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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모음 2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by 장광현

매년 보는 연말 풍경이 올해도 다르지 않다. 다들 분주하고 자주들 아프고,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 환자가 많다. 들어보면 환부는 대체로 육체보다 마음 쪽에 있다. 쉬는 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요즘 핫한(?) 누군가의 험담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원래 험담에는 꼬리표가 붙어 발신자가 쉽게 드러난다. 예전 섣불리 험담에 참여했다가 민망했던 기억이 있어 보통은 피하거나 듣기만 했는데, 요즘엔 생각이 바뀌어 맞장구를 쳐준다. 그리고 실력에 물까지 올랐다. 상대의 화를 들어주고 같이 흥분해 주는 기술이 내가 생각해도 제법 괜찮다. 이 정도면 나는 토크계의 다시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화 후 상대의 표정을 보면 개운해하는 게 느껴진다. 내 맞장구엔 시원한 국물 맛까지 느껴진다.


어린 사람만 상처를 받는 게 아니다. 선배 후배들 가리지 않고 사람의 태도와 말에 상처를 받는다. 맞장구의 핵심은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데 있다.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와 수치심을 보편화시키면 그 사람이 느꼈던 모욕감은 점점 옅어진다. 당신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요즘 남는 모든 시간에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이젠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단계까지 왔다. 신기한 일이다. 주인공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실패했고, 무리에서 배척당했다. 그 둘이 서로의 상처를 알아차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듬어 준다.

글을 쓰며 내 생각의 조각들이 콜라주가 되어 거대한 벽화를 이루는 꿈을 꾼다. 내 글이 누군가의 상처를 핥아주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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