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새로운 시대> (2024)
*스포 없습니다*
혹성탈출은 바이러스로 인해 반대의 운명에 처한 인류와 유인원이 공존하는 미래세계를 그리고 있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1968년 이후로 9편이나 제작되었고. 리뷰할 <새로운 시대>는 10번째 영화다. (오리지널 5편, 리메이크 1편, 리부트 3편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시대>를 보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그 이유는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퇴화된 인간과 진화된 유인원, 그리고 지성을 가진 인간의 구분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영화 설정상 지능의 순서는
지성을 가진 인류 > 진화된 유인원 > 퇴화된 인류다.
먼저 눈에 띄는 구분은 언어 구사 능력의 유무이다.
이 구분은 전작 시리즈에서부터 시작됐는데, 최초의 진화된 뇌를 갖게 된 유인원 '시저'의 인간화 특이점은 바로 'NO'라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단어들로 소통하는 수준까지 묘사됐었는데, 이번 시리즈에서는 대화까지 가능할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퇴화된 인간은 언어를 잃어버렸다. 이것은 인간성의 상실로 대표되는 증상이다. 결국 언어는 인간다움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다음으로는 옷이다. 옷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시각적인 요소다. 옷은 나체를 가려준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인 것이다. 영화에서 퇴화 인류는 원시형태이긴 하지만 여전히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은 퇴화된 인류라 해도 여전히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지니고 있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12세 등급의 설정상 나체의 모습을 표현하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녔다면 언젠가 후속 편에서 치료제가 개발돼 이들이 회복되는 스토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퇴화된 인간에게서 인간다움을 발견할 장면이 또 있다. 한 인간 무리가 강가에 등장한다. 여기서 무리는 물을 마시는데 이때 모습은 살펴볼 만하다. 위 그림과 같이 그들은 앉아서 손으로 물을 떠마신다. 이것은 분명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동물은 손을 사용하지 못한다. 심지어 손을 사용하는 유인원이라 해도 계곡에서 물을 마실 때는 입을 그대로 물에 가져다 대고 마신다. 손에 물을 담아 떠마시는 행위는 분명 인간만이 하는 행동이다. (유인원 주인공의 이름이 성경 인물 '노아'에서 따왔다면, 물 마시는 이 장면 역시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 300명의 용사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300명의 용사는 강가에서 물을 떠마시는 행위를 기준으로 뽑힌다.)
마지막으로 문자 사용 여부이다. 지성을 갖춘 인류는 여전히 문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제 청동기시대 정도의 발전을 이룬 유인원은 문자의 존재는 알지만 뜻을 배우지는 못했다. (이 부분은 조금 의아스럽다. 이전의 시리즈에서는 실험실에서 문자를 배우는 유인원도 나왔었다. 또 문자를 사용하는 인류를 곁에 두고도 교사로 쓰지 않고 책을 읽어주는 이야기꾼으로만 쓴다는 것, 지능이 발달한 유인원이 문자를 배우지 못했다는 설정은 납득이 어려웠다.) 문자는 인간다움의 강력한 증표라 해석됐다.
결국 영화에서 그리는 인간다움이란 언어, 문자 (책), 옷 (자각),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품행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시리즈는 진화된 유인원의 시작과 퇴화된 인류의 멸망을 그렸다면, 앞으로 나올 시리즈는 거의 사라졌던 인류와 더 발전할 유인원의 대결이 될 것 같다. 더해서 오리지널 시리즈, 리메이크와 이어지는 세계관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