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각을 한 번도 안 했는지 신기할 만큼 정신이 없던 2월이 지난 3~4월의 사무실엔 따뜻한 볕이 들어왔다. 역시 시간이 특효약인 듯,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조금은 덜 긴장할 수 있었다. 벚꽃이 피는 따스한 날씨 탓인지 긴장된 마음 또한 녹아내린 듯했다.
보통 개강하는 3월에 가장 바쁠 거라는 인식이 많지만, 앞선 글에서 알 수 있듯 2월이 가장 바쁘다.
그래서인지 3월에는 그래도 '너무 정신없다'까지는 아니고 '많이 바쁘네' 정도로 느껴졌다. 대부분 밤에 퇴근해서 셔틀버스를 타지 못했던 전과 달리, 2~3일을 제외하고는 정시퇴근 할 수 있었다.
3월에는 수강신청 정정 및 등록금 분할납부, 다전공 신청을 진행한다. 수강신청 정정기간에는 일부 교과목 수강인원 증원이 이루어지며 신입생 지도교수를 배정하고 상담분반을 배정하는데, 연구년 및 안식년이신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인 학생들은 임시로 다른 교수님들께 고루 배정시킨다. 신입생, 전과생, 편입생들은 지도교수 배정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미등록 재학 중인 학생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등록금 납부 절차를 안내하며, 학사경고자 상담도 실시한다. 위 두 가지는 제적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상담과 안내가 필수적이다. 원치 않게 제적을 당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안내를 해줘야 한다.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달리 졸업앨범비 납부를 통해 앨범을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한 환불은 3월 중에 진행되는데 이 기간을 놓치면 원치 않아도 앨범을 구입하게 된다. 전체 재학생에 비해 얼마 안 되는 수이긴 하지만 졸업앨범을 신청한 학생들이 꽤 많아서 놀랐는데, 등록금 납부하며 실수로 낸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3월은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개강맞이 행사 안내, 비교과프로그램, 교직원 교육프로그램, 기업협업프로그램 등 접수해야 할 서류들이 많은 편이다. 학기 초에 지원서를 접수해서 1년 동안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놓치지 않고 교수님들께 안내드려야 한다. 학과 운영뿐만 아니라 학생 지원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달력에 서류 접수마감일 표시는 필수다.
교수님들은 '업적평가'라는 것을 하시는데 연봉협상 및 인센티브 등, 금전적인 부분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하실 수밖에 없다. 업적평가는 연말에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다음 해 초까지 이루어진다. 안내가 제대로 안되어 업적평가 증빙서류 제출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정말 수습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민감한 부분이니 교수님들께서도 업적평가 시즌에 관련 공문을 확인하시지만, 워낙 바쁘시기 때문에 간혹 깜빡하시기도 하기 때문에 리마인드 알림을 여러 번 해드리는 것이 좋다. 강의뿐만 아니라 위원회, 자문, 연구, 기업 협업 등도 진행하시기 때문에 일정에 대한 안내를 제 때 해드려야 한다.
일정 안내 또한 조교 기본 업무이기 때문에 교수님은 깜빡하시더라도 조교는 깜빡하면 큰일 난다. 또한, 공문 내용에 대한 숙지도 필요하다. 잘 모르는 부분이나 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담당자분께 문의 후 교수님께 안내드린다."그래서 어떻게 하라고?"라는 말이 나오면 안 된다(꼭 되묻게 되는 공문이 몇 개 있다).
기간 연장 안 되는 사안은 수습이 불가해서 더욱 주의해야 한다. 컴퓨터 화면에 달력 띄우고 체크리스트도 만들어 놓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
MT는 학과마다 일정이 다른데 우리는 4월 초에 갔다. MT는 학과 학생회가 주관해서 사무실에서 발행해야 하는 필수서류를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고, 간식 등을 학과운영비로 지원해주기도 한다. 학생회가 대부분 준비해서 생각보다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조교도 MT에 함께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교수님께 양해 구해서 사무실에 남았다. 극내향인이라서 학부생 때도 MT 한 번도 안 갔다..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심부름꾼 자처할 것 같아서 핑계 대고 말았다. 속사정을 헤아려 알면서도 이해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MT 이후에는 비슷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특별히 주의해서 제출해야 할 서류들만 잘 챙기면 됐다. 협조 전뿐만 아니라 원본 서류 제출이 필요한 것들을 제 때 내는 것, 다전공 신청 마감일 안내 및 명단 송부 등이 있었다. 예산 집행도 기안 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하면 돼서 4월엔 거의 맨날 칼퇴해서 좋았다.
예산은 바쁜 시즌이 따로 존재한다. 2월~3월 회계마감과 5월 예산사용계획 수립 등이 있다. 2월 말~3월 초에 재무팀 직원분들의 메신저가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나도 야근 중.. 그런데 이제 나는 초과근무수당 따로 없는)
3월과 4월도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정을 달력에 잘 표기해 두고, 까먹지 않고 기한에 맞춰 업무를 수행해 내면 된다. 2월에 들어온 나는 3월에도 실수투성이였던 것 같지만 아직 3개월 안 됐다는 명목으로 아직은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내게 다정한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연관 부서 담당자분들께 많이 여쭤보기도 하고 먼저 가르쳐주시기도 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다행히도 다들 업무 때문에 힘드실 텐데 친절히 알려주셔서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이 마음 잊지 않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일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그 덕분에 지금은 아주 자잘한 실수만 하고? 무던히 일하고 있는 것 같다.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건강관리와 시간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 분야와 상황을 막론하고 다 해당되겠지만 이 기본적인 것이 무너지면 내가 원하던 인생의 방향성과 점점 동떨어져가는 것만 같아서 요즘 부쩍 위기감을 더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코로나 부작용이 이제 나타나는 것인지 2월부터 4월까지 계속 열과 소화불량, 두통과 안구통증, 메스꺼움이 자주 발생했다. 약 없이 아픔을 이겨내려고 잠을 자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하루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많아서 너무 아쉬웠다. 더 마음 한편을 불안하게 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고 뭔가 끊임없이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박약한 의지로 못할 이유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빠르게 달려 6월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분명 조교일을 하려 했던 이유는, 돈 벌면서 하는 취업준비를 위해서였는데 온갖 핑계를 대며 시간을 낭비하고 쓸모없고 자기 파괴적인 행위들로 채워왔다는 것을 깨달으니 더욱 충격적이다. 머지않아 2024년의 반절이 지나간다.
그동안 날린 수없이 많은 기회와 행운들을 붙잡기엔 너무 많이 와버리진 않았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마구 솟구쳐 오르지만, 아무리 마음속에 메아리쳐도 변함없이 허기진 열정과 무지의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말과 다짐으로는 벌써 성공한 디자이너 다 됐을 나에게, 이젠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다시금 상기시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