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 피자 먹기
베르사유 궁전을 갔다 집으로 가는 길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집에서 간단히 먹을까를 고민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배고픔보다는 피곤함이 더 커 여러 가지 옵션에서 집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에어비앤비 숙소는 저렴하게 묵기 위해 파리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좋았다.
관광지를 벗어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보인다.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였다.
파리 시내에서는 보기 드문 분위기였다.
집에 와 짐을 풀고 침대에 눕고 나니 저녁 옵션 중 하나였던 화덕피자가 먹고 싶어졌다.
집 주변 트램을 타고 가면 10분 정도의 위치에 구글맵의 평점 좋은 화덕피자집이 있었다.
계획에도 없던 일정이었지만 엄마도 '가자, 맛있겠네 화덕피자.'라는 말에 우리는 트램을 타고 피자집을 향했다. 이렇게 급 잡힌 저녁식사에 설렘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트램을 타고 가는 내내 설레 엄마에게 말을 늘여다 놓았다.
"엄마 내가 저번 유럽여행 때 버킷리스트가 있었는데~~
이탈리아에서 1인 1 피자를 먹는 거였어, 'eat play love'라는 영화에서 보면 줄리아 로버츠가 이탈리아에서 1인 1 피자를 하는 장면이 있거든, 그게 너무 자유롭고 해방감이 드는 거야. 근데 못했어. 그래서 너무 아쉬워서 이번 유럽여행 때는 꼭 하려 했거든. 그러니까 우리 가서 꼭 피자 각자 하나씩 시켜서 먹자. 유럽스타일 피자는 씬이 얇아서 다 먹을 수 있을 거야. 이탈리아 가니까 아기들도 각자 하나씩 피자를 시켜서 칼로 썰어 먹더라, 그게 뭔가 너무 낭만적이고 너무 설렜어."
낭만에 취해있는 딸과, 피자 한판을 어떻게 다 먹냐는 엄마와의 설레고도 싱거운 대화가 몇 마디 오가고 나니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피자집은 트램에 내려 10분 정도를 걸어야 했는데, 이 망할 놈의 구글맵..
구글맵의 도보기준은 190cm 신장을 가진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둔 것이 틀림이 없다.
10분 이상을 걸어도 화덕피자집은 나오지 않았고, 낭만은 사라지고 엄마는 다리가 아파 괜히 나왔다며 지쳐가고 있었다. 설렘과 엄마의 피곤함에 대한 불안한 감정이 오갈 때, 다행히 피자집 간판이 눈앞에 보였다.
피자집 안엔 정말 동네 사람들만이 있었고, 영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only 불어만 쓸 줄 아는 웨이트리스가 있었다.
사진을 보여주며 피자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도착을 했고, 애석하게도 오더 한 피자와 다른 피자가 왔다.. 생 토마토가 올라간 피자를 주문을 했는데 선드라이토마토와 바질이 올라간 토마토가 서빙이 되었다....
선드라이토마토도 괜찮아, 오늘은 내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는 날이잖아! 나는 너무 행복해
엄마는 피자 사이즈에 기절하게 놀랐다. 이걸 어떻게 다 먹냐며... 그런데 정말로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사이즈를 아이도 혼자 뚝딱 먹었다. 나도 해낼 수 있어, 다 먹을 수 있다며 호기롭게 외쳤다.
피자를 한 입 먹는데... 맛있지 않았다. 맛없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았다.
올라간 파마산 치즈 슬라이스는 기절하게 짰고, 선드라이 토마토도 너무 짰다....
프로슈토도 너~~~ 무 짜서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절인 고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먹어본 프로슈토 중 짜지 않고 씹으면 씹을수록 지방의 고소함이 올라오는 맛있는 프로슈토도 있던데..
엄마는 먹을수록 피클을 왜 피자랑 먹는지를 알겠다며 참 깨달음을 얻었고, 나는 피자의 1/4까지 먹고 이미 피자에 질려버렸다...
"외국사람들이 왜 밥을 먹을 때 와인을 함께 먹는지 알겠다, 이렇게 음식이 짜고 느끼하니까 와인이랑 먹어야 되네. 그래야 음식이 내려간다." 라며 엄마도 찐 양식을 먹은 후 한국스타일로 변형된 양식러버였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결국 와인을 식사 중간에 각각 한잔씩 주문을 해 마셨다. 이미 엄마와 나는 피자 반절도 못 먹고 피자에게 K.O를 당했다.
놀랍게도 우리보다 늦게 온 옆 테이블의 부자지간은 각각 피자한판을 깨끗이 다 먹고, 와인 한잔도 여유롭게 곁들였으며, 이후 디저트로 각각의 티라미수까지 다 먹어가고 있었다.
정말 놀라웠다.... 그래, 내가 원했던 건 저런 그림이었어.
평일 저녁의 다정한 외식, 여유로운 식사와 대화, 그리고 와인과 디저트까지 곁들인 행복 가득한 구성.
실제로 경험해 보니 피자 1판을 먹기에는 부족한 위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피자를 다 먹지 못하고 포장을 했다. 하지만 디저트의 낭만을 놓칠 수 없으니 티라미수 1개를 나눠 먹었다.
피자를 배 터지게 먹고 나오는 길 나는 계속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르겠다, 빈틈 있는 몇 프로 부족한 저녁식사였지만 왜 이렇게 행복한 건지.
두고두고 이 순간이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이 추억을 평생을 기억하며 살겠구나.
약간은 허름했던 레스토랑, 아찔할 만큼 짰던 피자의 맛, 달콤했던 와인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다정했던 부자지간. 오더실수는 있었지만 친절했던 웨이트리스.
퍼펙트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았던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룬 날.
집으로 가는 길 핑크빛 하늘이 눈물 나게 예뻤다. 모든 순간들이 영화 같았다.
모든 순간이 낭만적인 파리였다.
다음날 아침, 화장실을 갔다 방으로 들어오니 엄마가 피자를 먹고 있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진다.
피식 실소와 함께 나도 그 옆에 앉아서 눈뜨자마자 식은 피자를 나란히 먹는다.
그리고 내가 낭만을 가지게 된 'eat play love' 영화를 튼다.
자연스레 아침부터 공복에 피자와 와인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eat play love'를 본다.
행복하다.
다 식어빠진 남은 피자가 어제보다 더 맛 좋은 느낌이다.
오후 느지막이 나가면 뭐 어때,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듯 특별한 순간이 좋다.
콧구멍이 벌렁거릴 정도로 좋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