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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May 24. 2016

달걀 스타일

다만, 누군가의 맘에 들기위해 답을 고르는 일은 없도록 하고싶다

일러스트@황인정


아침에 삶은 달걀 2개를 먹었다. 반숙을 좋아한다. 스크램블도 좋아하고 달걀 프라이도 좋아한다. 최근엔 굵은 소금이 좋아져서 프라이 위에 뿌린 소금 알갱이가 씹히는 것도 즐긴다. 두툼하고 단정하게 잘 말린 달걀말이도 좋아하고 폭신폭신하고 보드라운 달걀 찜도 좋아한다. 여행가서 처음 먹어본 수란은 또 먹고 싶고, 달걀물을 입혀 구운 토스트는 사랑한다. 장보기가 잘 안 풀릴 때는 일단 달걀을 담아두면 안심이 되고 든든하다.

제일 좋아하는 달걀 요리는 뭐야, 라고 물으면 조금 고민해 봐야 한다.
호텔에서 처음 룸 서비스로 아침식사를 주문하면서 달걀요리는 어떻게? 라는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 수화기를 들기 전에 남편은 오믈렛, 나는 스크램블을 골라두었으면서도 또 잠깐 고민한다. 새롭게 에그 베네딕트를 먹어볼까, 라고 0.5초? 1초? 쯤 고민해본다.

이렇게 달걀 리스트를 열거하자면 영화 “브라이드 런어웨이”가 떠오른다. “귀여운 여인” 이후 리차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의 만남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만큼 실망스럽다는 혹평들을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접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영화의 평가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 나는 매기(줄리아 로버츠)가 모든 종류의 달걀 요리를 펼쳐놓고 하나씩 먹어보는 장면이 좋았다.

매기는 네 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매번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매기는 전 남자친구들에게는 ‘남자킬러’ ‘탐욕스러운 죽음의 여신’이자 여자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매력이 흘러 넘치는걸 인정하지만 밉기도 한’ 친구다. 상대방의 마음에 들기 위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자신도 좋아한다고 여기던 그녀는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가 되어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 채 매번 남자에게 자신을 맞추는 것을 반복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전 남자친구들을 만나던 아이크(리처드 기어)는 그녀가 달걀 요리조차 상대방에 따라 스크램블 에그, 달걀 프라이, 삶은 달걀, 달걀 흰자요리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매기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된 아이크와의 결혼식에서조차 도망치고 만 매기는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달걀요리를 하나씩 다 먹어보고 나서야 아이크 앞에 가서 다시 고백한다.

“베네딕트식 달걀 요리가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결혼식은 싫어요”

신혼여행으로 에베레스트에 가는 것이 싫으면서도 약혼자를 따라 기대되고 신나는 척을 했던 그녀가 자기자신이 상대방과 상관없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와도, 상대방과도 진심으로 마주하려고 용기 내는 장면이다.

고작 좋아하는 달걀요리하나 말을 못할까 싶지만, 살다 보면 나도 순간순간 말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다. 그보다 더 사소한 것에도 ‘사실 난’, 이라고 말하지 않고 삼킨 것들이 있다.
그리고 매기가 그랬듯,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환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그 순간을 넘기고 트러블 없이 지나가길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좋아해준다고, 받아들여졌다고 안도했다. 그들에게 물으면 나에 대해서도 같은 답이 돌아올지 모르겠다.

“매기는 어떤 달걀 요리를 좋아하죠?”
“나와 같은 거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까
나를 나로 봐주지 않는 부모에게
원하는 이상향이 되어주길 바라는 배우자에게
나를 시험하는 동료와 친구들에게
자꾸 겁을 주는 세상에게

직장에 다닐 때 아침마다 나는 긴장했다. 업무도 상사 때문도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대 여섯 살 많았다. 그들은 토론에 익숙했고 반박과 강의에도 능숙했다. 그들이 의견을 묻듯 자연스럽게 질문하는 것들은 이미 수 십 번의 토론과 대화로 답이 만들어진 것들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평가하기 위해, 시험해보기 위해 물어진 것들이었다. 대답할수록 나는 당황하고 수렁에 빠져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젊은데 멍청한 안타까운 보수”가 되어 있었다. 보수가 제대로 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아침 출근길에 나는 그들이 할만한 질문과 그들이 수긍할만한 답변을 시물레이션 하며 걸었고, 조금 익숙해지자 나는 같은 질문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보고 준비된 답변들로 우쭐거리며 그들을 평가하기도 했다.
사회에 나온다는 건 쏟아지는 질문에 실수하지 않고 대답할 전투준비를 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참으로 어렵고 피곤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짙은의 ‘안개’를 이 글을 쓰는 밤 내내 듣고 있다.
“누구도 우리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처음 같은 곳으로 도망가자 나와 함께” 라는 가사에 그 때 그 출근길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야 했다. 질문도 이유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질문을 하지 않는 처음 같은 곳은 어디일까?

나는 스크램블을 좋아하고 달걀 프라이도 좋아한다.
그것 말고도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한 수많은 답변이 남아있다.


다만,
누군가의 맘에 들기 위해, 개념 있어 보이기 위해, 멋져 보이기 위해 답을 고르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다. 지금도 노력하는 부분이다. 순간순간 사람들 맘에 들고 싶은 때가 많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대답은 뭐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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