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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Dec 09.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넷플릭스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2021)를 봤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전, 자음과 모음)라는,  아파트에 관한 책(재밌는 책이지만 영화와는 완전 다른 인문과학서적이다)과 동명의 영화지만, 원작은 웹툰이다. 

엄태화 감독은 데뷔작 <가려진 시간>(2016)이 가진 분위기를 가져와 새롭게 표현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난의 전조, 재난 원인 분석, 재난 상황에서의 복구와 인명구조, 정부와 전문가, 영웅의 활동은 모두 배제하고 철저하게 홀로 살아남은 아파트와 그곳의 주민, 외부인의 침입 등으로 단순화했다. 사회 비판 영화이기도 하고 가족영화이기도 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매력은 많이 빼버렸다)이면서, 좀비 영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가 개봉했던 지난여름에 많이 있었을 테니, 나는 박보영 배우가 맡았던 명화라는 인물과 도균(김도윤 역)에 대해 집중하고 싶다. 


사실 영화에서 황궁 아파트만 멀쩡하고 다른 모든 아파트가 무너졌을 때, 대립구도는 이미 정해졌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의 갈등 구조. (지금으로 따지면, 좋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좋은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나아가면 기득권층과 기득권층에 진입하고 싶은 사람 사이의 진입로에 관한 우화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파트의 공간과 식량 등을 생각한다면, 외부인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지나치게 나이브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집주인을 몰아낼 수도 있고,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걸 단지 이기심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나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선 도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도균은 정말 얄미운 캐릭터다. 하지만 입으로만 떠는 게 아니라 몸소 실천을 하고 있다. 

도균은 군면제자라는 이유를 대면서 아파트의 공동 임무에서 빠진다. 그러면서도 아파트의 배급을 받고 외부인을 숨겨주는가 하면, 나중에는 (들통이 난 뒤) 아파트 주민들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며 자살한다. 나는 도균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도균의 행동을 이해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사람들은 숨겨준 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내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명화도 마찬가지다. 

명화는 황궁 아파트의 주민 중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따뜻하지 않은 것 같다.

남편인 민성(박서준)은 본래 유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 공동 업무에 참여한다. 식량을 구하려 다니고, 외부인을 쫓아내기도 한다. 때로는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명화는 그런 민성을 비판한다. 나는 명화의 마음도 이해한다. 추운 겨울에 사람들을 쫓아낸다는 건, 얼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므로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성을 그렇게 비판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결국 민성이 살해당했을 때, 나는 명화가 후회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구조한 사람들에게 입주 조건이 뭐냐고 묻고,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의 명화를 보고 있으면, 황궁 아파트에서 했던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싶은 사람 같다. 


그렇다면 가짜 영탁(이병헌)의 존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병헌의 존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이것이 가장 큰 논쟁거리라고 생각한다.

그가 살인자에 파시즘적인 지도자인 건 맞지만, 황궁 아파트의 어떤 시점에서는 필요한 존재였던 것도 맞다. 아니 맞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말이 될까? 자칫 잘못하면 독재자를 옹호하는 발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세상이 흉흉하니, 이병헌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와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이건 독재자의 단골 멘트니까. 하지만 정말로 영화 속 황궁 아파트의 주민이라면, 그가 살인자였고 아파트 주민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쉽게 쫓아낼 수 있을까? 아닐까? 무엇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묻고 싶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도 동의할 수 없었다. 


중상을 입은 민성을 부축하며 걸어가는 명화. 그리고 그런 명화와 민성을 바라보던 노숙자(엄태구). 나는 분명 노숙자 무리가 이 둘을 노린다고 생각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 명화와 민성 같은 사람들은 야생에 버려진 초식동물과 같으니까. 그리하여 민성이 죽은 아침, 명화를 발견한 이들이 나타났을 때, 나는 틀림없이 노숙자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건 판타지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간 곳은 황궁 아파트와 다른 강제성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말도 안 된다. 누군 평화롭게 살고싶지 않아서 괴물이 되는 걸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처음 황궁 아파트를 공격했던 사람들은 이 장소는 그냥 넘어간 것일까? 황궁 아파트가 미웠기 때문에 거기만 공격한 것일까? 


나는 오히려 명화가 받은 주먹밥이 의심스러웠다. 설마 약을 탄 음식은 아닐까 싶었다. 극 중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인간을 꾀어와 잡아먹는다는 소문의 아파트는 황궁 아파트가 아니라 오히려 명화가 마지막에 도착한 그곳처럼 보였다. 의심스러웠다.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무너지고 비판하던 세계관에 동의하기도 했다. 지금도 자문하고 있다. 내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일까? 나이를 먹으면 수구(守舊)가 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걸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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