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꿈_01

베트남인들의 한국이민 개척사

by 이종섭

제1부. 이상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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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이 [제1부. 이상한 전쟁]의 이야기는 실화를 소설기법을 통해 조금도 거짓없이 그대로 기록한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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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이병사의 눈물


수호신 혼바산이 유구한 역사에도 변함없이 자존심을 지키며 내려다보고 있는 곡창의 도시, 투이호아! 북쪽 멀리 위엄을 갖춘 커다란 바위가 토착민들의 수호신처럼 우뚝 서 있고, 이웃하는 산들이 병풍처럼 겹겹이 솟아 외세를 막아줄 것처럼 감싸고 있는 장엄한 산맥. 그 앞에 펼쳐진 넓고 넓은 평야 한가운데를 젖줄 같이 탁한 물빛의 반나이강이 마치 베트남의 지나온 굴곡의 역사를 상징하듯 구불구불 굽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건기와 우기를 번갈아가며 뜨거운 태양빛과 풍부한 강수량으로 만물을 살찌게 하는 기름진 평야지대. 옛날 양민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던 풍성한 곡식대신 짧고 긴 잡초들이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이곳에는 언제부터인가 반나이강의 남쪽 평야지대를 주 근거지로 하여 쉴 새 없이 깃발을 펄럭이고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에서 파병된 백마 28연대 도깨비 부대였다.


“탄창 제거”

“노리쇠 후퇴, 전진(실탄제거)”

“어깨위에 총”

“격발!(실탄 없음을 확인)”


실탄사격을 마친 소대원들은 통솔자 청도깨비 11중대 1소대 2분대장 김 하사의 구령에 따라 ‘실탄제거’를 두 번 반복한 다음 확인격발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강 일병의 총구에서는 하늘을 향해 불을 뿜고 말았다.


“탕!”


순간, 통솔자 김 하사는 신경이 곤두섰다. 험상궂은 얼굴로 강 일병을 불러 세우고는 재빨리 총을 낚아채었다. 이어 그 총의 개머리판으로 방탄복 위의 가슴팍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정신차렷!”


이어 한 차례 더 반복하자 강 일병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비틀거리다가 억지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강 일병에게 다시 한 번 소총의 실탄제거를 확인시킨 김 하사는 소대원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며칠 전 1분대장으로 새로 전입 온 지 하사에게 다가가 담배 한대를 건넸다.


“한대 피지.”

“고마워, 근데 전쟁터까지 와서 구타를 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너무하다구? 지 하사, 여기가 충청도 후방 쯤 되는 줄 아나?”

“.....”

“지 하사 말대로 여기는 전쟁터야. 잠시라도 정신 못 차리고 아차하면 가는 거라구. 딴 생각 없이 열심히 땀 흘려 훈련하고 원리원칙 지키는 놈만 온전히 살아 돌아갈 수 있어, 알아? 원칙 안 지키면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죽이는 거라구.”

“...”

“총알과 파편은 빽 있는 놈도 돈 많은 놈도 가리지 않아. 죽어라 훈련하구 원칙 몸에 배서 안전수칙, 교전수칙 철저히 지키는 놈만 몸 성하게 살아 갈 가능성이 있다구.”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연대에서 만난 한쪽 다리를 잃은 병사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새로 월남에 온 5 제대라구? 참으로 한심하군.”

“뭐가 한심해?”

“네가 배치 받은 11중대는 병력보충 받으나마나 한 부대여. 얼마나 많이 뒈져 나가자빠지면 병상이 모자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것냐? 넌 1년을 운 좋게 견뎌야 살 수 있어, 알아? 난 이제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지만 말이여.”


그러나 계급도 이름도 모르는 그 병사는 쓴 웃음을 지은 다음 연거푸 양주를 들이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정강이부분까지 잘리고 남은 왼쪽 다리의 허벅지 위에 분통함을 참지 못한 참담한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넌 분대장이라서 첨병이란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몰러. 작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가서는 안 될 길을 가다가 그만... 부비트랩을 건드렸다구, 길이 난 편한 곳은 피하라고 훈련했는데도 말이여... 이걸 누가 알아주겠어, 응?

근데, 훈장 하나 덜렁 달아준다더군. 송아지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몇 푼 보상금도 주겠지. 그게 내 다리, 내 인생 값이여. 하지만 훈장 하나 있다고 창창한 인생 즐거울 것 같어? 내 인생, 땅 사주고 집 지어주고, 내 식구들 밥 공짜로 먹여 주냔 말이여. 더럽게... 이 빌어먹을...”

“...”

