고 싶어하고, 가끔은 돈이 없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밥 대신 마신다. 그리고 여전히, 비건 지향이 아름다운 행위라고 확신한다. 가난해도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나 살기도 벅차지만 동물을 살리고자 하는. 내겐 적어도 그런 마음이 있다.
네. 정말로 많이 물어보십니다. 왜 비건을 시작했느냐고. 그때마다 항상 답이 달랐어요. 어쩔 땐 육식의 성정치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어쩔 땐 게리 유로프스키의 영상 때문이었다고 답하기도 하고… 사실 저는 그냥 어떤 아름다운 사람들을 흉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전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제가, 2022년에는 기어이 동물 그 자체가 되고 싶어 합니다. 많은 연극 작품이 비인간으로서의 ‘인물’을 무대 위에 세우곤 하죠. 저는 그 ‘동물되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에세이 <그놈의 동물 되기>는 동물 되기에 실패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동물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에 실패했다. 특히 창작자로서 동물이 되는 것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실패했다는 건 도전은 해봤다는 이야기다. 2022년의 나는 소설이든 희곡이든 에세이든 동물을 생각하며 내용을 구상했다. 그러나 그 해엔 새로운 작품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단 한 편도.
동물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도축장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소들의 울음소리, 제주도 승마장 안에 서 있던 말의 축 처진 눈꼬리, 수조 안에서 몸에 상처를 입은 채 떠다니는 이름 모를 물살이. 그들을 오롯하게 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동물과는 인터뷰를 할 수도 없고 그들처럼 살아볼 수도 없었다. 동물을 오롯한 모습으로 담아내면서도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작품을 어떻게 인간인 내가 만들 수 있는지에 골몰 되었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글쓰기는 미뤄졌다.
고민에 빠진 내게 한 동료는 이런 질문을 던져주었다. 연극이나 문학을 만들며 왜 동물을 위하고 싶은가, 하는. 연극도 문학도 인간을 위한 장르인데 말이다.
질문을 듣자마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을 백 퍼센트 ‘대변’할 수 없고 그들이 ‘될 수도’ 없다. 그걸 해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애석하게도.
내가 될 수 있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인간의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몫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려면 왜 내가 동물을 위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했다. 한동안은 앞뒤 없이 ‘당연히 그들을 위해 글을 써야지!’라고만 스스로에게 주장해 왔다. 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은가. 왜 써야 하는가. 청소년들을 쏙 빼놓고 교육에 대해 탁상공론하는 교육청 사람들과 동물권을 말하는 나는 무엇이 다른가.
정말로, 왜 2022년의 나는 동물을 위한 창작에 골몰했을까. 동물권 가시화를 위해서? 기후정의를 위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 아무것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이미 내 사유는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동물에 대해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가 바로 쉽게 무뎌지는 나의 사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정리되지 않은 심정이 있을 때마다 글을 썼다. 일기든 편지든 상관없었다. 생각들이 문장의 형태를 띠게 되면 전보다 훨씬 견고하게 느껴졌다. 동물에 대한 생각도 내 안에서 견고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꾸만 그것들을 글로 써내고 싶어 한 걸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도축장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소들의 울음소리, 제주도 승마장 안에 서 있던 말의 축 처진 눈꼬리, 수조 안에서 몸에 상처를 입은 채 떠다니는 이름 모를 물살이를 떠올려 본다. 그들로부터 뻗어나가는 이야기도 구상해 본다. 이야기를 위한 배경과 캐릭터, 캐릭터들이 겪어나갈 일련의 사건들도 만든다. 캐릭터는 인간일 수도 소일 수도 말일 수도 물살이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말을 건다.
그들이 되는 게 아니라, 말을 거는 것이다.
…그렇게 저는 말을 거는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다른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동물의 입장이 되어보는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인간이 되어서 비인간에게 말을 걸어보기로요. ‘말’이라는 수단마저도 굉장히 인간적이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인간인 것을…
저는 항상 불안정한 직장을 다니고, 늘 미납금이 쌓여 있고, 작가로서는 유명세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비거니즘이나 동물권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게 미련한 일일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저는 더 이상 비거니즘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동물과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 일상은 상상만 해도 외롭거든요.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그들 때문에 슬퍼하거나 고민하지 않는 일상… 정말 생각만 해도 괴롭고 쓸쓸합니다.
그래서 이러나 저러나 저는 계속 하기로 합니다. 비건도 글쓰기도. 그게 실패와 실수를 전제하고 있더라도 멈추지 않는 마음을 굳힙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