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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Feb 12. 2024

김조교 잘 부탁해요

조교로 일한 지 일주일 차

본격적인 출근을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이 됐다.


처음으로 학과 사무실의 탁자를 지나 업무 데스크에 앉아봤다. 왠지 학생 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공기. '처음'이라는 긴장과 설렘이 날 감쌌다.


첫 출근날엔 들뜬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파이팅 넘치게 사무실에 들어왔다. 첫날엔 업무용 서버에 접속하고 신입이 해야 할 절차를 밟고, 교수님들께 공지를 전달드릴 겸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교수님들께 잘 부탁한다는 답장이 오니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


우리 학과는 사무실에 직원이 둘(행정조교, 교육조교)이라서 옆에 계신 교육조교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행히도 같이 일하는 직원 분의 성향이 나랑 잘 맞고 친절하셔서 조금은 덜 긴장할 수 있었다.


전임자 분은 퇴사 하루 전 휴가를 쓰고 나가셨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나는 그분이 휴가 전날 남긴 연락에 날짜를 잘못 안 것인가 싶어 학과 사무실에 하루 일찍 방문했었다.


이 때문에 왠지 첫 출근이 첫 출근이 아닌듯한 느낌일 것 같았는데 나름 설레는 감각을 느꼈던 걸 보니 어느 단체에 몸 담고 있다는 소속감, 제 손으로 돈을 버는 행위가 주는 안정감과 뿌듯함이 고팠었나 보다.


이틀 차도 신규임용 절차를 마무리하고 학생들 단톡에 초대되어 조교로서 인사하기,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공지를 전달하기 등으로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했으나, 전임자 분이 끝내놓지 않고 가신 서류를 마무리하느라 바빴다.


전임자가 인수인계 사항을 남기고 가긴 했어도 파악이 어려운 사항이나 미처 전달받지 못한 정보에서 파생된 업무에서의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 일하는 한 달은 담당부서 직원분들이나 교수님들께 미숙함에 대한 양해를 구하며 조심스레 행동하려 한다. 잘 모르는 건 일단 여쭤보는 것이 더 큰 실수를 방지할 수 있어 이전 서류들을 조회하고 질문하고 습득하고 하면서 일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방학엔 단축근무로 3시까지만 일을 하는데, 학기 중보다 빨리 끝나니 좋은 것 같으면서도 그날 해야 할 일들을 3시까지 마무리하지 못하면 계속 업무가 딜레이 되어 초과근무를 하거나 다음날 할 일이 늘어났다.


일주일 중 4일을 전임자가 남긴 서류상의 오류를 처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신규임용자에게 전달되지 못한 정보들로 이루어진 서류들을 조회하는 사이에 담당자님들로부터 빠른 수정요청이 오고, 학생들의 문의전화는 끊임없었다.


퇴사하신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전임자 분께 일주일 간 모르는 부분에 대해 여쭤볼 수밖에 없었다. 찾아봐도 안 나오거나, 해봤는데 계속 안되거나 알아볼 시간조차 부족해서 여쭤보는 게 빠른 사항들로 일주일 간 계속 업무 문의를 드렸던 것 같다.


친절한 태도로 인수인계 해주신 건 참 좋았는데, 막상 출근하고 보니 미리 해놓으셨어야 하거나 그렇게 해야 후임자가 업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지막이라고 그냥 모르는 체하고 내버려 두고 가셨다. 옆에 교육조교님께서 안 계셨다면 정말 막막했을 것이다.


역시 며칠 겪었다고 그 사람을 다 아는 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실례인 걸 알면서도 퇴사하신 전임자분께 일주일 간 여쭤본 건 죄송스럽지만, 그분이 실수해서 여쭤보게 된 거나 인수인계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 나와 있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2월엔 졸업과 수강신청, 신입생 오티라는 큰 행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버와 전산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히고, 업무에 적응하고 매뉴얼 숙지를 완료하기도 전에 나도 모르고 있던 사항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 담당 부서 직원분, 학생과 교수님을 가리지 않고 연락이 왔다.


하루 중 3분의 2는 모르는 사항에 대해 알아보고 문의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썼다. 남은 시간은 공문을 접수하고 안내하고 결의서를 작성해 서류 결재를 올리는 데 소비됐다.


시간이 빠르게 가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라야 할지 모를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중 이틀은 초과근무를 했다. 대부분이 그럴 것 같은데 조교는 일정시간에 대한 초과근무 수당이 없어서 최대한 칼퇴근하는 것이 좋다.


내가 다 못 끝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초과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오늘 못하면 내일 더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감내해야만 했다.


근무시간이 명시되어 있고, 행정처리기간을 안내했음에도 꼭 이를 어기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점심시간에 전화는 기본이며 퇴근 이후에도 톡이 흔하게 온다. 일부 학생들은 본인의 개인적인 일을 학과 사무실에 문의하는 경우도 있어 곤란하다.


퇴근 이후엔 학생들 연락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퇴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에 온 연락을 몇 번 받아줬더니 당연한 것처럼 연락을 하는 학생들이 생겨서 지금은 이렇게 하지 않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정해진 시간과 규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게 됐다.


얼마 전에는 한 학생이 졸업식까지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 졸업사정에 문제가 있다고 전화를 해서 담당자님께 또 연락드리고, 서류 5차 수정을 하게 생겼다. 괜히 나만 일 못하는 사람으로 찍히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 와중에 회계마감이 5일도 안 남은 시점에 전임자가 미리 해놓지 않은 입학생 선물 준비도 해야 하고 학과 소모품도 구입해야 한다.


전산회계시스템이 손에 익기도 전에 해야 할 일이 몰아닥쳐서 연휴가 끝난 뒤, 이번주는 내내 초과근무를 해야 할 것 같다.

(기본 업무서버(결재, 공문열람 등..)는 적응하기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전산회계시스템이 복잡하게 느껴져서 애먹는 중이다)


아무쪼록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길 스스로에게 바라며 업무와 싸울 전의를 가다듬고 있다.


일주일 간 일하며 느낀 바로는, 한 공간에 두 명만 일하는 사무실 특성상 조용하고 잔잔히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인데 그 속에 정신없음과 깊은 빡침이 있다는 것이다.


<신입조교가 초반에 느낀 것들>

1. 모르는 건 양해를 구하고 전임자나 담당자분께 여쭤보기.

2. 실수했다면 빠른 사과 후 대처방법을 알아볼 것.

3. 그동안의 업무처리 내용이 정리된 카테고리별 서류더미와 폴더가 있다면 조회 및 잘 살펴볼 것.

4. 업무매뉴얼과 인수인계서를 꼭 참고할 것.

5. 정신건강을 지키고 싶다면 근무시간 외 학생들 문의연락은 받지 말고 다음날 순차대로 해결할 것.

(정말 긴급한 경우는 받아줄 수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학생 본인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음. 일반적인 회사, 공공기관의 일처리와 동일하게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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