“하지만 이제 난 살았잖아, 고향 간다구, 집에서 부쳐온 돈을 보태 히다찌 냉장고 하나 사서 보냈어. 그거 팔면 10만원은 남을 거니께 그 돈으로 동생 학자금에도 보태라고 편지도 썼지. 차마 불구 되었다는 이야기는 쓰지 못했지만. 차마...”


횡설수설 하는 사이 어느새 환자복 바지는 흘린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쉴 새 없이 들이키는 술잔 따라 울먹이는 소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통곡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글구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우리 엄니, 아부지 만나게 되었잖아, 그럼 난 잘 된 거 아녀? 말 좀 해 봐, 말 좀! 나 잘 된 거 아니냐구! 내 다리....”


지 하사는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막사로 들어가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1년은 무척 긴데, 정말 나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가 알아, 팔 다리 잘리고 두 눈이라도 멀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이 비참할 정도로 절망적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지... 아니, 그래도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을 꺼야. 고향에 있는 처자식은 누굴 믿고 살아가겠어? 세 살배기 동철이는 지금 쯤 한창 말을 배우기 시작 했을 텐데... 그러니 어떻게든 난 살아가야 해.’



2. 고단한 야간침투 매복작전


해가 지고 땅거미가 모든 세상을 잠식할 즈음 3번 초소 앞에 3개의 분대가 완전군장을 하고 정렬하였다. 병사들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함께 감돌고 있었다. 전입 온지 보름 만에 매복작전에 처녀 출전하는 지 하사는 부대원들의 건강상태와 군장상태를 점검한 다음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출발을 명령하였다. 매복 목표지점은 부대에서 혼바산을 바라보며 왼쪽 10시방향의 76고지. 지 하사는 첨병조 뒤에 서서 분대를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분대장과 소대장은 단독군장으로 자신의 소총과 실탄, 수류탄 두발과 한 병의 물통 등 극히 기본적인 것만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행동이 자유로웠다. 하지만, 나머지 모든 분대원들은 5일간의 식량과 3일간의 물, 구급약품, 수류탄, 소총과 실탄은 물론이거니와 작전에 사용될 클레모어 폭탄과 야전삽을 포함한 각종 도구 등 무려 50kg 정도 나가는 배낭을 짊어지고 행군을 계속하였다. 힘이 든다고 마음대로 쉬어갈 수도 없거니와 소리 내어 헉헉거리지도 못하였다. 기침이 나와도 죽지 않는 한 참아야 했다. 점점 적진 속으로 깊이 다가갈수록 발걸음소리나 풀 스치는 소리조차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야간은 주간보다 소리가 무척 멀리 나가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 쯤 되어 중간지점에 이르자 폭 5미터 정도 되는 실 강이 나왔다. 깊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소총을 머리 위에 추켜들고 숨을 멈춘 채 건넜다. 다행이 한 길이 넘는 부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강둑을 기어오르는 일도 여간 힘들지 않았다. 급히 오르다가는 주르르 물 흘러내리는 소리가 야음을 깨트릴 수 있어 최대한 살금살금 올라가야 했다. 만약 중심을 잃고 철퍼덕 뒤로 넘어지는 날에는 무거운 군장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가 없으므로 그대로 익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일은, 그 소리 때문에 부대의 위치가 탄로나는 ‘위험성’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장에서 위치의 탄로는 작전의 실패와 직결되기 쉬우며, 병사 한두 명의 목숨은 작전의 실패보다 중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서 강을 건넌 병사들은 수 미터 앞으로 나아가 전방, 좌, 우를 살펴 경계하면서 다음 사람들이 마저 건너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물 묻은 몸에는 두꺼운 정글화도 뚫는 살인적인 기세의 모기떼가 무차별로 공격해 왔다. 우스갯소리로 이곳 모기의 유효사거리는 두꺼운 군용모포 3장이라고 하는데, 눈 주위를 한 번 쏘이면 수 분 내에 앞이 안보일 정도로 퉁퉁 붓고 말 것이다. 독한 액체의 모기약을 얼굴과 팔에 발라보지만 배나 옆구리, 다리 등 에는 방어할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고통을 수반한 짧은 휴식 같은 경계도 곧 마쳐야 했다. 강을 뒤로 한다는 것은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사지(死地)로서 적이 기습해올 경우 전멸의 위험이 있는 불리한 지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행군만 계속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조명탄이라도 쏘아 올려지면 아군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앉았다 일어섰다’로 은폐와 엄폐를 반복하면서 나아가야 했다. 말 그대로 극한의 중노동이었다.

