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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Jun 03. 2024

5월 조교 업무일지

공휴일과 축제가 있어 좋지만 안 힘든 건 아니야

5월엔 공휴일이 있어 좋았다. 하루씩 쉬어가니 리프레시되어 좋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4월보다 바쁜 5월이었다.


학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5월에 내년 모집요강에 대한 사전점검을 거치고, 예산에 관한 사용계획서를 상신해야 한다. 하계방학 현장실습 참여자 모집, 하계 계절학기 과목 개설에 관한 논의와 계절학기 수강신청도 5월에 진행된다. 그 밖에 산학과 관련된 서류 신청과 연구년, 다전공 신청 협조전도 마감되는 달이다. 여기에 특강이 예정되어 있을 경우에는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난다.


그런데 1학기보다 2학기가 더 바쁘다는 사실.. 1학기에 업무를 많이 익혀둬야 할 것 같다


내가 일을 하다가 아찔한 순간이 찾아올 때는 서류 제출기한을 깜빡하고 표시하지 않았을 때인데, 서류 제출 마감일인데 교수님께 안내를 못했을 때 그 불이익은 고스란히 학과와 교수님들께 가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 어쩐 일인지 달력에 표시하지 않은 서류 제출 건이 2개나 있어서 정말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렀다. 교수님께서 기한을 기억하시고 서류를 챙겨주셔서 정말 다행이었고 또 죄송하고 감사했다. 교수님께서 기억력이 좋으셨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뻔했다.


학과에 관한 모든 사무, 행정 업무와 교수님을 보좌하는 일이 조교 일인데, 그 기본적인 일에서 실수가 나왔다는 데 오는 자괴감이 컸고 스스로 내 일처리에 대한 우려가 많이 됐다. 더블체크를 습관으로 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피곤한 날에 서류 접수를 했다면 점심 먹고 나서나 시간여유가 있을 때 빠뜨린 서류는 없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컨디션 조절은 모든 업무에 있어 필수인 것 같다.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순간은, 일단 내가 실수를 했을 때와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업무에 많은 협조를 해줘야 할 때이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물론 그 당사자들은 더 하겠지만..


화가 나는 순간은, 사전에 기한을 분명히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문의를 하거나 멋대로 행동해서 업무에 지장을 받을 때이다. 학생들 중에 한 두 명 ~ 3명이 꼭 마감 당일, 그것도 제출이 몇 시간 안 남았을 때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있는 것 같다. 유독 기한을 자주 넘겨서 주시는 교수님도 계시지만 그래도 최소한 해당 부서와 상의는 하고 넘겨주셔서 그나마 괜찮은데, 학생들은 그게 잘 안되기 때문에 곤란하다.


저번주만 해도 수강신청 마감 1시간 전에, 그것도 수강신청을 할지 말지 확실히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의를 준 학생 때문에 결국 마감 30분을 앞두고 담당부서에 협조 요청을 하게 됐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신청을 못할 뻔했다. 아직은 사회생활이 많지 않은 저학년 학생이라 그런 건지 질문 내용이 두서가 없어서,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 요지를 알 수 없어 힘들었다. 결국 전화를 통해 스무고개 끝에 겨우 알아냈다.


내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이 그냥 해주면 된다. 바쁠 때는 더 정신없기도 하고 약간 답답할 수 있어도 학생이 일부러 의도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가끔씩은 속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있긴 하다.


지금까지 있던 빌런 아닌 빌런의 사례들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1. 성적 이의신청 및 정정_ 거짓말하는 학생

성적 이의신청 마감일에 교수님과 협의가 되었음에도 성적이 정정되지 않았다고 연락을 해 온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교수님이랑 협의했다고 하여, 담당 교과목 교수님께 연락드렸는데 올려주기로 하신 적이 전혀 없고 학생 수업태도가 좋지 못해 그럴 의향이 없다는 답변이 왔다.


