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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Oct 22. 2016

특별한 10월 생의 홍시

홍시가 반들반들, 내일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점심 저녁으로 밥을 먹고 홍시를 하나씩 까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꼭지를 따고 잡았을 때 살짝 눌러지면서 탱탱한 정도가 가장 좋다. 그런 홍시들이 색깔도 가장 예쁜 감색을 하고있다.

호로록, 한 덩이를 당겨 먹으면서 혀끝으로 두툼한 부분을 찾는다. 그리고 오도독, 씹어먹는다. 하하하, 정말 달다. 정말 맛있다.

수박, 자몽, 오렌지, 포도, 자두, 색색이 넘쳐나던 풍성한 과일의 계절인 여름이 끝나면 가을의 판매대는 뭔가 초라하다. 아니, 오곡이 무르익는 것이 가을 아닌가. 추수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 가을 아닌가. 그런데 색색의 여름 과일이 지나간 자리엔 단풍색처럼 사과와 배가 있다. 낙엽만큼이나 쓸쓸하다.

아마 내가 배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풍성해도 먹을게 없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눈은 자연스레 홍시를 찾는다.


홍시 또는 연시.

요즘엔 두 팩에 4500원 정도 한다. 정말 놀랍다. ‘제철과일’이라는것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비싼 마트 가격에 익숙해져서인지 3천원, 4천원 대에 살 수 있는 과일이 나오면 한가위만 같아라, 가 아니라 제철과일만 같아라, 라는심정으로 실컷 먹어야지 하고 가득 담는다.

예전엔 겨울이 오면 귤을 한 박스 사다 놓고 손톱이 노래질 정도로 까먹고 또 까먹었다. 추울수록 두꺼운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며 쉼 없이 까먹는다. 불가사리모양을 하고 한번에 벗겨진 귤 껍질이 쌓여 올라갔다. 몇 박스고 먹었다. 그런데 문득 기억해보면 작년 겨울에는 귤을 그렇게까지 먹지 못했다. 몇박스는커녕 한 박스도 못 먹었다. 기껏해야 다 합쳐서 스무 개도 안 되는 것 같다.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말이다. 이럴 수가. 지금은 그렇게 귤을 먹어대다간 속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청춘, 이란 여러 가지로 좋구나. 아직 홍시를 이렇게 실컷 먹을 수 있는 청춘임을 안도하며 가득가득 담는다. 그렇게 넉넉히 사온 홍시가 냉장고에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점심을 차리면서, 반찬을 꺼내면서 홍시에 한번 눈길을 준다.

밥 먹고 하나 먹어야지.


요즘 점심을 주로 데친 양배추, 쌈장을 메인으로 조촐하게 먹고 있는데, 간소한 만큼 배가 금방 꺼진다. 디저트로 홍시를 먹을 생각을 한다. 홍시를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 의 느낌이다. 엄마들이 밥 먹어야 준다 라고 한쪽 손에 들고 보여주기만 하는 사탕처럼, 숟가락으로 밥을 입 속에 넣는 순간에도 기대감으로 두 눈은 사탕에 향해있는 것처럼, 나도 그러고 있다.

어제 저녁엔 오랜만에 피자와 샐러드를 잔뜩 배달시켰다. 잔뜩 먹는와중에도 당연히 저녁 먹고 까먹을 홍시를 생각했다. 그리고 배가 꽉 차서 빵빵 해진 위를 붙잡고 기어이 홍시를 반으로 갈라 입안에 호로록 넣었다. 여전히 맛있다.

결국 소화제를 입에 물고 잠들어야 했다.

이럴 때만 성실해지는 걸까. 매일 그렇게 어떻게든 글을 썼으면 제대로된 작가가 되었을 텐데!

10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다. 좋아하는친구 몇도 10월에 태어났다. 생일 축하해 라는 문자를 보내면서 10월은 좋은 달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날씨에, 홍시를 실컷 먹을 수도 있고, 좋은 사람들이 태어났다.

별자리는 달라도 다들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홍시도 반들반들

내일의 나를 기다리고 있다.

10월은 좋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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