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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ta Black Mar 29. 2024

'지구력' 약한 '지구인'

회피심리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단거리 달리기를 꽤나 잘했다.

중학생 시절엔 반에서 1등이었고 고교생 때는 육상부에 들오겠느냐는 제의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반전이 있었다.

지구력이 너무나도 약한 것!

교내 체력장*에서의 '오래 달리기’를 너무 싫어했던 것이다.

단 1킬로미터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 체력장 : 학생들의 기초체력 향상을 위하여 교육부에서 실시하던 중·고등학생에 대한 체력검정.



'노력'이란 걸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반에 천천히 달려 체력을 아껴 보았다.

그러나 결국 죽을 맛이었다. 아낄 체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초반부터 속도를 내면, 이내 숨이 차는 고통이 밀려왔다.

그 고통은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결국 '극복'보다는 '회피'를 선택했다.


체력장에서 오래 달리기는 마지막 종목이었고,

다른 종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면제될 수 있었다.

그래서 잘하는 종목으로만 최선을 다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1등을 차지했고,

윗몸일으키기와 턱걸이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결국, 나는 오래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 결과에 만족하고 안도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런 반복된 회피는 '무의식 속에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그것은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도 세월이 한참 흘렀다.


장기간 복용하던 처방약의 부작용과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몸무게는 100kg에 육박했고 전신은 항상 부어 있었다.

(마치.. 도라에몽과 비슷한 몸이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건강검진 결과는 최악이었다.

비알콜성 지방간을 포함에 정상인 부분이 없었다.


"체중 감량을 많이 하셔야 해요. 안 그러시면 정말 큰일 날 수 있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시고 걷거나 가볍게 뛰세요."

의사 선생님 말씀이다.


처자식의 앞날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고심 끝에 '조깅'을 시작하기로 했다.

여전히 난 오래 달리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생존의 문제니 어찌하랴;;;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있으니,

사람이 드문 새벽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새벽 5시에 몸을 일으킨다.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20분간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린다.


5시 20분...

다시 자기는 시간이 짧고,

멍하니 앉아있기는 자괴감만 든다.


결국,

가벼운 스트레칭 후 현관으로 간다.


운동화를 신으면서 '다시 벗을까?' 고민한다...

공동현관을 나서니 추운 날씨... '다시 들어갈까?' 고민한다...

'에잇!'하고 아파트 정문을 향한다.


그것은 매일 반복된다.




100m 뛰고 200m 걷고 반복...


뛰는 것은 걷는 속도와 같았고 걷는 것은 굼벵이와 같았다.

심박수는 하늘을 뚫을 듯했다.



30분... 고작 2km...

짧지만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학생시절 '회피'했던 오래 달리기와는 견줄 수 없이 힘들었고 또 힘들었다.


지친 몸뚱이로 생각한다,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까?'

또다시 '회피'기질이 고개를 든다.




그래도 제법 어른이 된 걸까?

어린 시절과 다르게 '좀 더 해보자'는 결론을 낸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걸음이 좀 더 빨라지고 뛰는 비율이 걷는 것과 비슷해졌다.


들숨 날숨 규칙이 전보다 규칙적이고

심박수가 점점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퇴근길에 2 정거장 전에 내려 걷는 코스까지 추가했다.

(초행길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해야 했다.)


그리고, 5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몸은 전에 비해 가벼워지고,

교통신호에 걸리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뛸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직 빠르게 뛰지는 못한다.)


일주일에 한 번, 트랙에서  8km 정도를 달려보기도 한다.

(시간은 오래 걸린다.)


그리고 피곤한 상태라면 전날 휴식을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13kg을 감량하고 모든 건강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새벽조깅을 나갈 때면 '고비'가 있다.

하지만, '오늘도 그냥 한다.'



"Running away from something doesn't do anything except put distance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통해 변하는 것은 단지 그것과 거리가 더 늘어나는 것뿐이다."
- Rob Hal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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