다시 학생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으니, 자신은 이 점수가 납득이 안되고 자기 주변의 다른 학생들 평점도 봤는데 자기는 이 점수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의신청을 했는데 교수님께 돌아온 답변이 없어서 이제 와서 조교한테 자기 생각을 확신하며 이야기했던 것이다.


교수님께서 연락 확인을 지속적으로 안 하셨다면 이렇게 마감 몇 시간 전에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사무실로 대신 문의 요청을 했어야 했다고 안내하고, 학생 본인의 생각과 교수님의 평가기준이 다를 수 있으며 수업태도도 감점의 요인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성적은 교수님 권한이라 과사에서 성적을 맘대로 올릴 일은 없다.


2. 졸업요건 충족 확인_4학년까지 수강 필수 과목을 몰랐던 학생

1학기 종강을 몇 주 안 남긴 상태에서 학생 한 분이 과사로 와서 졸업을 위해 남은 학점 수를 물었다. 본인 스스로 학교 포털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부분인데, 확답이 필요했나 싶어 조회 후 말씀드렸는데 예상과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이걸 들었어야 하는 줄 몰라서 안 들었는데 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럼 저 이번에 졸업 못하나요?"

4학년까지 몰라서 한 번도 듣지 않았다고.. 근데 그 과목들이 4개라 지금부터 듣는다고 해도 이미 4학년 1학기가 지났기 때문에 계절학기까지 다 합쳐도 초과학기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몰랐다면 물어봤어야 했고 졸업 요건 중에서 부족한 게 뭔지 미리 확인했어야 했다. 


그런데 알려주니까 "아이 C.."를 몇 번이고 대놓고 말하더니 같은 걸 또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초과학기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고 아직 졸업전시를 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걸 듣는다고 해도 졸업을 바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러한 점을 알려주니 하는 말.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상관없고요" 사실 수강해야 하는 과목 목록 다 홈페이지에 나와있고 수강학점도 자기가 다 스스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해서, 누가 보면 다른 건 남들이 다 챙겨줘야만 하는 부분으로 생각되어서 당혹스러웠던 날이었다.


3. 무례한 학생_초면에 반존대하는 학생

초면이든 아니든 서로 존댓말을 하는 것이 예의인데, 그렇지 않은 학생이 한 명 있다. 자기 스스로도 자각을 못하는 것 같아서 이젠 그러려니 하는 학생이다. 메신저 말고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서 문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때마다 반말 아닌 반말을 한다.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어쩌다 한 번 정도로 나오는 반존대가 아니라, 습관성 반존대로 대화의 70%를 반말 섞어 이야기해서 대화할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런 거 하나하나 신경 써가며, 감정 낭비해 가면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처음에 들었을 때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들어야 하는 과목을 알려줬더니 "아 그럼 OOO과목 다음 학기에 들으면 되고?" 이런 식으로 반말을 했다. 나랑 친분이 있는 후배들도 사무실에서는 존댓말을 하는데 이 학생은 올 때마다 말투가 이렇다. 반말하지 말아 달라고 말할까 싶다가도, 곧 졸업할 사람이고 바깥에서 사회생활 하다 보면 나보다 연장자한테 한 번쯤은 이야기를 듣겠지 싶어서 덜 거슬리도록 무던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하나하나 학생들에게 구태여 말하기가 입 아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거나 유연히 넘어갈 수 있게 마인드를 달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신경 쓰고 화를 내다보면 결국 손해는 나에게 오게 되어 있다. 적당히 넘기는 연습을 많이 해보고 더 넓은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5월이 지나 어느새 6월이 됐다.

2024년의 절반도 이렇게 지나간다는 게 못내 아쉽고 두렵기만 하다. 아주 어렸을 땐 시간이 간다는 게 무섭지만은 않았는데 요즘은 겁이 난다. 조금 더 바쁘게 지내면 이런 생각도 사라지겠지, 조금이라도 더 준비하면 덜 무섭겠지, 삶이 계속된다는 게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이고 살아내는 과정의 연속일 줄이야. 부지런하고 굳건하게 살아가시는 부모님들과 어르신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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