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보로봉 Aug 26. 2016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

먹을 것 안에서 우리는 모두 위 아 더 월드!

이런 것들을 이해 받을 수 있을까?


시장구경을 좋아하지만 백화점 식품 매장도 좋아한다.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시장의 활기도 좋지만, 예쁘고 귀엽게 포장된 백화점의 세련됨도 좋다. 오래되고 손 때 묻은 물건이 흥미롭게 등장하는 벼룩시장도 찾아가지만, 신상품이 정렬한 백화점구경도 빼놓지 않는다.


 


1.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


 


여기서 실제 장을 보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카트를 밀고 다니는 여자들이 있긴 하다. 최상품의 과일, 디스플레이도 멋지다. 누가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는데도 구경만으로 기분이 쾌적해진다. 면팬티여도 충분하지만 실크 레이스 속옷을 입고 싶다, 같은 종류의 갈망, 혹은 욕심이 결심으로 이어져 평소에 먹던 것보다 배나 비싼 프랑스산 잼이나 버터를 바구니에 담는다.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다. 가끔 이 정도는 괜찮다 끄덕이며 기분을 낸다.


좋은 것을 구분하는 안목조차 없으면서 눈을 현혹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쉽게 동경하고 흠모한다. 어떤 날은 이 세상 모든 호사스러움이 부질없게 느껴지다가도 어떤 날은 그렇게 부질없을 것을 소유하고 싶어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원해서. 사랑에 빠진 것처럼 씩씩거리며 차라리 시시해져 버리기를, 망각하기를 바라고 기다린다. 그런데 식품매장의 고급스러운 포장의 먹을 거리들은 그런 죄책감에서 조금 자유롭게 해준다. 먹는 거니까. 다음달 카드로 넘어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


한참을 구경하다 실제 같지 않은 컵케이크 두 개를 주문한다. 행복하고 예쁘고 빳빳한 비닐봉투에 담긴 그것을 들고 주말의 번잡한 전철을 타는 것이 성가심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감수한다. 버스에서 여고생들이 투명한 비닐 사이로 보이는 컵케이크를 발견하고 순간 눈이 커지면서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는 예쁘지, 하고 함께 조잘거리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오후의 반찬 코너에서는 3종류에 만원, 4종류에 만원 할 때도 있다. 반찬의 질이 좋고 일본식 감자 샐러드 (당근과 브로콜리, 오이를 감자와 함께 큼지막하게 섞어서 차갑게 만든 샐러드.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에도 나온다) 같이 생소한 반찬도 살 수 있다.


일본의 백화점 식품매장에서는 꽤 질 좋은 초밥을 포장해 놓은 것을 도시락 가격에 살 수 있다. 포장 초밥 전문점보다 신선하고 질이 좋다. 남편과 최근 일본에 놀러갔을 때는 한 끼 식사로 식품매장에서 이것저것 담아서 벤치에 앉아 먹었다. 남편은 고등어 초밥을 배불리 먹었다. 식당 못지 않게 맛도 좋다.


꼬치, 강정, 샐러드, 모든 것이 작고 단정하게 환한 조명 아래 전시되어 있다. 각각 담겨있는 것들을 “구경”한다. 포장도 예뻐서 선물로 사기 좋은 것도 많다.


2. 마트와 편의점


런던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역 앞에 있는 “막스앤스펜서” 라는 체인 슈퍼에 매일 들려 그날 다니면서 먹을 음료와 초콜릿 사탕 등을 샀다. 샌드위치와 씻은 과일 등을 골라서 가방에 넣고 역으로 출발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첫날은 가게 안에서 구경하느라 거의 한 시간을 보냈다. 출근하는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서 계산대 옆에 있는 껌도 하나 집어 담기도 했고, 참치와 콘을 넣은 샌드위치는 몇 번이나 사 먹었다. 여행하면서 한 끼 정도는 공원에서 먹었는데, 차가운 파스타와 샌드위치 종류가 굉장히 많고 공원에서 먹는 사람도 많아서 마트의 포장음식을 여러 가지 먹어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종류의 먹거리를 파니까 그 자체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외국인들도 우리나라 시장이나 마트에서 처음 보는 먹을 것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다들 마찬가지다. 독일에 갔을 때는 초콜릿의 크기가 너무 커서 다 먹을 수나 있을까 했는데 벽돌같이 큰 초콜릿들을 순식간에 다 먹었다.


편의점에 가면 음료수 구경이나 요거트 구경이 재미있다. 이국적인 글씨체, 디자인이 귀엽다. 어느 나라나 음료수 디자인은 톡톡 튀고 귀여운것이 많다. 캐릭터 구경도 재미가 쏠쏠하다.


3. 시장


아무래도 활기찬 분위기는 역시 시장이다. 파리를 여행할 때는 운 좋게도 숙소로 빌린 아파트 앞에서 큰 시장이 두 번이나 열렸다. 주말에만 서는 걸로 알았는데 목요일에 한번더 열려서 월요일에 합류한 동생도 시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 준 크레페를 먹고, 따듯한 커피를 마시면서 구경을 한다. 우리나라와 미묘하게 크기도 색도 다른 과일과 야채를 구경하고, 특별한 기념이 될 것 같아 주렁 주렁 걸린 옷이며 가방을 뒤지기도 한다. 상인들 목소리만큼 구경하는 쪽도 흥분이 되어서 평소 먹지도 않던 파떼 통조림을 선물로 사고 조잡한 기념품도 기분 좋게 흥정했다.


얼마 전엔 지금 살고 있는 김포의 아파트 단지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한달 전엔 “야시장도” 열렸다. 살 게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구경 나간 벼룩시장에서 맘에 쏙 드는 자개 반지를 7천원에 구입했다. 파는 아주머니의 센스가 맘에 들어서 물건들을 찬찬히 보다 고른 것인데, 사용하던 물건이긴 하지만 정말 저렴하게 좋은 물건을 발견하는 기쁨은 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야시장” 쪽은 더 화려했다. 낮에 하나 둘 차려지던 노점상들의 불이 켜지고 아이들이 탈 수 있는 작은 바이킹은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거렸다. 국수에, 부침개에, 평소에는 불량식품이라고 먹이지 않을 것 같은 깐깐한 엄마들도 포장마차에 줄줄이 걸려 반짝거리는 등불에 기분이 좋아져 “추억이지” 라고 관대하게 지갑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오히려 뭐 먹고 싶은 거없어? 라고 재차 묻는다. 분위기도 파는 물건도 조금씩 다르지만이렇게 가끔 열리는 시장은 사람들을 더 들뜨게 한다.


그래서 이해 받을 수 있다. 항상 있는 것들이지만 다르게 보게 되는것을 이해하고 환영한다.


백화점 2,3,4층에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도, 쇼핑에는 관심 없는 남자라도, 비싼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식품매장을 구경하는 것은 즐거울 수 있다. 기분에 취해 무리한다 해도 아주 조금 비싼 컵케이크를 사는 정도일 테니까. 조잡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외국의 벼룩시장과 마트 탐험은 관광지만큼이나 흥미롭기만 하다. 살 게 없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노점상의 먹을 거리엔 관대해져서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이런 아이러니를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은 이 모든 곳들이 “푸드”를 파는 곳이므로 가능해진다. 먹을 것 안에서 우리는 모두 위 아 더 월드!


매거진의 이전글 한 줄로 세워진 무화과, 아니 여름의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