어찌 되었든 50kg 내외의 짐을 지고 10 킬로미터 내외를 행군하여 새벽녘 날이 밝기 한참 전에 목표지점에 도착하여야만 하는 것이 이곳 매복작전의 현실이었다. 이어 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한 다음 클레모어 폭약의 설치 등 공격태세까지 완벽하게 마치고도 아무 일이 없을 경우,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을 런지 모른다.



3. 자비는 총탄에 묶어 날려라!


몇 시나 되었을까? 매복부대는 시계도 찰 수 없어 대원들 스스로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적진 속에서 야광이나 금속에 반사되는 빛은 아군의 위치를 결정적으로 노출시켜주기 때문이었다. 배낭에 짊어졌던 식용수 3일치는 벌써 반으로 줄어든 사람이 많았다. 야간행군에 지쳐 목 가죽이 달라붙을 정도로 목이 마르기도 하였지만,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서 일단 무개를 덜고 보자는 심리도 한 몫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 있는 대원들이라면 이곳에서 물이 떨어질 경우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길고 험한 행군 끝에 목표지점 산기슭에 도착한 부대는 매복을 위해 2부 능선에다 진을 치려고 계획하였다. 당초 순서는 지 하사의 1분대가 첨병분대였므로 먼저 왼쪽으로 자리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난 것이 산기슭 위쪽이 더 위험할 것 같았다. 따라서 1분대장 지 하사는 무전기로 소대장에게 작전변경을 요청하였다.

“독수리, 여기는 병아리 하나, 다음 분대를 왼쪽으로 배치시켜 주십시오. 저는 위쪽을 맡겠습니다. 이상”


그런 다음 첨병조와 함께 지휘조까지 먼저 위쪽으로 올려 보내면서 가급적 길이 난 것 같은 곳은 피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시야는 암흑의 지경이었으므로 부비트랩을 건드리느냐 안 건드리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운명일 뿐 능력 밖의 일이었다. 다만 이 지역은 작전상 아군이 몇 번 지나갔던 곳이라 중간 고참인 첨병에게는 그리 낯설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바로 이때였다. 한 발짝 한 발짝씩 분대원들을 약 10여 미터까지 더 올려 보낸 다음 구축할 매복진지의 위치를 지정하여 주려는 순간,


“꽈~앙!”


번갯불보다도 몇 배나 밝은 불빛이 주위를 환하게 노출시키며 귀청을 찢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기겁한 부대원들은 등골이 오싹하였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곧 이어 작지 않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1분대가 들어갈 자리를 순간적인 작전변경 때문에 지원분대인 3분대가 대신 들어간 것이었고, 그중 강 일병이 적군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을 건드려 피투성이가 된 채 나뒹굴고 말았던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훈련이 잘 된 탓에 개인 간 거리를 넉넉히 유지하여 다른 병사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적진 깊숙한 장소로서 이미 위치가 탄로 난 이상 잘못하다가는 전 부대원이 몰살당할 처지가 되어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극도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 지 하사는 조심스레 쓰러진 병사에게 다가가 보았다. 의식을 잃은 심각한 부상상태를 확인한 다음, 소대장에게 위험하므로 접근하지 말라고 연락하였다. 그 대신 구급용 헬기를 요청하여달라고 부탁하였다. 옆에 있는 병사더러는 신음소리가 멀리 새어나가지 않도록 부상당한 강 일병의 입을 수건으로 감싸줄 것을 지시하였다. 부상이 너무 심해 옆에 있는 위생병도 어쩔 수가 없는 상태였고, 지 하사 또한 신음하며 죽어가는 전우를 위해 책임 있는 지휘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얼마 후 구급용 헬기가 도착하였다. 하지만 적진 속에서 처치를 위한 어떠한 불도 밝힐 수가 없었다. 지 하사가 더듬거리며 강 일병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강 일병의 왼쪽 팔은 뼈와 근육이 함께 잘려져 일부 껍질에만 겨우 매달린 채 힘없이 덜렁거렸다. 방탄복 틈새로 미끄럽게 쥐어지는 것은 흥건하게 젖어 있는 갈비뼈와 걸레처럼 찢겨진 심장 부근의 살점들이었다. 핏방울이 뭉쳐질 사이도 없이 나뭇잎 위에 뚝뚝 떨어지면서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울렁거렸다. 지 하사의 팔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피는 가슴을 거쳐 옷을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허리춤에 고이는 것 같았다. 환자는 이제 통증마저 느끼지 못하고 신음까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지 하사는 죄책감과 분노가 함께 밀려들면서 참혹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소름끼치도록 치를 떨고 말았다.


