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클레어 Feb 11. 2024

혼자 있고 싶지만 같이 있고 싶어

양가감정을 느끼는 순간

오늘은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떡만둣국을 먹고 부모님께 새배를 올렸다. 항상 있던 설날 루틴, 항상 아침엔 나랑 엄마만 식사 준비에 분주한 설날.


이번엔 연휴가 짧아 멀리 있는 친척집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명절엔 가족들이 다 같이 서로에게 기분 좋은 덕담을 하고 함께 휴일을 보낼 수 있어 좋지만, 나는 어쩐지 휴일에 가족들과 집에만 있을 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난 가족들과 있음에도

혼자 있고 싶지만 같이 있고 싶은

양가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향인인 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나갈 때 즐겁지만 쉽게 지쳐서 중간쯤엔 집에 가고 싶고, 집에 있을 땐 나가고 싶은 모순을 느낀다.


그러나 가족들과 함께 즐거워야 할 명절에도 나는 그런 양가감정을 느끼게 됐다. 나는 명절이 되면 다툴까 봐 은근히 긴장하게 된다. 왜 이런 막연하고도 조그맣게 불안감을 느끼는가 하면,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이다.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우리 사이는 아직은 멀리 있는 것 같다. 난 너무 세심하고 아빠는 내겐 너무 무심하게 느껴진다.


난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될 일에 격양된 반응을 하는 것이 싫다.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함께 해결을 위해 고민해 주는 사람이 좋다. 사소한 일, 고의가 아닌 일에 상대를 질책하는 소리를 듣는 건 너무 피곤하다. 이젠 너무 지겹다.


그래서 아빠와 나의 대화는 서로를 비껴가서 공중에 흩어진다. 아님, 서로를 날카롭게 찌르거나.


명절에 단란하게 모여 앉아 가족들과 화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듯하지만, 오히려 가족끼리 오롯이 같이 있는 그 며칠이 힘들고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명절이니까,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자 나름의 노력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직접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엄마와 아빠께 드리고 간단한 간식을 직접 구워 나눠 먹었다.


저녁엔 가족들이 모두 함께 만두를 빚었다. 문제는 여기서 위생관념에 대한 충돌이 생겨 빈정 상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아 그래, 이번 명절도 어김없이 우린 다투는구나. 언젠 안 그랬냐는 듯 내내 마음에 자리해 있던 은근한 불안감이 현실이 됐다.


익숙한 서로에 대한 지긋지긋하다는 시선.

곧 찾아오는 소강상태의 어색한 침묵.


만두를 빚기 전 아빠께서 손을 씻고 오셨지만, 난 라텍스 장갑을 권했다. 손을 씻은 후라도 담배를 피울 때 입으셨던 옷을 만진 손으로 만두를 빚는 건 내겐 찝찝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보관해 두고 먹을 많은 양의 만두를 최대한 깨끗하게 만들고 싶었다. 마침 전에 사두었던 요리용 라텍스 장갑이 넉넉하게 있었고 손에 꼭 맞게 붙어 빚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장갑을 착용하고 만들 생각이었다.


내게 너무 깐깐한 면모가 있는 건 인정하지만 유난 떨지 말라고 한소리 듣고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해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다른 건 차차 해도 아빠께서 작게 읊조린 나지막한 욕설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결국 나랑 동생만 장갑을 끼고 만들었는데 맨손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만두소도 손에 덜 붙고, 겨울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손에 습기가 차지 않아서 수월하게 만두를 빚을 수 있었다.


분위기는 몇 시간 동안 만두를 빚으며 유해졌지만 가슴 한 편의 씁쓸함과 죄책감은 잔존했다. 내가 가족들의 즐거운 명절 휴일을 망쳤다는 죄책감.


난 술, 담배 냄새를 무척 싫어한다. 하지만 아빠는 너무 그걸 자주 했다. 술은 일주일에 세 번씩. 담배는 하루에 몇 번씩 빠르게 피고 와서 냄새 풍기기. 


일이 힘들어서 동료들이랑 이렇게라도 마음을 달랜다지만 아빠의 건강도 상하고 집에 냄새가 진동하는 걸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담배 냄새 좀 빼고 들어오면 안 돼? 아님 횟수를 좀 줄여보면 안 될까?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옹성과 같은 견고한 태도.


나도 경제적으로 자립해 서로 스트레스 덜 받는 환경을 구축하고 싶지만 아직 여의치 않은 형편이라 못 나가는 건데. 내가 나가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담배를 끊으라는 것도 아닌 담배 냄새를 빼고 들어오라는 부탁은 들어준 적이 없다.


담배냄새를 맡으면 목이 칼칼하고 머리가 아프다는데 본인이 더 우선인 아빠가 가끔은 정말 밉다. 조금 더 말투를 부드럽게 말해달라는 부탁을 잊을 때의 아빠의 윽박지르는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아빠의 가정환경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도 조금은 더 따뜻한 시선으로 포용하려 노력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연민이 점점 나를 향해가는 것만 같다. 아빠가 좋은지 싫은지 나도 잘 모르겠다.


서로 조금 더 배려를 하면 우리 사이도 많이 나아질 텐데, 아직은 내게 아빠는 대답 없는 메아리 같다. 소통의 불통을 겪는다는 건 감정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적막이 흐르고 꼭 그 사이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있어야만 활기가 생긴다. 우린 대척점에 서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지지고 볶으면서 싸우지만, 그렇지만 난 가족들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소속감을 준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존재들이 있어 든든하기도 하다. 적막함이 없어져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경감시켜 준다는 점도 좋다.


그러나 동시에 혼자 있고 싶은 마음도 든다. 때때로 오히려 외로움을 배가시키기도 하며 가깝기 때문에 더 상처를 주고받거나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오히려 애틋해질 수도 있다.


대학도 집 근처로 가서 긴 기간 동안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터라, 집의 따뜻한 온기와 아늑함에 너무 오래 익숙해져 있어서 가끔은 이 공간을 벗어나는 게 두렵고도 낯설게 느껴질 것만 같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내 정신적 지주와 다름없는 엄마를 자주 못 뵙게 되는 것이 제일 두려워서, 독립할 때 내가 견뎌내야 할 가장 큰 부분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고 싶어 지면서도 동시에 익숙함의 늪에 빠져 가족들 곁에 같이 있고만 싶어 진다.


내가 너무 심약해서 그런 거겠지. 내년에 타지로 취업해서 홀로서기를 마치고 나면 조금은 더 아빠와 애틋해지겠지. 그렇겠지?


내일은 다투지 말자. 같이 있는 게 행복하게 느껴지도록. 이 시간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는 걸 다시금 기억하면서 조금 더 포용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 슬픈 성장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