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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May 17. 2024

왜 항상 내 냄비는 넘치는 걸까.


요똥손 : 요리를 똥으로 만들어버리는 손
              유의어) 요리고자



당신은 요리를 자주 하시나요?

당신은 맛있는 요리를 자주 하시나요?



요리가 뭐 별거라고.

나도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내일은 7살 딸아이의 생일이다.

작년에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다 보니 (5월은 모든 엄마들이 가장 바쁜 달 아닙니까?) 실수로 딸아이의 생일을 잊어버렸다.(욕먹어도 할 말 없는 걸로.) 밤이 되어서야 기억하고는 남편과 부랴부랴 케이크를 사 와서 아이에게 촛불 '후'를 시켜줬다. 생일을 알려주고 케이크까지 주니 딸은 아직 어려 마냥 좋아했지만 남편과 나는 굉장히 미안했던 작년 생일이었다.


"엄마, 일곱 밤만 자면 내 생일이에요. 맞죠?"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일주일 전부터 매일 빠짐없이 내게 와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딸은 드디어 오늘밤만 자면 된다며 신나게 유치원을 나섰다.


"여보, 나 출간 내지 편집이랑 이것저것 해야 해서 오늘 밤은 잠을 거의 못 잘 것 같은 데, 세아 미역국을 오늘 밤에 미리 먹을 까?"

"여보 편한 대로 해. 상관없을 것 같은 데?"


학원으로 출근하면서 남편의 동의를 얻고 퇴근하면서 다진 소고기를 사 왔다.


국거리 소고기로 했던 미역국이 딸아이가 먹기엔 좀 힘들어 보였던 터라 다진 고긴 가  먹기 편하지 않을 까싶었다. 싱크대에 재료를 올려두고 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다진 소고기 미역국.


물을 담아 미역을 불렸다. 냄비에 다진 소고기를 참기름을 두르고 볶았다. 불린 미역을 넣고 볶다가 국간장과 참치액을 넣고 또 볶다가 물을 넣고 끓였다. 다시다 조금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내 정신 좀 봐. 미역국에 온 정신이 팔려 밥도 안 했네. 황급히 쌀을 씻고 밥통을 열었다. 20분이 걸린다는 밥솥의 보고를 받고 다시 미역국으로 복귀했다.


살짝 떠서 간을 본다.


.... 짠가?

물을 좀 더 넣었다. 다시 센 불에 팔팔 끓였다.


다시 떠서 간을 본다.


.... 싱거운데?

국간장과 다시다, 소금 중에서 고민했다. 냄비와 가장 가까이 있는 소금을 들어 뿌렸다.


미역국은 오래 끓일수록 맛있다고 했는 데, 그럼 좀 심심하게 해서 끓여야 할까?


다시 물을 좀 더 넣었다. 그래도 일단 팔팔 끓여야겠지? 타닥타닥. 갑자기 냄비가 넘쳤다.


으악.

어느새 미역국은 냄비가 넘칠 만큼 가득 있었다.

'왜 항상 내 냄비는 넘치는 걸까.' 생각하며 튄 국물들을 행주로 닦았다.


그러다 다시 한번 미역국을 맛봤다.


아...


간 흠칫했다.



내가 요리를 못 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깨달았다. 혀가 둔해 간을 못 보니, 계속 물 넣었다 소금 넣었다 오락가락했다. 간은 요리의 필수인 건가 보다.


 이렇다 보니 분명 목표양은 3인분이었는 데 내 냄비는 오늘도 넘쳤다.



잠시 냄비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이, 뭐 어때.

부족한 것보다는 낫지, 뭐.


그래도 오늘 인터넷 레시피에서 마늘과 미역은 상극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고 내 미역국의 문제점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딸의 7살 미역국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생일날 내가 해준 미역국을 딸아이는 처음으로 두 그릇을 먹었다.


거봐, 많이 안 했으면 어쩔뻔했어.

잘했어,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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