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수고를 더하는 것
주말에 도쿄에 다녀왔다. 늘 비행기 좌석에 앉은 후에야 뒤늦게 음악이라도 다운로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플레이리스트의 모든 음악을 듣겠다고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단 한 곡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명예로운 죽음(비행기 모드)을 맞이한 기억이 있다. 이번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최근에 꽂힌 노래 5-6곡 먼저 다운로드 받은 후 나머지는 무작위로 눌렀다.
알고리즘의 추천대로 음악을 듣다가 앨범아트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플레이리스트에 넣은 곡이 있다. (그리고 매번 스킵해서 존재도 잊었다.) Paniyolo의 ひとてま(히토테마)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앨범명의 앞의 세 글자(ひ,と,て)에서 한 사람이, 마지막 글자(ま)에서 두 사람이 오려져 나와 서로를, 뒷 모습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장면이 따스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 중반에는 일 때문에 하루 1시간 이상 음악을 고르고, 7시간 이상 남들과 함께 들었다. 그 일은 원래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매일 시간 들여 고른다는 점을 소구하려던 의도가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는 지금은 앨범아트 볼 시간은 커녕 음악 들을 시간이라도 있으면 감사한 순간들이 종종 있다. 사실 이건 멀티가 안 되는 내 문제이기도 하다.
비행 중에는 멀티 없이 음악 감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하지만 나는 건망증 때문에 항상 들을 수 있는 곡이 얼마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 모든 곡에서 매력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서 생소한데 어쩐지 일본인이 치는 것 같은 기타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중학교(2학년 맞음) 때부터 일본 음악을 많이 들어서인지 반주만 들어도 그런 확신이 들 때가 있다.
평소 같으면 잔잔해서 바로 스킵했을 것 같은데, 일상의 패턴에서 벗어나 다른 선택을 했다. 이런 선택은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여러 우연 덕분에 끝까지 듣게 된 곡은 Paniyolo의 Color였다. 오랜만에 보는 앨범아트가 반가웠다.
여행 내내 이 곡을 많이 들었다. 모든 취향과 선호는 사실 당연과 같은 우연 속에서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맥주파와 하이볼파가 함께 다니는 바람에 술을 하나씩 주문하느라 ひとつ(히토츠)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전에 혼자 여행할 때는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혼자 왔음을 알리느라 ひとり(히토리)를 연발했다. ‘ひと(히토)’가 붙으면 ‘하나의', '한 번의'이라는 뜻이겠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까먹어서 히라가나를 전부 읽을 수는 없지만 ひとてま(히토테마) 네 글자는 수월하게 읽는다. 한때 공부했던 기초 일본어 책에 특이한 암기법이 있었는데, 히토테마(히틀러 코, 토끼, 테이프 릴, 마라톤 선수)의 기억법은 너무 유치해서 아직까지 생각난다.
てま(테마)는 ‘수고’라는 뜻이다. ‘한 번의 수고’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구글을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아서 아티스트를 함께 검색했다. 역시 중학교 때 알게 된 사실은 어떤 음악이든 항상 먼저 찾아보고 정리해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ひとてま(히토테마)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추가적인 시간, 노력 등’을 뜻한다고 한다. ‘한 번의 수고를 더한다.’ 라는 의미를 품고 있나보다.
일을 할 때나 운동을 할 때도 그렇지만, 특히 사람을 대할 때 이 ‘한 번의 수고’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실감한다. “이런 건 정말 굳이 해준 거잖아.” 라는 말은 내가 감동 받았을 때 하는 말 중 하나이다.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다.’라는 말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한 번의 수고를 더한다면 6도에서 7도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