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아직도 실수를 하고, 왜 아직도 졸업요건을 모르는 4학년이 있는가
6월은 1학기가 종료되는 달이다.
종강하면 아무래도 학생들과 교수님들께서 학교에 상주하고 계시지 않으니, 학기 중보다는 덜 정신없는 것 같긴 하다. 물론 종강 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인 7월 초중반까지는 일이 적진 않다. 다만, 차이는 단축근무로 인해 3시간 일찍 퇴근한다는 것~ 단축근무 기다리면서 종강 일주일 전부터 들떠있던 사람 나야 나..
나는 6월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준비하는 달'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계 현장실습학기제 신청서류를 준비하고, 시험을 준비하고, 유예신청(학사학위취득유예, 수료유예)을 접수할 준비를 하고, 수시입학홍보를 준비하고, 종강 후 단축근무를 한다면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나름의 계획을 세우며 다가올 시간을 준비했다.
그리고 또 다른 준비로, 답답한 마음으로 속앓이 하지 않을 준비를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6월 초부터 현장실습학기제 참여학생과 기관에게 작성 서류를 안내하고 수시입학 홍보 업체와 소통하느라 바빴다. 기본적인 학부회의와 외부 공문 안내는 늘 하는 일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바쁜 와중에 처음 작성해 보는 공문들의 기안 과정에서 실수들이 더러 발생하여 자존감이 바닥으로 추락할 뻔했다.
수신처를 설정할 때, '처(또는 이외 부서명)' - '팀(센터)' - '구성원'으로 구성된 가지를 잘 선택해야 했다. 어떤 협조전은 부서의 담당자분만 지정하여 보내도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부서 전체가 내용을 열람할 수 있게, 담당자 한 분을 콕 찍어 보내지 않고 '처'를 찍고 '팀(팀장)'으로 보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입사 초반 외에 협조전에 대한 연락을 받은 적이 드물어서 내가 몰랐던 부분이었다. 더 이상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옆 동료분께 요령을 여쭤보니 굳이 담당자 지정할 필요 없이 팀으로 보내도 괜찮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처음에 일을 배울 때는 무조건 담당자를 지정해서 보내야 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됐다. 입사 5개월 차였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았다.
종종 하는 다른 실수로는, 원본 제출에 대한 확인을 하지 않아 발생한다. 어떤 공문은 협조전 상신에 이어 수합한 서류 원본을 부서에 방문해 제출해야만 하지만, 스캔본만 첨부한 협조전 상신으로 일이 마무리되는 업무도 있다.
* 드물게 협조전 상신 없이 부서에 원본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 경우도 있다. 위 경우엔 제출 전 스캔을 통해 기록을 남기 것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된다. 제출하고 나면 업무 서버와 PC에는 내가 어떤 내역을 처리했는지 남아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원본제출이 필요하다고 공문에 덧붙여 적어주시지만, 안 그런 경우도 은근히 많다. 어느 정도 시간이 쌓이다 보면 공문에 원본제출에 대한 언급이 없더라도 경험에 기반해, 눈치껏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나는 그런 눈치가 4개월 차까지 발휘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본 서류 제출 마감기한이 다가오는데도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몇 번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린 이후로는'원본 제출'이 쓰여 있지 않은 공문에 대해 혹시라도 필요한 건 아닌지 메신저로 미리 여쭤본다.
원본 제출을 하더라도 학과에서 자료보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류를 미리 스캔한 후 다른 부서에 원본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학과에서의 업무처리 및 서류제출 기록이 사무실에 남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 해에 온 후임자가 같은 안건에 대한 서류제출 기록 조회가 불가해 어떤 프로젝트에 학과(사무실) 또는 교수님(개인)께서 신청을 하셨었는지 알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후속업무가 지연되며 유관부서마다 협조를 구해야 할 수도 있다.
꼭 원본제출 때문이 아니라도, 서명이 들어간 서류는 스캔본으로 PC에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 좋다. 중요 서류일 확률이 높고 유실됐을 경우를 대비할 수 있다. (해당일로부터 1~3년간은 보관처리)
그 뒤에 실수가 없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서류에 서명이 누락되었는데 미처 발견을 못했다거나 협조 전에 필요한 서류를 일부 빠뜨린 채 상신하거나, 내 판단을 믿고 행동했다가 다시 업무를 처리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들이 많았다. 수습이 되는 실수들이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내 몫의 책임은 직책과 관계없이 무겁게 생각해야 하는 것.. 나의 실수로, 그중에서도 기본적인 실수로 다른 부서에 협조를 구하게 될 때는 죄송하면서도 자괴감이 든다.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왜인지 쉽지 않아서 내 뇌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곱씹는 요즘이다.
