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보로봉 Apr 22. 2016

어바웃해장국

B를 지나온 C의 우리는 달라져있다. 그걸 다 거쳐서 부부가 되어간다.

우리는 차를 타고 해장국을 먹으러 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차에서 내린 남편이 혹시 해장국 집에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알고 있는 근처의 해장국 집에 들어가 둘러 보았지만 남편은 없었다.    


해장국 집까지 차로 채 십 분이 안 되는 거리를 오면서 서로 말꼬리를 잡다가 한바탕 싸웠다. 급하게 서운해하고, 욱하고 화를 내는 내가 또 욱해서 화를 내고 그날따라 그게 너무 싫고 지쳤던 남편도 지지 않고 성을 냈다. 둘 다 싸우기 싫으면서 지기도 싫었던 그날의 우리는 순식간에 기분이 엉망이 됐고 남편은 차 문을 꽝 닫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차에 혼자 남아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 아까 거기서 내가 참을 걸, 그랬으면 되는데 왜 한마디를 더 지르고야 말았을까 후회했다. 그 시간 그 지점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더도 말고 딱 거기로 돌아갔으면,,,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진부하지만)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다. 아아, 지금쯤 맛있게 해장국을 먹고 있을 텐데.    


며칠 전 봤던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집안 남자들이 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주어진 능력을 분별없이 사용하다 오히려 많은 것을 잃고 후회하게 되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팀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도 대단한 욕망을 위해서가 아닌, 친구를 돕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아끼는 동생의 인생을 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재회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한다. 결국은 자신의 의지로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오늘 주어진 하루가 다시 한번 더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주하면 실제로 시간을 돌리지 않아도 모든 것이 달라진 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오늘 하루를 살았고 다시 아침으로 돌아온 거야, 좀 더 잘 살아보기 위해, 좀 더 나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 라고 마음 먹고 시작한 하루는 순간순간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만들고, 결국 삶은 되돌리며 살아야 할 필요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해장국 집에서 남편을 찾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차를 돌려서 인도를 살폈지만 보이지 않는다. 집 앞 현관에 주저 앉아 기다리는 시간은 답답하고도 길었다. 도착하면 끌고 다시 나가야지, 화를 안 풀면 어떡하지?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 긴 시간을 기다렸다. 서로 엇갈리고 걷고 찾은 끝에 우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만났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집으로 들어가는 그의 팔짱을 강하게 끼고 해장국 먹으러 가자, 그랬다. 못이기는 척 서로에게 화를 풀고 해장국 집에 앉아 두 그릇을 주문하고 나서,  

나는 당신이 해장국 집에 있을 줄 알았다 그랬더니, 내가 아무리 해장국이 먹고 싶어도 그렇지, 싸우고 기어이 가서 앉아 먹겠냐며 웃었다. 그렇게 다 풀렸다. 애초부터 둘 다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차를 가지고 돌아가는 동안, 한참을 걸어가던 남편은 내가 울고 있을 거란 생각에 차가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가버렸더라? 그래서 우리는 또 웃었다. 그렇게 오래 함께 살고도 둘 다 어디에 있을지 맞추지도 못하고 말이야.   

나 이제 안 운다고요. 울긴 왜 울어.     


한 사람은 깍두기를 썰고, 다른 사람은 그 동안 각자의 컵에 물을 따르고 수저와 젓가락을 놓으면서 말을 하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는 걸 보면서, 그렇게 싸우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마음이 아프고 지쳤을지라도 싸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싸우기 전을 A, 싸운 지점을 B, 그리고 화해하고 난 지금을 C라고 하자. B지점에서 영화에서처럼 A로 돌아간다면 뭐든지 손쉬웠겠지만 B→C를 거치지 않은 우리는 사이는 좋아도 지금의 애틋함은 더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나에 대해 항상 힘들어했던 점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매번 순간만을 모면하려고 했을 것이다. 분명히 B를 지나온 C의 우리는 달라져있다. 그걸 다 거치고 거쳐서 부부가 되어간다.  


예전엔 기분을 풀면서 파스타를 주문할 수 있는 예쁜 가게에 많이 갔다. 최근에는 싸우고 나서 순댓국, 추어탕, 그리고 오늘은 해장국 집에 왔다. 내 마음 말고 그가 먹고 싶었던 해장국 집에 다시 함께 오는 것으로 나는 그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다. 그렇게 해장국 맛도 알아간다.     


그래서 주인공도 아마, 시간을 되돌리지 않고 마주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야 진짜로 시간에 관해서, 인생에 관해서, 해장국에 관해서 알아갈 수 있는 거다. 다행히 그는 일찍 깨달은 것 아닐까? 나야말로 시간을 돌릴 기회도 능력 같은 것도 없으니까 욱하지 말고, 좀 잘해야지, 라고 결심하며 밥을 말은 그의 해장국 그릇에 깍두기를 올려주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해주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빗자루와 족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