‘심장만 건드리지 않았다면 살 수도 있을 텐데...’


헬기가 떠나가고 여명이 걷히면서 날이 밝아왔다. 아침은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럴 겨를도 없이 적군의 박격포탄이 능선 아래로 날아와 작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한 발이 1분대 쪽으로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씨~오옹, 꽝!”


포탄은 바로 옆에서 폭발하였다. 파헤쳐진 흙더미가 지 하사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벗겨져나간 철모를 다시 주워 쓴 지 하사의 무전기에서는 흥분한 소대장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일단 산 속으로 올라가 경계를 하라. 빨리!”


황급히 일어나 산 위로 올라가려는 순간 발 앞에 묻혀있는 대인 지뢰를 발견하고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어느새 지 하사의 손과 발은 움직일 때마다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뒷사람에게 위험을 경고하며 8부 능선까지 올라가 부대를 배치시키고 쌍안경으로 주위를 살폈다. 적은 강 건너 500여 미터 지점의 마을에서 박격포를 쏘고 있는 듯 하였다. 소대장이 포병부대의 105미리 곡사포 지원을 요청하자 잠시 후 마을의 여기저기서 포탄이 작렬하기 시작하였다. 검은 연기가 마을에서 솟아오르자 더 이상 적의 박격포는 날아오지 않았고, 그때서야 병사들은 잠시나마 긴장이 풀리는 듯 허기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지 하사가 숨을 돌리며 C레이션 깡통을 따려는 순간, 어디선가 메케한 냄새가 나면서 또 다시 소대장의 다급한 무전기소리가 울려나왔다.


“여기는 독수리, 산에 불길이 올라오고 있다. 모두 서쪽 강 있는 곳으로 하산하라. 이상”


박격포탄 폭발에 의해 붙은 불은 엄청난 속도로 정글 숲을 태우며 올라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매연과 열기가 얼굴을 익힐 정도로 뜨거워졌다. 짐을 다시 꾸리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첨병조가 내려갔다. 지 하사는 후방의 지원조까지 내려 보내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때 마지막 병사와 함께 내려가려는 순간, 아래쪽에서 또 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내려가던 정현찬 병장이 나무 중간에 걸어놓은 부비트랩을 건드려 아랫배 부근 높이에서 폭발한 것이었다. 다른 분대원이 달려가 쓰러진 정 병장을 등에 업고 숨 막히는 연기 속을 헤치며 강가로 내려와 바닥에 뉘었다. 부상병의 맹장 부근에서는 검붉은 혈액이 퀄퀄 치솟고 있었다. 지 하사는 위생병을 급히 불렀다.


“위생병! 어떻게 좀 해봐, 어떻게 좀... 피, 피를 막아야지...”


그러나 위생병이라고 한들 소도구만 지닌 채 그런 큰 구멍의 상처에 대하여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우선 압박붕대를 꺼내 박힌 파편을 그대로 놔둔 채 구멍을 대충 틀어막았다. 커다란 파편이 흘러나오는 피는 물론이거니와 잘려진 내장과 그 속에 가득 찬 오물들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 병장은 이제 조금 정신이 드는 모양으로 자신의 낭심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아파요. 아무래도 문제가 있나봐요. 여기요...”


자세히 보니 바지에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정 병장은 배의 큰 부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낭심의 작은 부상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분대장님, 전 2대 독자예요. 여기 다치면 안돼요.”

“그래그래, 치료하고 있어”


정 병장의 상태는 무척 심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믿지 않는 듯 하였다. 하지만 의무병은 한 시간을 견디기 어려운 치명상이라고 지 하사에게 귀뜸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태를 보고 받은 소대장은 더 이상 구급용 헬기를 부르지 않았고 지원부대가 오는 시간만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다. 내장이 통째로 삐져나올 정도의 상처에서 쏟아내는 피는 압박붕대를 순식간에 적시고도 모자라 깔아놓은 방탄복 아래 반경 50쎈티 정도의 땅바닥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면서도 결코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정 병장은 눈을 감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갔고 그때마다 지 하사는 흔들어 깨우면서 말을 걸어보려고 애를 썼다.

“조금만 더 참아, 응? 병원에 가면 치료하고 편지 해.”

“네, 전 아직.... 죽... 으면 안돼요. 소... 송아지를.... 소...”

“...걱정하지 마, 잘 될 꺼야. ”

“우리 집... 편지 좀 해 줘요. 내... 내가... 귀국하면 비... 빚을 값을 거라...구... 송아... 소... 송아...”


