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중년남자의 회춘 드라마
그런 드라마들이 있다. 너무 유명해서 꼭 본 것 같은 드라마, 안 봤지만 꼭 봐야 할 것 같은 드라마. 그런 미드 중 하나가 <브레이킹 배드>다. 추석이나 명절 연휴 때 몰아서 보기 좋은 드라마로 알려진 지 10년이 넘었다.
<브레이킹 배드> 시즌 1을 봤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에게게"였다. 에피소드도 많지 않았고 명성에 비해 되게 소박하다는 느낌이었다. 암 진단을 받은 평범한 화학교사의 일상이 안쓰럽기만 했다. (<홀란드오퍼스>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시즌 2와 시즌 3을 보면서는 배덕감의 씁쓸함이 가득했다. 거짓말과 배신과 욕심이 주인공의 운명을 망조로 이끄는 듯했다. 솔직히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즌 4는 달랐다. 스펙터클 했다. 와우.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클라이맥스는 "쾅!". 대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즌을 보면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실 <브레이킹 배드> 초기 시즌을 봤을 때, 나는 주인공이 삶을 견디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봤던 <나의 아저씨>와 비슷하게 말이다. 하지만 시즌 5까지 본 뒤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약간 스포 있음)
이 드라마는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된 주인공 월터 화이트가 가족에게 돈을 남겨주기 위해 (아내가 늦둥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설정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마약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에 드는 생각은, 애초에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이다.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 사회적 명예 등등) 이럴 바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편이 낫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의 응원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거나 또는 병이 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건 일반론이다. 이렇게 되면 드라마로 만들 필요도 없다. (문득 성경에 나오는 한 달란트를 받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겨 놓은 사람이 생각난다.)
또 한 가지. 드라마 내내 나오는 얘기인데, 주인공이 저지른 일이 부메랑이 되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행기 추락사고지만 사실 모든 것이 그렇다. 월터 화이트가 알지 못한 채 저지른 일, 알고도 저지른 일이 뒤죽박죽이 되어 나중엔 분간할 수조자 없다. 좋은 일이 선한 효과를 일으키는 건 쉽지 않지만 악행은 꼬리를 물고 참담한 결과를 만든다. (잘 살아야겠다.)
시즌 5까지 봤을 때, 월터 화이트는 인생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죽지 전에 그동안 못 해본 일을 하면서 아드레날린을 듬뿍 느끼는 사람이다. 평생 느꼈던 좌절감을 깨부수면서 희열을 느끼는 마초가 돼버린다. 마약을 만들어 팔고 경쟁자를 제거하고 보스가 되기도 한다. 산더미 같은 돈을 퍼 나르고 아내를 지배하려 든다. 뭐랄까, 이건 죽음을 앞둔 수컷의 공격적인 본능 퍼레이드 같다.
<나의 아저씨>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아저씨" 이야기라면 <브레이킹 배드>는 시들해진 중년 남자의 회춘 드라마 같다. 이 드라마를 보는 중년남성들은 어떤 아저씨가 되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