종강 직전, 그리고 종강 후 학생들 문의가 많았다. 이번학기가 종료된 후 본인이 앞으로 들어야 하는 학점과 과목에 대한 질문과 성적 및 계절학기 수강신청에 대한 질문이었다.
다른 문의들은 평범했다. 출결 및 공결, 성적확인방법, 계절학기 과목개설 유무 등,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성실히 알려주면 학생들도 금방 이해하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4학년이 되도록 교양필수 교과목을 수강해야 하는지 몰라 12학점이나 부족한 학생이 있었다. 이미 4학년 1학기 수강신청은 끝난 지 오래라 계절학기로 듣는다고 해도 초과학기는 면치 못할 상황이었다.
분명히 4학년이 되기 전까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에 탄식하기도 했지만, 친절히 안내했음에도 세 차례나 찾아와 물으며 바뀌지 않는 사실을 들을 때마다 내 앞에서 짜증을 내는 이 학생에게 끝내할 말을 잃고 말았다.
본인이 이 교과목을 들어야 할지 말지 정해달라며 3일 내내 온갖 수단으로 상담한 학생도 있었다. 들어야 하는 과목이 명백히 필수적이지 않는 이상 학생에게 일반적으로 들을 과목을 지정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와중에, 평범하고도 조용하게 무례를 범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말과 새벽, 밤, 근무가 끝난 시간에 달콤한 휴식시간을 방해하는 본인이 우선인 사람들이 있다.
무시하면 그만이지 않아?
그래. 무시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 무시가 잘 안돼. 화가 나. 미리 근무시간 공지 다 했는데도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밤 10시에, 집에 와 이제 막 한 술 뜨려는 참에, 한창 자고 있는 새벽 6시에, 업무 끝나고 친구랑 만나고 있는 지금 연락하는 건지.
그냥 지금은 무시하고 다음에 대답해도 되는 거 알아. 내가 화가 나는 건, 단지 내가 신경 쓰이기 때문만은 아니야 행정조교가 아닌 나로서의 시간을 또다시 행정조교로서의 시간으로 되돌려놓기 때문이야.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급한 연락만 근무 외 시간에 받아준 후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문의를 처리했다. 그냥 그뿐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 학생들도 당장의 답을 바란 건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미리 질문을 보냈을 뿐.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기분이 점점 더 불쾌했다. 불쾌감은 '안 읽은 메시지'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진해졌다. 그래 이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던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봐주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는 안 돼. 이번만은 없어." 이제 근무시간 외 연락에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어김없이 근무시간 외 문의가 오면 다음 날 답변을 한다. 그런데 이제 답변과 함께 사무실 운영시간에 대한 안내, 근무시간 외 연락자제 당부 메시지를 함께 보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알려주는 것이다. 요주인물은 이마저도 두세 번 거치고 나서야 멈추더라.
내 생각이 틀렸을수도 있다는 의심을 적재적소에 하는 것, 확신을 갖고 행동해도 괜찮을 수 있게 경험들을 쌓는 것,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방지책을 세우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6월이었다.
이와 동시에 화가 나도 말투는 곱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함에 감정없이 단호하고 사무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통해 내 시간을 남들에게 빼앗기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똑같이 되갚아주겠다는 심보로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 것은 아니다. 그저 더 자연스러워졌을 뿐. 조교도 엄연한 서비스직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걸 안다.
작은 일에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 지혜와 현명함을 좀 더 가질 수 있길 바라며 앞으로의 업무에선 실수가 없길 바라본다.
6월을 마무리한 시점인 7월에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벌써 방학 한 달이 곧 지나간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늘 그렇듯 시간은 쏜살같이 내 앞을 지나간다. 한 해씩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지금껏 나는 그저 끌려갈 뿐이었던 것 같아서 많이 걱정이다. 지금 내 무릎팍 다 까졌다(무엇 하나 한 게 없는...도대체 어떻게 지낸건지).
내 삶이 어느샌가 나태와 게으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다.일 년의 반절이 지난 지금,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나의 갓생. 계획 다시 세우고 우선 체력을 길러야겠다.
* 조교일을 하다가 거의 5키로가 쪘다. 사무실에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고 집에서도 거의 안움직여서 그런듯 하다. 근육이 너무 없고 체력도 체형도 꽝이다. 체력이 있어야 뭐든 할 힘이 나고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정말 운동 한 가지씩은 꼭 해야하는 게 맞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