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희 May 11. 2023

퇴사하기로 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수백 번 수천번 고민을 했다. 몇 주 동안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아침마다 화장실을 가야 했고 내가 소속되어 있지 않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마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처럼.


계속 시계를 바라보며 언제 말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임이 회의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팀장님이 향후 콘텐츠 기획과 구성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개편안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앞으로의 업무와 조직 협업체계 등의 중요도를 강조하는데 부담감과 압박감이 어마무시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고 자리를 일어나려는 팀장님을 붙잡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사실 저 다시 호주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팀장님은 놀라면서도 차분하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솔직하게 모든 걸 말했다. 내가 가려는 도시는 어디인지, 내가 배우고자 또는 얻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또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이렇게 용기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던 팀장님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끄덕이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떠난다는데 어떻게 말리겠어. 멋지다."라고 말해주었다. 그 포근한 말 한마디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고 걱정과 불안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웃으면서 "우리 그럼 화상으로는 안될까?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면 양팔 벌려 환영해 줄게."라고 말해주는데 정말 너무 감동받아서 다시 이런 사람들을 일하면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누가 회사를 그만둔다는데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바쁘고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새로운 인사채용도 끊이질 않고 있었기에 더 고민했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실망스럽거나 원망 섞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떠나는 걸 서운해하면서도 나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었다. 다시 한번 내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랑 일하고 있었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곳에서 일함으로써 그저 돈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들을 얻게 되었다. 경력도 없던 나에게는 매우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였으며 나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 더 다채로워질 나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