끊어질듯, 끊어질듯 한 불안정한 목소리는 그마저도 힘을 잃어 더 이상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신음소리마저 멈추었을 무렵 지원부대가 도착하여 들것에 부상자를 실어갔다.

3분대장 권 하사가 소대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 마을이 두고두고 문젭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또 당할 겁니다.”

“그래, 저 마을을 공격할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죽인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지 하사가 다시 물었다.


“양민들도 죽입니까? 노인이나 아이들까지도...?”


그러나 소대장은 못 들은 척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마을 쪽만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때 주변 상황을 정찰하고 돌아온 김 하사가 이 소리를 듣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무라듯 한마디 하였다.


“무슨 소리야, 지 하사! 농민이든 종교인이든 간에 밤만 되면 다 베트콩이 되는데 무슨 양민? 베트남엔 양민이 없어. 남베트남 민병대도 우리와 같은 편이라고 말할 수 없구. 여기서 믿을 수 있는 건 우리들 자신뿐이야.”

“민병대까지? 설마...”

“설마? 흥,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했군. 지 하사는 이 사람들 가족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 큰아들은 월맹(북베트남)군, 둘째아들은 월남(남베트남)민병대, 딸은 베트콩의 간부.... 이 사람들이 총을 든 건 미국이 돈과 무기를 대주기 때문이야, 한국군이 지역 전투에서 백전백승을 거둔다 해도 남쪽 월남은 절대 북쪽 월맹을 이길 수 없어. 군부의 몇 몇 지도자만 빼놓고 정부 관료와 종교인, 학생,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든 국민들은 처음부터 이길 의사가 없었던 거야. 남베트남이건 북베트남이건 저들이 겨누는 과녁은 자신들의 반대지역 세력이 아니라 바로 외국세력인 우리 한국군과 미군들이라구.”

“......”

“오늘 저 마을 농민패거리한테 당해봤잖아, 박격포를 쏘아대도록 밥해주고 자금대주고 정보 제공해주는 이중 얼굴의 간교한 놈들이 무슨 얼어 죽을 양민이야 양민은...? 오늘 희생당한 강 일병, 정 병장의 원수는 갚아야 할 거 아냐.”


김 하사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지 하사는 김 하사 말이 그대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설령 믿어진다 하더라도 무기도 들지 않고 항거하지도 않는 농민 노약자들에게 어떻게 총을 쏠 수 있단 말인가? 논산훈련소의 신병훈련과정을 거쳐 ‘인간재생창’이라 불려지는 혹독한 하사관학교 훈련과정, 그리고 속사훈련과 탱크저지 특수훈련까지 마친 최정예 지휘자 하사 지대일이었지만, 이는 무장한 적군들과의 싸움을 위한 것이었지 민간인을 죽이라고 훈련 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저 마을에 민간 노약자들이 없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행여 남아있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되어 혼잣말처럼 투덜거리고 말았다.


“노인들만 있다면 체포해서 상급부대에 넘기면 안 되겠나?”


김 하사가 말을 받았다.


“지 하사, 걱정하지 마. 오늘 마을 공격은 우리 2분대가 맡을 거니까 1분대는 외곽경계, 3분대는 지원분대의 임무를 맡아.”


김 하사의 말이 끝나자 소대장은 희생병사들의 원수라도 갚아주려는 듯 다시 한 번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령하였다.


“좋다. 자비는 총탄에 묶어 날려 보내고, 생명이 붙은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인다. 단 하나라도...”


잠시 후 중대장의 작전승낙이 떨어지자 부대는 곧 강을 건너 마을 부근에 도착하였다. 두 채의 가옥뿐인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였다. 포격에 부러지고 찢겨진 바나나나무가 죽은 시체처럼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창고로 보이는 것도 있었으나 포격에 무너져 불타고 있었으므로 형체는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

김 하사는 한 주택에 경계병을 좌, 우로 배치시킨 다음 공격조가 다가가도록 신호를 보내었다.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좌, 우로 난 주택의 틈새구멍을 통해 수류탄을 던져 폭발시킨 후 우회하여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를 본 지 하사는 하늘이 농민을 도왔다기보다 오히려 한국군을 크게 도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흥분한 병사들은 나머지 한 채의 주택에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들어갔으나 역시 인기척은 없었다. 다만, 놀란 닭 두 마리가 앞마당과 풀밭에서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놈이라도 죽여라!”

“따다다다다닥!”


한 병사가 난사를 당하고 쓰러져 힘없이 푸득 거리는 닭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다가가 총을 갈겨 마지막 숨통까지 끊어 놓고 돌아섰다. 주택은 불길에 휩싸이며 또 다시 희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하였다.



4. 어느 베트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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