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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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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웹핑거 Jul 25. 2024

개벽

1화 - 개벽의 시대


1980년의 서울은 격동의 시기였다. 민주화의 물결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날마다 더 거세져 갔다. 이 치열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평범한 회사원 박기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울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분주했다.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고, 거리의 소음은 끊이지 않았다.


박기태는 신문을 펼쳐 들고 헤드라인을 훑어보았다. ‘민주화 운동, 전국 확산’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신문을 들여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에 어렴풋이 떠오른 민주화 운동의 열기는 그의 마음을 두드렸지만, 곧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신문을 덮고 출근길을 서둘렀다.


기태는 서울의 한 중소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의 아내 윤지수와 함께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늘 그를 짓눌렀다. 지수의 고단한 얼굴과 아이들의 밝지 않은 표정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에게 회사 생활은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사무실에서 그는 평소에 인사만 하고 지내던 최상철 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기태 씨, 요즘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럴 때는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하는 법이야." 최부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기태는 순간적으로 긴장했지만, 호기심이 담긴 눈빛으로 최부장을 쳐다보았다. "기회요?"

최상철은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그래, 기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말이야. 오늘 저녁, 시간 되면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기태는 약간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어디 가는데요?"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그건 가보면 알지. 믿어봐, 기태 씨. 나쁜 일은 아니야." 최상철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지만, 그 미소는 기태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날 저녁, 기태는 최상철 부장의 권유로 한 지하 주점에 발을 들였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태는 어색하게 앉아 술잔을 들었지만,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박기태 씨 맞죠?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네요." 한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의 이름은 김성주, 유명한 밀수 조직의 두목이었다. 기태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경계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김성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최상철 부장이 나에게 기태 씨 이야기를 많이 해 줬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기태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밀수라니, 그런 위험한 일을 왜 저한테 권유하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불안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김성주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위험이 큰 만큼 보상도 큽니다. 그리고 당신도 알겠지만, 지금 같은 이런 혼란한 시기엔 돈이 힘이죠. 가족을 위해서라면 모험 한번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기태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가족과의 어려운 생활이 스쳐 지나갔다. 아내 윤지수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기태 씨, 우리 이렇게 사는 거 언제쯤 끝날까요? 아이들 육성회비도 밀리고, 생활비도 부족하고..." 지수의 눈에 맺힌 눈물과 그리움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기태는 이를 악물고 김성주에게 다시 물었다. "어떤 보상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결심이 묻어 있었다.

김성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첫 번째 작업만 성공하면, 지금까지 벌었던 연봉의 몇 배는 될 겁니다." 그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기태는 술잔을 비우며 결심을 굳혔다. "좋아요. 한번 해보죠. 하지만 꼭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불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김성주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우리는 의리 빼면 시체입니다.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는 기태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기태는 김성주와의 대화 후에도 마음이 복잡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아내 지수에게 말할 결심을 했다.


"지수야, 나 오늘 중요한 제안을 받았어.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아. 우리가 원하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야."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지수는 불안해하며 물었다. "기태 씨, 무슨 일이에요? 정말 괜찮은 일 맞죠?" 그녀의 눈에는 염려와 불안이 가득했다.

기태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걱정 마. 잘 처리할 수 있어.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의 목소리는 결연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그날 밤, 기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은지,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결심이 피어나고 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벗어나,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기태는 창문을 열고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민주화 운동의 함성이 그의 귀에 울렸다. 그는 이제 평범한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이제 더 이상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박기태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1980년, 개벽의 시대가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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