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계신 할머니께 조금 더 자주 갈걸 그랬다.
"여보, 다 챙겼어?"
"응. 다 챙긴 것 같아. 가면서 케이크만 사면 될 것 같은 데?"
"그럼 어서 가자."
남편과 서둘러 집을 나섰다.
목포 우리 집에서 무안 시댁을 거쳐 시어머님과 시아버지, 시 이모할머니 두 분과 아이들을 태워 진도에 있는 시외할머니댁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뭐가 이렇게 많을 까 싶지만
결국 시어머님의 엄마를 위한, 남편의 외할머니를 위한 여정이라 보면 된다. 마침 사랑방 같은 어머님집에 시이모할머니(남편의 친할머니의 자매분들)가 계셨던 것뿐.
늘 그렇듯 우리들의 여정에 자격은 필요하지 않다.
"이모, 같이 갈랑가? 오늘 진도 장인데?"
"진도 장이면 따라나서볼까."
그렇게 우리는 카니발을 꽉꽉 채워 출발했다.
진도장을 먼저 들렀다.
살아서 팔딱 거리는 광어와 갑오징어, 간식거리로 꽈배기, 튀김을 샀다. 물론, 아까 남편과 이야기한 케이크도. 어머님은 미역국을 끓이겠다고 소고기도 잊지 않으셨다.
트렁크까지 빈틈없이 채워 조금 더 달려 진도 외할머니댁에 도착했다.
진도에서 혼자 지내고 계신 외할머니는 우리들의 깜짝 방문에 놀라셨다.
"워째 왔냐, 바쁠거인디."
그러면서도 버선발로 나오셨다. 연신 아이들의 손을 쪼물락하시고 머리도 쓰다듬으셨다.
서둘러 짐들을 하나씩 내렸다.
어머님 아버님은 마당 수돗가에 앉아서 사이좋게 팔딱거리는 광어를 회 뜨셨다. 이모할머니들은 외할머니 마당에 자라나는 푸릇한 것들을 살펴보시며 연신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마을 아래 학교로 놀러 갔다.
나는 뭘 하지. 시외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카네이션을 가슴에 먼저 달아드렸다. 그 이후로 남편과 나는 어머님의 지시에 따라 잔심부름을 했다. 삼십여분이 지나고 고소한 밥 냄새가 집구석구석 퍼졌다.
상을 펴고 수저를 놓았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데려와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어머님이 집에서 담아 온 양파김치와 열무김치, 갑오징어회와 광어회, 그리고 매운탕까지. 아이들을 위한 김까지 올려놓자, 자연스레 수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인지 밥을 먹는 내내 자꾸 할머니 얼굴로 시선이 갔다. 유난히 맛있는 광어회와 갑오징어 회였다. 시외할머니의 기쁜 눈빛이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아서였을까. 배가 볼록해질 때까지 맛있게 밥을 먹었다.
한차례 상을 치우고서 준비해 왔던 케이크를 꺼냈다.
케이크를 살 때 초는 몇 개가 필요하냐는 아저씨의 말에 88개라고 대답한 어머님덕에 우린 빵 터졌었다. 88개를 언제 다 끄냐고. 할머니 지치겠다며. 나는 웃으며 다른 초를 집었다. 할머니 체력을 생각해 두 개만 꼽자고.
비장의 초 2개를 꺼내 케이크에 꽂았다. 시외할머니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혹시 초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이미 돌이킬 수는 없으니, 낮이었지만 켜둔 불을 끄고 불을 붙였다.
"하나, 둘, 시작."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왕할머니, 생일 축하합니다."
누구의 생일이든 케이크는 아이들의 신남버튼이다.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 두 아이는 소리 높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덕분에 할머니들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시외할머니는 촛불을 '후' 불었다.
그때 나는 시외할머니의 이상한 표정의 이유를 깨달았다. 시외할머니의 눈가는 촉촉하게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자식의 방문에 할머니는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어버이날 겸 시외할머니의 생신으로 방문한 이 순간이 할머니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발견한 그 순간을 어머님이 놓쳤을리 없다. 오늘, 어머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시외할머니의 그 표정을 나는 내 눈에 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케이크를 마지막으로 우린 다시 돌아왔다.
차에 내리면서 남편에게 시외할머니의 표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도 순간 말이 줄었다. 그런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좀 더 자주 갈 걸 그랬다. 그치? 앞으로는 우리가 더 자주 가자. 꼭. 어머님도 모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