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는 부르심 앞에서

내 삶이 이해 되지 않을 때

by You앤Me Art Place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막연한 비현실적
로드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며 또한 '부르심' 이라고 하는 측량 할수 없는 발령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명을 주는 자의 자부심에서 나온다.
사명을 받는자는 자신에게서 적합성의 여부를 찾을것이 아니라 사명을 부여 해 주신 자의 선한능력을 보아야한다.

도토리 키재기와 같은 삶 속에서 인간 스스로가 끊임없이 적격자와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것에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부르고 책임지시고 이루시는 분의 선한의도와 사랑의 계획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나아서도 아니요 내가 좀더 못나서도 아닌 부르신자의 주권에서 시작되는 부르심. 그 부르심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첨부터 그분에게서 나왔듯이 그분이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
하나님 자신이 후회가 없으시고 실수가 없으시며 완전무결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프라우드는 뽑혔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나를 택하셨다는 것에 대한 이해 할수 없는 은혜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것이다.
나의 공로가 아닌 그분의 죽으심의 부활하심과 다시 오실것으로 인한 다스리심 안에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들이 이뤄질 수 밖에 없는 당위성과 찬양받기에 합당 하신 영광받기에 합당하신 그분의 살아계심에 있다.
순종은 내가 이루는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분이 친히 순종케 되도록 이뤄 가신다.
그 부르심 앞에 떠나라는 말씀 앞에 나와 우리는 서 있을 뿐이다.

그러니 순종 하려는 노력 보다 앞서야 할것은 왜 순종할 수 밖에 없는지를 아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부름 받은 나의 무능력을 보는것이 아니라 부르신 자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 믿음이 우리를 순종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부르신 것도 발걸음을 떼는 것도 때론 갈 바를 모른채 걸어가지는 것도 내가 아닌 나를 떠밀어 가게 하시는 주님의 이해 할 수 없는 [사랑] 이라는 이름의 [선한 능력] 때문이다.

내가 가는 길에서 항상 떠남을 반복하고 또한 지속적인 떠남의 길을 들어서는 것은 내가 이해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그분이 나를 잘 아시고 이해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선 길이라 해도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분이 부르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자리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 질거라고 예상해 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피조물 입장에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맘에 들지 않더라도 좋아보이지 않더라도
이해가되지 않더라도 괜찮으니 부르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과 함께 걸어 나아 가보자.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 걸어 나아 가보자.

부르신 이는 선하시며 그분은 끝까지 사랑하시며
후회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것입니다 *