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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Dec 31. 2023

성냥공장 소녀

어금니 꽉 깨물고 사는 인생에 대하여

핀란드의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1990년 작품 <성냥공장 소녀>를 봤다. 매년 마지막 날 즈음에는 항상 서울아트시네마를 가는데, 올해는 어제 방문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는 경향신문 건물까지 걸었는데, 정동길엔 사람 대신 눈만 가득했다. 


<성냥공장 소녀>를 보면서 다시 떠올린 건데,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은 밝은 조명과 색채 속에 너무나 우울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가보지도 않은 핀란드의 춥고 쓸쓸한 기운이 느껴진다. 차갑고 음울하고 조금은 코믹하기도 하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미니멀한 미장센으로 쓸쓸함을 표현한다. 

어제 갔던 서울아트시네마도 그랬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정동길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얀색으로 변한 종로의 한 건물 2층에는 북유럽의 90년대 영화를 보겠다고 여남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남자, 그리고 혼자였다) 이 쓸쓸한 악마들아. 나가서 친구들과 놀 것이지. 하긴 내 기억으로는 2007년에도 그랬다. 


2007년 12월 25일 오후에 낙원동 시절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그림자 군단>(장 피에르 멜빌, 1969)을 본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였는데 거의 만원에 가까운 관객이 들었다. 대부분 혼자 온 관객들. (물론 나도 혼자였다) 개중에는 알만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애써 눈빛을 마주치지 않았더랬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다. 

너무나 음울했던 <그림자 군단>.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에 편성한 프로그래머는 누구였을까.

<성냥공장 소녀>의 주인공 이리스는 가여운 소녀다. 성냥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부모를 봉양한다. 클럽에 가도 말 거는 남자 하나 없다. 월급날(주급날일 수도 있다) 빨간색 원피스를 사서 집에 왔더니, 아빠는 천박하다며 따귀를 때린다. 그런 이리스에게 다가온 남자. 이리스는 그 남자와 금방 사랑에 빠지지만, 남자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이리스가 임신을 하자 그 남자는 "그 애새끼는 떼버려"라는 쪽지와 함께 수표를 보낸다. 이리스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긋지긋한 인생이다.


문득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무셰트>(1967)가 생각났다. 가여운 소녀가 나오는 영화. 가엽다고 말하면 화를 낼 거 같은 성질머리를 가진 가여운 소녀는 죽음을 택한다.

누가 무셰트를 죽였나. 그건 바로 우리들이다.

하지만 <성냥공장 소녀>의 이리스는 다른 선택을 한다. 물론 이리스의 선택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리스가 되어 본 건 아니니,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무셰트>를 봤을 때보다는 덜 슬퍼서 좋았다. 아마도 <한공주>보다는 <죄 많은 소녀>의 엔딩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궁금하다. 이 땅의 소녀들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맞다. 지금 보고 있는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도 참 힘들게 산다.)

나는 <죄 많은 소녀>가 <한공주>에 대한 반론이라고 생각한다
파이팅.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모든 군 전역자들이 자기 부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듯, 말하려고만 하면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할 것이다. 상대 비교는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에 버텨야 한다면 어금니 꽉 깨무는 수밖에 없다. 버티지 못했다고 해도 욕하면 안 된다. 그저 버티지 못할 만큼 힘들었겠거니, 생각할 수밖에. 힘듦은 상대적이지 않다. 자신에겐 절대적이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훈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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